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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배낭] “비싼 외제 생존배낭 필요 없어… 마트에서 하나씩 준비를”

입력
2017.09.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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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생존배낭 개념 전파

유통기한 긴 통조림 등 도움

조리 필요한 라면은 부적합

방사능 농도 옅어질 때까지

길게는 14일간 버텨내야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의지’

재난 닥쳐도 삶은 계속된다

우승엽 생존21-도시재난연구소 소장은 "생존배낭은 구명조끼의 개념, 즉 최소한의 안전장치 일 뿐"이라면서도 "하지만 이것조차 없다면 우리는 이어질 삶이라는 구명정에 올라탈 기회조차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우승엽 생존21-도시재난연구소 소장은 "생존배낭은 구명조끼의 개념, 즉 최소한의 안전장치 일 뿐"이라면서도 "하지만 이것조차 없다면 우리는 이어질 삶이라는 구명정에 올라탈 기회조차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특전사 복무 때 강릉 무장공비 작전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 등을 지켜보면서, 이런 재난 상황에서 ‘과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었죠. 최소한의 지식과 대비가 필요한데 알려주는 곳도, 정리된 자료도 없어 직접 연구에 나선 게 시작이에요.”

우승엽(44) 생존21-도시재난연구소 소장은 특전사 제대 후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내다, 전업으로 실전 생존법을 연구하고 나선 도시재난 생존 전문가다. 국내에는 낯선 생존배낭 개념을 7,8년부터 알렸고, 몇 해 전에는 이 같은 노하우를 토대로 ‘재난시대 생존법, 도심형 재난에서 내 가족 지켜내기’(들녘) 등 안내서를 펴냈다. 7년 전 개설해 그가 운영하는 ‘생존21-도시재난안전포럼’ 카페(cafe.daum.net/push21)에서는 1만 9,000명의 회원들이 생활 밀착형 생존주의 전략 등 정보를 주고 받는다. 서울소방재난본부 자문위원이기도 한 그를 지난달 29일 만났다. 북한이 이른 새벽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해 일본 열도와 한반도가 충격으로 들썩이던 날이다.

-북한 도발이 심상찮다.

“이른 아침부터 카페 회원들이 공습 상황에서 생존법에 대한 정보를 많이 주고 받았다. 확실히 피부에 와 닿는 경험이 있어야 경각심이 커진다. 생존배낭도 7,8년 전부터 카페 등에서 소개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었다. 국민적으로 관심이 커진 건 많은 분들이 지난해 경주 지진을 체감한 이후다.”

-국민들 대비가 안일한 수준인가.

“불감증에 가깝다. 막연히 안전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지난해 전까지만 해도 지진 관련 자료나 대처법을 공유하면 시큰둥한 반응이 있었다. 전쟁 대비도 마찬가지다. 나쁜 일을 말로 하면 실현된다는 식의, 즉 ‘뱀 나오니 휘파람 불지 말라’는 태도가 적지 않고, 객관적 사실을 말해도 왜 위기와 공포를 조성하냐고 기분 나빠하고 심지어 화를 낸다. 선거철에 으레 오는 북풍이 또 왔나 보다 하는 식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준비가 필요한 것 같다. 조금이라도 대처법, 비상품 등을 준비한 분들은 ‘나는 어느 정도 방법도 알고 준비도 됐으니까’라는 식의 자신감으로 그다지 휘둘리지 않는다.”

-생존배낭은 어떻게 싸야 이상적인가.

“처음 관심이 생긴 분들은 대개 한 번에 갖춰진 패키지나 비싼 외제품을 사고 싶어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다 필요 없다. 불필요하게 고급형이거나 비상식량이 입에 안 맞는다. 20년간 보관 가능한 비싼 외제 비상식량도 필요 없다. 참치 캔 유통기한이 기본 7년이고 단백질 원이라 식량으로 좋다. 근처 마트나 1,000원 숍에서 꼭 필요한 목록들을 차근차근 준비하면 된다. 싼 배낭 하나에 식수, 사탕, 참치캔, 손전등, 주머니칼, 라디오 등을 챙기면 된다. 일본에서는 지방자치단체나 학교에서도 생존배낭 싸는 법을 알려준다. 국내에도 과거보단 정보가 많이 늘었다.”

