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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탈출할 돈 없어” 합판 덧대고 버티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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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처도 포화 상태 대피 못해
“창문 뚫리면 욕조에 숨어야죠”
고지대 강화유리 주택 부유층은
“식량 확보됐으니 피난 안 간다”
“마라라고 피난처 개방” 주장에
트럼프 주말동안 끝내 안 열어
릭 스콧 미 플로리다 주지사가 “생명을 위협하는 대재앙”이라 표현한 허리케인 ‘어마(Irma)’가 10일 오전 7시(현지시간) 플로리다주에 상륙했다. 이에 앞서 플로리다주는 주민 약 650만명에 긴급 대피령을 내려 주말내내 북쪽 조지아주로 이어지는 주간도로는 북새통을 이루고 항공권은 바닥이 났다. 하지만 재난은 공평하게 닥쳐왔음에도 이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달아나야할 주민들은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격차가 나는 피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형편이 괜찮은 주민들은 금싸라기 값으로 치솟은 비행기 티켓을 구입해 간단히 피난을 마치거나 ‘철옹성’으로 대비한 주택에 안전하게 머문 반면, 대다수 저소득층은 비용 문제로 탈출을 포기한 채 부실한 합판에 의지해 허리케인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12년 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했을 당시 저지대에 살 수밖에 없었던 빈민층의 피해가 극심해 불거졌던 이른바 ‘재난 불평등’이 재연될 조짐이다.
스콧 주지사가 연일 ‘피난 경고’를 전하던 지난 나흘간 플로리다주의 양대 고속도로인 주간고속도로 75번(서쪽 해안)과 95번(동쪽 해안)의 북쪽 방향 4개 차로는 자동차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에 연료와 식수 값마저 치솟자 저소득층 주민 다수는 탈출을 포기하고 집에 남았다. 플로리다주에서도 비교적 내륙에 위치한 게인즈빌 주민인 프리랜서 언론인 달레나 쿠냐도 ‘탈출 포기자’ 중 한 명이다. 그는 8일 워싱턴포스트(WP)에 보낸 기고문에 “우린 석고보드와 합판으로 만들어진 집에 의지하든지, 아니면 바다에 가까운 도로에서 허리케인을 맞이하든지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였다”며 “탈출도 가격이 비싸다”고 적었다.
남아 있는 주민들 사이에서도 허리케인 대비 태세에 있어 빈부격차가 드러나고 있다. 영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한 홍보대행사 사주 맥스 보르지스(51)는 마이애미 외곽 섬에 있는 부촌 마이애미비치에 거주한다. 그의 집은 침수에 대비해 높인 지반 위에 있으며 시속 250㎞ 초강풍도 버틸 수 있는 강화유리가 설치돼 있다. 보르지스는 자신의 집과 미리 확보한 식량 등을 믿고 굳이 피난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
반면 도심 리버티시티 빈민촌 단칸방에 거주하는 공장 노동자 마이클 맥구건(55)은 동료 세입자들과 함께 다급히 합판을 구해와 창문 위에 못으로 고정해 폭풍에 대비했다. 그는 “창문이 깨지면 매트리스로 막을 거고, 그래도 안 되면 욕조에 숨겠다”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집세는 비싸고 급여는 낮은 플로리다주 빈민들은 낡은 집이나 거주용 트레일러에 의지해 강풍을 버텨야 한다.
재난 예상 지역을 벗어나지 못한 주민 5만여명을 위해 인근 컨벤션센터나 학교에 임시 피난소가 마련됐지만 이미 포화 상태다. 주민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에게 배정된 피난처의 위치를 찾거나 연락처를 확보하지 못해 거리를 헤매기도 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겨울 백악관’으로 불리는 자신 소유 마라라고 리조트를 피난처로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마이애미 주민 릭 카스티요는 영 일간 인디펜던트에 “당연히 트럼프가 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도 트위터를 통해 비슷한 의견을 제기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주말 동안 캠프데이비드에서 관련 긴급회의를 소집했을 뿐, 끝내 마라라고를 열지 않았다.
한때 풍속 기준 최고등급인 5등급까지 성장했던 ‘어마’는 쿠바 북부를 지나며 3등급까지 약화했다가 다시 4등급으로 확대되며 플로리다주 서쪽 해안으로 진입했다. CNN에 따르면 어마는 10일 오후 서부에 있는 네이플스, 포트마이어스 등을 거쳐 템파로 이동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어마는 앞서 휩쓴 영국령ㆍ미국령 버진제도에서 9명,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서 3명 등 최소 25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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