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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건담 만드는 게 꿈” 거대 보행로봇 만드는 일본

입력
2017.08.26 04:40

<25>건담의 아버지 도미노 요시유키

#1

2019년 건담 탄생 40주년 맞아

18m 크기 보행로봇 제작 추진

애니 보고 자란 로봇공학자들

“건담 조종” 꿈 실현에 매달려

#2

로봇 전투 속 고뇌하는 소년병

“어른은 아이의 적” 메시지 담아

현실ㆍ완결적 세계에 성인팬 열광

프라모델, 로봇산업 등으로 확장

건담 탄생 30주년을 맞은 2009년 도쿄 오다이바 광장 앞에 세워진 실물 크기의 건담. 2019년에는 이 크기의 건담을 걷게 하는 ‘건담 글로벌 챌린지’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건담 탄생 30주년을 맞은 2009년 도쿄 오다이바 광장 앞에 세워진 실물 크기의 건담. 2019년에는 이 크기의 건담을 걷게 하는 ‘건담 글로벌 챌린지’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5년 10월 26일, 도쿄 아키히바라에서는 18m 높이의 거대 이족보행 로봇을 움직이게 하겠다는 목표 아래 이를 실행할 아이디어 공모 결과 발표회가 있었다. 이는 6층 높이의 빌딩을 걷게 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프로젝트다. 18m는 현실성이나 실용성으로 선정된 목표가 아니다. 그저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에 등장하는 모빌슈츠 건담의 키가 18m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건담 글로벌 챌린지’이며 목표하는 해는 내후년인 2019년이다. 2019년 역시 현실성이나 실용성으로 정한 시기가 아니다. 건담 탄생 40주년이 그 해이기 때문이다.

2009년 건담 30주년을 기념해 동경 오다이바 광장에 18m의 건담 입상을 세운 뒤 이어진 두 번째 프로젝트다. 아이디어를 내 선정된 공학자들은 ‘건담을 만드는 것은 나의 꿈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건담의 아버지 도미노 요시유키 감독도 심사위원으로 함께 했다.

리얼 로봇의 효시

‘기동전사 건담’은 1979년 방송된 이래 일본 애니메이션은 물론 프라모델 산업, 로봇 공학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 끝없이 관련 작품과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작품을 만들 당시 도미노 요시유키 감독은 ‘무적초인 점보트3’, ‘무적강인 타이탄3’를 연이어 성공시킨 뒤 좀 더 자기만의 색이 들어간 작품을 생각하고 있었다. 도미노가 속한 회사 선라이즈는 마쓰모토 레이지의 ‘우주전함 야마토’에 자극을 받아, 그때까지의 주류였던 에피소드식 방식을 탈피해 스토리가 이어지는 작품을 원했다. 도미노의 첫 구상은 ‘우주 15소년 표류기’로, 소년소녀들이 함선을 타고 우주를 떠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스폰서가 장난감을 팔기 위해 로봇이 나와야 한다고 못을 박자 도미노는 난처해졌다. 당시 유행이던 거대로봇이 등장하면 이야기 전체가 망가질 것이 뻔했다.

후에 ‘더티 페어’ 시리즈로 유명해진 작가 타카치호 하루카가 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에 처음 나온 강화복을 제안했고, 도미노는 이를 받아들여 2.5m의 강화복형 로봇을 구상했다. 하지만 거대로봇을 원하는 스폰서는 동의하지 않았고, 결국 마징가 Z와 같은 크기인 18m로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이것도 너무 커졌기 때문에 당초 계획이었던 우주 정거장을 무대로 쓸 수가 없었다. 고심하던 도미노는 물리학자 제럴드 오닐이 3년 전 제안한 원통형 스페이스 콜로니를 무대로 삼았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콜로니 주민과 지구 주민의 갈등을 골자로 하게 되었다. 이는 실상 스페이스 콜로니를 그것도 정확하고 정밀한 형태로 구현한 최초의 영상물로, 인공 우주거주구의 개념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건담의 외형은 일본식 갑주(甲胄)를 모델로 했고 스타워즈의 광선검을 본뜬 빔샤벨이라는 칼도 쥐어주었다. 기획은 많이 변했지만 도미노는 최초의 구상이었던 ‘우주 15소년 표류기’의 메시지는 놓치지 않았다. “어른들은 아이의 적이다”라는 것이다. 그 메시지를 전하는데 전쟁에 휘말린 소년병만한 이들이 있겠는가.