-기타 비상식량으로 좋은 것은.

“배낭에는 포도당캔디 등 사탕, 초콜릿류를 넣어두는 것이 편하고, 배낭 외에 가정에 갖춰두는 비상식량으로는 시리얼, 즉석 분말 스프, 전지분유(가루우유), 즉석 식품, 건빵, 참치캔, 국수 등이 있다. 쌀은 2ℓ 페트병에 3병만 보관해도 한 사람이 열흘 먹을 수 있다. 흔히 라면을 떠올리지만, 유통기한이 짧고 조리가 필요한 라면은 그다지 좋은 비상식량이 아니다. 면을 보관하겠다면 차라리 마른국수를 페트병에 담아 두는 것이 좋다. 유통기한도 훨씬 길고 미지근한 물에 불리면 먹을 만하다.”

우 소장이 꾸린 기본형 생존배낭. 배낭, 침낭, 모자, 부직포수건, 비상식량, 초코과자, 건빵, 비상약, 생수, 야광봉, 조명탄, 라이터, 세명도구, 보조배터리, 나침반, 호루라기, 미니라디오, 손전등, 다용도칼, 비누, 응급보온포 등이 있다. 생존21-도시재난연구소 제공
우 소장이 꾸린 기본형 생존배낭. 배낭, 침낭, 모자, 부직포수건, 비상식량, 초코과자, 건빵, 비상약, 생수, 야광봉, 조명탄, 라이터, 세명도구, 보조배터리, 나침반, 호루라기, 미니라디오, 손전등, 다용도칼, 비누, 응급보온포 등이 있다. 생존21-도시재난연구소 제공

-평소 가정용, 직장용, 차량용 배낭을 따로 두라고 조언하던데.

“대부분 출근해서 일터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일본 대지진 때도 도쿄는 진원지에서 떨어져 있었지만 전기가 끊겨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신호등이 꺼지니 난리가 났다. 차도 안 다니고 집까지 가야 하는데 딱딱한 구두를 신고 계단을 내려와 몇 시간씩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약식으로 구비한 생존배낭과 운동화를 두면 적어도 집까지 물이나 열량 부족 없이 갈 수는 있다.”

-최근 북핵에 대한 국민 불안이 크다.

“1~4등급 대피소 중 대부분 국민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2~4등급인 만큼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핵 폭탄이 떨어져도 일단 지하로만 갈 수 있다면 생존 확률은 상당히 올라간다.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도 폭발 지점 근처 은행 지하에 대피했던 사람이 생존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미사일이 날아오는 (북측) 방향을 쳐다봐서는 절대 안 되고 폭발의 섬광, 열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폭발 반대방향으로 엎드리되 땅에 배가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 등을 알아두자. 또 폭발 이후 낙진이 비의 형태로 떨어질 수 있는데 절대 이런 물을 마시거나 몸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단 지하로 대피했다면 짧게는 2일 길게는 14일 간, 즉 방사능의 농도가 옅어질 때까지 지상으로 올라오지 않고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이 2주를 버틸 깨끗한 식수 등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기타 미사일 공습은 어떻게 대비하나.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되고 있지만 더 위험한 것이 공습 때 도시화재다. 자동차, 가스배관, 주유소 등에 불이 붙으면 화재가 번지고 물이 끊기면 끌 수도 없고, 산소는 급격히 빨려 들어가 질식 위험이 커진다. 2차 대전 때 독일 드레스덴 폭격, 일본 도쿄 폭격에서 미군이 커다란 포탄 대신 작은 소이탄 다수를 쓴 것도 불바다를 만들기 위해서다. 평소부터 화재상황에 대한 매뉴얼을 익혀 두는 것이 중요하다.”

