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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선의 욜로 라이프] 꿀잠 자려면...잠옷 입을까? 벗을까?

입력
2017.09.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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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밍유 제공
드리밍유 제공

낭만이 뚝뚝 떨어지는 로드 무비 ‘파리로 가는 길’(2016)의 한 장면. 주인공 다이앤 레인은 호텔방에 들어가자마자 실크 잠옷과 나이트 가운을 트렁크에서 꺼내 침대에 곱게 펼쳐 놓는다. 다음 날 아침 잠옷과 가운 차림으로 혼자 일어나 진한 코코아를 마시는 그의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한 자태. ‘여행 짐은 무조건 줄이고 보는 것’이라는 상식이 부끄러워진 순간이다.

가수 태양은 잠옷 컬렉터다. 얼마 전 MBC 예능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에 나온 그의 드레스룸엔 시크한 디자인의 파자마 수십 벌이 걸려 있었다. 한 벌 가격이 수십만 원인 미국 뉴욕 브랜드 ‘슬리피 존스(Sleepy Jones)’라는 걸 알아 본 패셔니스타들이 열광했다. 하루에 잠옷을 세 번 갈아입고, 잠옷을 입고 동네를 산책한 태양에게 잠옷은 패션이자 정체성이다.

가수 태양. MBC 제공
가수 태양. MBC 제공

침대 밖으로 나와 트렌드가 된 잠옷

잠옷이 이토록 뜨겁게 관심 받은 시절이 있었을까. 잠옷은 원래 그런 옷이 아니었다. 버리자니 아까운 추리닝, 목 둘레 늘어난 티셔츠, 유치한 무늬의 고무줄 치마... 무슨 옷이든 입고 자면 바로 잠옷이 됐다. 라면 국물이나 치약, 침 자국이 묻어 있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무방비 상태의 패션.

2005년 한국생활환경학회지에 실린 ‘한국인의 수면 환경 실태 조사 보고서-침구와 잠옷을 중심으로’를 보면, 당시 잠옷을 사 입는 건 유난스러운 행동이었다. 1,6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도시에 살든 농촌에 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잠옷을 챙겨 입고 자는 사람은 소수였다. 평상복이나 내복을 입고 잠자리에 드는 게 보통이었다. 남성, 미혼자, 농촌 거주자가 특히 그랬다. 잠옷은 신혼 부부가 장만하는 귀하고도 야릇한 혼수였다.

잠옷에 투자하는 시대가 된 건 ‘행복’의 개념이 바뀌면서다. 행복은 거창한 경험이 아니다. 일상이, 순간이 차곡차곡 쌓여 행복이 된다. 집 밖에서만 멋지게 차려 입으면 그만일까. ‘집에 있는 나’ ‘이불 속의 나’도 소중하다. 나를 위한 패션이 진짜 패션이다. 더구나 자면서 보내는 시간이 일생의 3분의 1이나 된다면. 집은 허겁지겁 먹고 씻고 자고 나가면 그만인 공간이 아니다. 집이 쾌적해야 제대로 된 삶이다. 인테리어에 잔뜩 힘 준 집과 거울 보기 부끄러운 후줄근한 추리닝은 어울리지 않는다.

비비안 제공
비비안 제공

미국 패션계 거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앤디 스페이드는 ‘사람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중요해지는 시대’를 예측하고 2013년 ‘슬리피 존스’를 론칭했다. “뉴욕 소호 명품 거리 매장에서 파는 비싼 파자마를 누가 사 입겠느냐”는 혹평은 금세 쑥 들어갔다. 이후 ‘더 슬립 셔츠(The Sleep Shirt)’ ‘포 레스트리스 슬리퍼스(For Restless Sleepers)’ ‘베드헤드(Bedhead)’ 같은 고가의 잠옷 브랜드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잠옷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도 상륙해 대박이 났다. 한국엔 아직 들어오지 않아 요즘 직구족들에게 인기 품목으로 꼽힌다. 이른바 ‘짝퉁’도 많이 나왔다. 유니클로를 비롯한 대형 패션 브랜드들은 잠옷과 실내복 겸용 라운지 웨어에 힘을 주고 있다. 잠옷 전문 인터넷 상점 ‘드리밍유’ 관계자는 “20, 30대는 물론이고 50대 이상 고객도 많다”며 “파자마뿐 아니라 파자마 위에 겹쳐 입는 로브(Robeㆍ무릎 아래로 늘어지는 긴 가운) 판매도 늘고 있다”고 했다.