타협을 많이 했음에도 나온 작품은 기존의 어떤 로봇 만화와도 달랐다. 이야기는 과학적이고 현실성이 넘쳤다. 적은 절대 악의 외계인이 아닌 인간이었고, 선악은 불분명했다. 전쟁에 휘말린 아이들은 정의감에 불타는 대신 정신붕괴에 이를 정도로 괴로워하며 싸웠고,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개가 계속되었다.

처음에 시청률은 낮았고, 시청자들은 기존 로봇물과는 너무 다른 이 작품을 낯설게 여겼다. 하지만 ‘보도 듣도 못한 새로운 이야기가 나타났다’는 입소문을 타고 시청률은 점점 높아졌다. 재방영할수록 시청률이 높아지는 기현상을 일으켰고 극장판은 그 해 관객 최고치를 찍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의 로봇만화와 구별되어 ‘리얼로봇’으로 불리며 로봇 애니메이션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건담은 다른 로봇 만화들과 달리 전쟁에 휘말린 아이들의 고뇌를 다룬 현실적인 이야기로 주목받았다. 사진은 극장판 ‘기동전사 건담 1’(1981). 선라이즈 제공
건담은 다른 로봇 만화들과 달리 전쟁에 휘말린 아이들의 고뇌를 다룬 현실적인 이야기로 주목받았다. 사진은 극장판 ‘기동전사 건담 1’(1981). 선라이즈 제공

현실적인 거대로봇 이야기를 만들다

요코야마 미쓰테루가 ‘철인 28호’라는 거대 로봇을 만들고 나가이 고가 ‘마징가’에 어린 소년소녀를 태웠을 때에는 현실성을 따졌던 것이 아니었다. 로봇에 사람이 타자 아이들은 열광했고 변신을 하자 열광했고 합체하자 다시 열광했다. 당시 나가이 고는 ‘미친 과학자가 자기 아이들에게 신도 악마도 되라면서 막대한 힘을 가진 로봇을 줘 버렸다’는 설명이나마 넣었지만, 이후 쏟아져 나온 슈퍼 로봇물은 이 설정을 비판 없이 클리셰로 답습했다.

‘기동전사 건담’은 이미 클리셰화되어 더 이상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던 로봇 애니메이션의 설정들을 현실적으로 설명한 작품이다. 아이들의 놀이로만 여겨졌던 로봇 만화가 성인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도미노의 해석에 의하면 아이들이 로봇에 타는 이유는, 간단히 말하면 전쟁이라서다. 콜로니와 콜로니를 오가는 드넓은 우주에서, 군사지원이나 보급은 기대하기 어렵고 어른들은 다 죽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피난민이었던 아이들이 전투에 나선다. 이들은 후에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군대에 강제 편입된다. 후반부에 등장한 ‘뉴타입’이라는, 우주에서 인간의 감각이 진화한다는 설정이 이 상황에 한층 개연성을 더한다. 우주공간에서 함포나 미사일전 대신 백병전이 벌어지는 이유는 레이더와 통신을 방해하는 ‘미노프스키 입자’가 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싸우는 로봇에 다리는 왜 있느냐고? 다리는 장식이다. 높으신 분들이 그걸 모를 뿐이지.

더해서, 이 세계의 탑승형 로봇을 부르는 이름은 ‘로봇’이 아니라 ‘모빌슈츠’다.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받아들인 이 세계관에서 건담은 인격을 가진 애완용 로봇과 구분되고, 일종의 강화복으로 분류되어 전쟁의 도구로 허용된다.

강화복 개념의 로봇, 미노프스키 입자, 모빌슈츠, 콜로니 주민과 지구인의 정치적 갈등, 뉴타입 등의 설정은 현재까지도 로봇 전투를 중심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에서 그만큼 아귀가 딱딱 맞는 설명을 찾아낼 수 없는 독보적인 세계관으로, 후대의 창작자들은 새 세계관을 만드느니 차라리 이 세계관에 기대어 ‘건담’ 세계를 무한히 확장하는 길을 택하게 된다.

