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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보고 따라 그렸을 뿐인데, 저작권법 위반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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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서 보고 그린 창작물들
출처 안 밝히고 베껴 엄연한 불법
대부분 “문제될 줄 몰랐다” 강변
프리랜서 디자이너 A(26)씨는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그림 디자인이 얼마 전부터 한 업체 가방이나 모자에 입혀져 꽤 짭짤한 수입을 얻고 있는데, 난데없이 ‘저작권 위반’이란 네티즌 지적을 받은 것이다. 운동화를 신거나 물고 있는 동물을 디자인하기 위해 인터넷 개인블로그에 올라온 동물 사진을 그대로 베껴 그린 게 문제였다. A씨는 “인터넷에서 누구나 검색이 가능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털어놨다.
웹툰이나 디자인업계에 ‘트레이싱(Tracing)’ 주의보가 발효됐다. ‘흔적을 따라가다’는 뜻의 트레이싱은 그림이나 디자인을 할 때 사진이나 다른 그림의 윤곽선을 따라 그리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포토샵 등 이미지 프로그램이 발달하면서 인물의 자세나 구도를 잡기 어려울 때 또는 건물이나 자동차 등 복잡한 대상을 그릴 때 자주 이용되고 있다.
태생상 트레이싱은 저작권 위반 요소가 다분하다. 사실상 베껴 그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본인이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닌 다른 사람 사진이나 그림을 트레이싱하는 것 자체가 원저작자의 저작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09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그린 ‘희망(hope)’이라는 포스터는 AP통신 사진기자가 찍은 보도사진을 트레이싱했다는 이유로 소송에 휘말렸다. 국내에서도 2012년 웹툰 ‘생활의 참견’ 속 여러 장면이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사진을 그대로 베낀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작가가 사과문을 게시하고 문제 그림을 모두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트레이싱이 위법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언제든 분쟁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최근 서울 시내 한 대학 소속 새 연구 동아리는 회지 표지를 공개한 뒤 “트레이싱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한 블로거가 지난해 4월 찍어 올린 새 사진에 겹쳤더니 거의 일치했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제주도 친환경지도를 만들기 위한 모금 사이트에 게시된 풍경화가 인터넷에 그 전부터 올라와 있던 사진을 그대로 베꼈다는 지적을 받았다. 구도는 물론 색깔까지 같다는 게 네티즌들 얘기다. 의혹 당사자 대부분은 “저작권이 문제가 될 줄 몰랐다”는 입장이다.
아직 트레이싱 문제가 법적 공방으로 가는 일은 드물다. 저작권법은 친고죄라 도용 당한 작가 본인이 고소해야 하는데, 재판 비용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려 사적으로 사과를 받거나 하는 식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기태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도 출처를 밝히지 않고 남의 저작물을 복제한다면 저작권법 위반”이라면서 “법적 처벌도 필요하지만 저작권법에 대한 느슨한 인식도 죌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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