미국ㆍ유럽의 하이 패션 브랜드들은 지난해 아예 ‘파자마 룩’을 런웨이에 올렸다. 하늘하늘한 가운과 품이 큰 파자마에 하이힐과 체인백을 코디한 난해하고도 당황스러운 패션. 슈퍼모델 체형이나 대단한 용기를 갖추지 않는 한, 광화문이나 강남역에 입고 나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잠옷은 잠옷으로 입는 게 안전하다.

유니클로 제공
유니클로 제공

잠옷은 우아한 숙면 패션이다

“잘 때 뭘 입냐고요? 물론 ‘샤넬 넘버5’죠!” 영원한 섹시 스타 메릴린 먼로의 유명한 말이다. 여배우가 뭘 입고 자는지 기자가 공개적으로 묻는 후진 시대였다는 사실은 일단 제쳐 두자. 먼로처럼 샤넬 향수만 뿌리고 나체로 자야 숙면할 수 있다는 설이 있다. 정말일까.

서울대 의대 겸임교수인 신홍범 코슬립수면의원 원장은 “잠옷을 입고 자는 걸 권한다”며 “자면서 흘리는 땀과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각질 같은 노폐물을 잠옷이 흡수해 수면 환경을 쾌적하게 해 준다”고 말했다. 또 “잠옷 대신 입는 평상복은 혈액 순환, 통풍, 땀 흡수 같은 기능이 부족하다”고 했다. 미국수면의학회 회원인 이종우 숨수면클리닉 대표원장은 “개인 취향에 따라 선택할 문제”라면서도 “자는 동안 체온이 점점 떨어지는데, 잠옷이 숙면에 적당한 체온(20도 후반)을 유지해 준다”고 했다. 그는 “새벽에 체온이 심하게 내려가 잠에서 깨는 걸 막으려면 잠옷을 입는 게 나을 수 있다”며 “더울 때도 땀을 흡수하는 얇은 잠옷을 입는 게 체온을 낮춘다”고 말했다.

잠옷은 최근 하이테크를 만나 진화하고 있다. 미국 스포츠용품 브랜드 ‘언더아머’는 올 1월 ‘리커버리(Recoveryㆍ회복) 슬립 웨어’를 내놨다. 과격한 운동을 한 뒤 입고 자는 동안 원적외선이 나와 신체 회복 속도를 끌어올리고 통증을 덜어 준다고 한다. 일본 회사 ‘베넥스’의 나노 섬유 잠옷은 수험생 피로 회복에 좋다는 입소문이 나 국내에서 반짝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원적외선이 나오는 최첨단 잠옷이나 슬리피 존스 잠옷이 아니어도 괜찮다. 편안하면 그만이다. 비비안 디자인실 강지영 부장이 귀띔한 잠옷 고르는 팁. ▦디자인보다 착용감이 우선이다. 봉제선과 레이스, 자수 같은 장식 요소가 과하면 몸에 배겨 불편하다. 패션을 포기할 수 없다면 잠옷 원단 프린트를 잘 고르자. ▦실내 기온이 잘 유지되는 아파트 거주자라면 반팔 길이의 잠옷이 4계절 활용도가 높다. ▦원피스 잠옷은 너무 매끈한 원단이나 길이가 과하게 긴 디자인은 피하는 게 좋다. ▦잠옷에서 제일 중요한 건 세탁이다. 자주 빨아도 되는 튼튼한 면이 최선이다. 실크, 마 잠옷은 물세탁이 되는지 따져 보자.

잠옷으로 통하는 파자마는 언제, 누가 입기 시작했을까. 강 부장의 흥미로운 설명. “‘다리를 감싸는 천’이라는 뜻의 ‘Pae Jamah’라는 페르시아어가 어원이다. 인도나 중동에서 낮에 입는 헐렁한 바지를 가리켰다. 식민지 시대 영국인이 도입해 입고 자면서 상ㆍ하의로 구성된 잠옷이라는 뜻이 됐다. 서구에선 남자도 대개 치마 잠옷을 입고 잤다. 바지 잠옷이 인기를 얻은 건 배우 클라크 게이블 덕분이다. 영화 ‘어느날 밤에 생긴 일’(1934)에서 바지 잠옷을 입고 나온 게이블의 모습에 여성 팬들이 매료됐다. 이후 남성들이 치마 잠옷을 버렸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bo.com 현지호 인턴기자(성균관대 경영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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