우승엽 소장은 "나 역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해온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며 "물과 식량의 준비, 재난대비 매뉴얼의 숙지는 평소 취미로 즐기듯, 보험을 준비하듯 차근히 준비해야 할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우승엽 소장은 "나 역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해온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며 "물과 식량의 준비, 재난대비 매뉴얼의 숙지는 평소 취미로 즐기듯, 보험을 준비하듯 차근히 준비해야 할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시민들이 주로 하는 계획 중 비현실적이거나 불필요한 것이 있다면.

“해외나 산으로 가겠다는 계획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큰 재난이 터지면 (핵 폭발이 아닌 이상) 길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엉망이 된 도로에 가족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면 아수라장이 돼 멀리 떠난다는 일 자체가 불가능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평소 강조하는 것이 가능하면 집에서 문 닫고 버티라는 것이다. 요즘 건물 튼튼하다. 일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다. 그래서 식량, 물을 갖추고 집 안에 있던 물을 정수할 수 있는 수단 등을 알아둬야 한다.”

-알아둬야 할 정수 방법이 있을까.

“미국연방재난관리청이 공지하는 정수 방법 중 오래된 물을 페트병에 넣고 햇빛에 8시간을 두면 자외선에 살균이 되고, 오염된 물 1리터에 락스 4방울 떨어뜨리고 30분 기다리면 살균이 돼서 마실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국내에선 락스에 대한 거부감이 커서 권고하지는 않는다. 또 정전으로 집안 내의 정수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정수기 필터만 빼서 고무장갑과 연결해 집 안에 있던 물을 부어 쓰면 정수가 된다. 영화에서처럼 소변을 마시는 건 설사 위험이 있다.”

-기타 유용한 생존 기술은.

“생존가방을 준비해두고, 대피소를 확인해두고, 연락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웬만한 재난 상황에서 두루 쓸모가 있다. 그 외 태풍이 올 경우 망사테이프 등을 유리창에 붙여 유리 파손을 막는 등의 각종 자연재해 대처 방법을 찾아 익혀두면 좋다.”

-개인 은신처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도 은신처는 크게 신경 안 쓴다. 일단 완벽한 은신처는 없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그 공간에 너무 매달리면 떠나야 하거나 못 오게 될 때 더 비참해진다. 큰 돈을 들여 은신처를 만들기 보다 관련 지식, 기술을 알아두는 게 유용하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일터지면 다 죽어’라는 분들에게….

“주한미군은 한반도 유사 시에 항공기와 선박을 통해 장병 가족, 즉 미국 시민권자인 민간인을 일본으로 탈출시키는 훈련을 매년 두 차례 한다. 심지어 그들의 애완동물을 위한 공간과 사료 등에 대한 고민까지 한다. 하지만 더 심각해야 할 우리 정부와 국민은 유난 떤다는 생각에 대책이 허술한 상황이다. 정부가 철저하게 준비하고 나서야 할 측면이 적잖고, 동시에 국민들도 ‘이런 건 정부 몫이야’라 고만 미룰 사안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자세는.

“생존의지다. 이것저것 사들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물품만 그럴 듯하지 생존의지도 없는 분들이 있다. 자기 기준이 없고 아는 게 없을수록 엉뚱한 정보에 휩쓸릴 수 있다. 카페 회원인 한 경영대 교수님은 유일한 취미가 생존기술 공부다. 비상식량이나 도구 등을 재미로 사 모으고, 위기 대처법을 꾸준히 공부한다. 무겁고 심각하게 여기며 정작 대비는 안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취미 삼아서라도 정보를 익혀두는 게 훨씬 낫다. 재난이 닥쳐도 삶은 계속된다.”

글ㆍ사진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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