완벽한 자기완결성을 지닌 건담의 세계는 프라모델부터 실제 로봇 제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영감을 불어넣고 소비되고 있다. 사진은 일본 도쿄의 건담 카페. 위키미디어
완벽한 자기완결성을 지닌 건담의 세계는 프라모델부터 실제 로봇 제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영감을 불어넣고 소비되고 있다. 사진은 일본 도쿄의 건담 카페. 위키미디어

애니메이션에 반전의 메시지를 담다

도미노는 작품에서 등장인물을 가차 없이 죽여 ‘몰살의 도미노’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그는 이야기가 해피엔딩일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도미노의 말에 의하면 지금 세대는 전쟁을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데, 창작자가 이를 아름답게만 그리면 전쟁은 패션이 되어버리고, 아이들이 지금 보는 것이 살인이라는 것을 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속편인 ‘기동전사 Z건담’에서 작가의 철학은 더욱 두드러진다. 전편의 주인공들이 아군에게 위험인물로 분류되어 감시받다가 지구에 반기를 들기도 하고, 과거의 숙적이 한 편이 되어 싸우기도 하는 등 복잡한 양상을 띤다. 결말에서는 주인공의 정신이 붕괴되어 버리기까지 한다. 그는 후속작인 ‘전설거신 이데온’에서는 우주 전체가 멸망해 적과 아군을 포함한 전원이 사망하는 극단적인 전개까지 보여준다.

도미노는 작품 속에서 제시한 ‘뉴타입’을 ‘서로를 오해하지 않고 이해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이 개념은 지금은 ‘파일럿 적성이 뛰어난 사람’, 혹은 ‘신세대’를 부르는 고유명사로 굳어졌고, ‘건담’ 시리즈에 이어져 내려오며 지금까지도 반전의 메시지를 전한다. 결국 가장 뛰어난 뉴타입이 전쟁 전면에 내몰릴 수밖에 없지만, 전쟁터에서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 이들이 결국 서로를 가장 잘 공감하고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아이러니를 계속 갖고 가기 때문이다.

2005년 사카키바라 기계가 공개한 이족보행로봇 랜드워커2. 건담처럼 사람이 들어가 조종할 수 있으며 크기는 3.4m에 달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5년 사카키바라 기계가 공개한 이족보행로봇 랜드워커2. 건담처럼 사람이 들어가 조종할 수 있으며 크기는 3.4m에 달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건담을 만드는 사람들

2005년, 일본의 사카키바라기계라는 농기구 부품을 만들던 중소기업에서 랜드워커라는 높이 3m 40㎝의 인간 탑승형 이족보행 로봇을 만들어 국제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이 회사는 ‘에반게리온’의 감독 안노 히데아키를 불러 시승식도 했다. 개발 담당자인 미나미구모에게 로봇을 만든 사연을 묻자 지체 없이 “건담을 조종하고 싶으니까”라는 답이 돌아온다.

하지메 사카모토는 유명한 로봇 발명가로, 처음에 무술을 하는 작은 로봇에서 시작해 축구를 할 수 있는 2m의 로봇을 만들었고, 점점 로봇의 크기를 키워가고 있다. 그는 마침내 2016년, 14년에 걸쳐 4m 크기의 탑승형 이족 보행 로봇 하지메43호를 만들었다. 그의 최종 목표는 18m다. 이유는 물론, 건담을 만드는 것이 그의 일생의 꿈이기 때문이다.

건담에서는 ‘로봇의 다리는 장식일 뿐이다’라고 했지만, 애니메이션이 세상에 나온 지 30~40년이 지나자 어릴 적 이를 보고 자라난 사람들은 실제로 지상을 걷는 로봇을 만들고 있다.

어쩌면 세상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전형적인 말이 있다면 ‘애도 아니고 언제까지 그걸 좋아할 거냐’는 말이 아닐까. 아이들은 스펀지처럼 문화를 빨아들이고 어른이 된 뒤 이를 현실화시킨다. 부디 어른들이여, 아이들이 어릴 때 즐긴 것을 일생 즐기게 하라. 그러면 그들은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니.

김보영ㆍSF 작가

도미노 요시유키

1941년 11월 5일~.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이자 소설가. 어릴 적 데즈카 오사무의 아톰을 탐독했고, 그의 회사에 들어가 일본 최초의 TV 애니메이션인 ‘철완 아톰’의 20여개의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1972년 데즈카 원작의 ‘바다의 왕자 트리톤’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기동전사 건담’으로 후대의 애니메이션사의 판도를 바꾸었다. 이후 ‘전설거신 이데온’ ‘전투메카 자붕글’ ‘성전사 단바인’ ‘중전기 엘가임’ 등의 명작을 내놓았다. 현재까지도 열정적으로 작품을 감독하고 있으며, 다양한 관련 소설을 썼다.

<소개된 책>

모빌슈츠 건담 오리진

도미노 요시유키, 야스히코 요시카즈 지음

김영종 옮김

대원씨아이 발행

기동전사 건담

도미노 요시유키 지음

김정규 이성길 옮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발행

기동전사 Z건담

도미노 요시유키 지음

김정규 이성길 옮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발행

기동전사 건담: 섬광의 하사웨이

도미노 유시유키 지음

김명희 옮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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