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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적 청탁’ 이재용ㆍ박근혜 모두 대가성 인지 여부가 관건

입력
2017.08.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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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판단 적절성 논쟁

“두 당사자가 공통된 인식 때 성립”

대법 판례 놓고 항소심 공방 예상

‘묵시적 청탁’ 과거 뇌물 사건서도

폭넓게 유죄 근거로 인용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등 혐의 1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돌아가기 위해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고영권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등 혐의 1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돌아가기 위해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고영권기자

징역5년이 선고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은 항소심에서 또 한번의 법리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경영권 승계작업에 대한 ‘묵시적 청탁’을 유죄의 근거로 본 1심 재판부 판단이 과연 적절했느냐는 논쟁이 일고 있다. 이 부회장 선고 직후 재계 등에선 ‘경영권 승계’라는 포괄적인 현안과 관련해 확실한 증거 없이 ‘묵시적 청탁’을 인정한 것을 두고, 제대로 된 판단이냐는 비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과거 주요 뇌물 사건에 있어서 ‘묵시적 청탁’은 폭넓게 인정돼 유죄 근거로 인용돼 왔다. 4대강 사업 설계업체로부터 수천만원 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 2014년 징역3년6월이 확정된 장모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장 전 사장이 2011년 6월 한국도로공사 사장에 임명되기 전인 그 해 4월 A업체에게 받은 5,000만원을 뇌물로 볼 수 있느냐가 쟁점이었다. 사장에 임명되기 전 받은 돈을 놓고도 대가관계가 성립하는 지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다. 구체적 청탁도 없었다. 하지만 법원은 장 전 사장이 A업체가 한국도로공사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사장에 임명되기 전부터 파악하고 있었고, A업체도 임명이 예정된 장 전 사장에게 미리 청탁할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역시 A업체가 건넨 돈은 공사 용역을 수수할 수 있도록 부탁한 ‘묵시적 청탁’이라고 본 원심의 판단에 법리적 오류가 없다고 인정했다. 지역주택사업을 하는 일반인 B씨가 해당 지역 구의원과 구청 공무원들의 아들ㆍ조카 등에게 프리미엄이 있는 조합원 자격을 부여한 사건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지역주택사업과 관련해 각종 편의를 제공해 달라는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법조계에선 이 같은 대법원 판례를 종합해 볼 때,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의 근거로 ‘묵시적 청탁’을 든 1심 재판부 판결에 법리적인 문제는 없다고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대법원은 묵시적 청탁이 성립하기 위해선 청탁 대상(경영권 승계)과 금품 지원의 대가성에 대해 두 당사자 모두 공통된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판례에서 언급하고 있다. 1심 재판부도 판결 과정에서 이 같이 밝히면서 “대통령은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 직무와 관련해 금품이 제공되면 포괄적으로 뇌물을 인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1심 재판부는 특검이 제시한 삼성물산 합병 등 개별 현안이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에 유리한 영향을 끼쳤다면서, ‘청탁의 대상’이 존재했다고 판단했다. ‘삼성물산 합병으로 현금출연 없이 삼성물산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효과가 발생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 신규순환출자고리 해소 등 삼성의 개별 현안에 대한 이 부회장의 명시적, 묵시적 청탁은 인정되지 않지만 이 문제들이 해결되면서 경영승계라는 포괄적 현안을 가진 이 부회장 입장에선 삼성그룹 지배력이 한층 강화됐고, 이득을 봤다는 설명이다.

항소심은 핵심 쟁점인 ‘묵시적 청탁’과 관련해 1심 재판부 판단을 삼성이 반증할 수 있는지 여부가 결과를 좌우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의 개별 현안이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지배력 강화와 무관하다는 객관적 증거를 이 부회장 측이 제시할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또 ‘기업 정책에 대해 대통령이 막대한 권한이 있는데, 추후 정부로부터 특정 지원 요구를 받아 이행한다면 모두 대가성 청탁이 되느냐’는 재계 비판도 논거로 세울 것으로 보인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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