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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5시리즈냐 E 클래스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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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벤츠 E 클래스와 BMW 5시리즈처럼 끈덕지게 라이벌 관계를 이어가는 차도 드물다. 이 두 차는 수입차 시장에서 베스트셀링 카 자리를 놓고 오랫동안 ‘왕좌의 게임’을 하고 있다. 초반엔 디젤 세단 열풍을 일으킨 BMW 520d를 주축으로 5시리즈가 우세했으나, 현재는 E 클래스가 압도적이다. 올해 7월까지 5시리즈는 8,676대, E 클래스(쿠페와 카브리올레 제외)는 2만1,156대가 팔렸다.
최근 메르세데스 벤츠 E 350d와 BMW 520d x드라이브를 각각 다른 날 시승했다. 두 차는 같은 세그먼트에 있지만 엔진 배기량과 구동 방식이 달라 정확한 맞비교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차들이 왜 국내에서 첨예한 라이벌 구도에 있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두 차는 개성과 매력이 뚜렷했다. 각자의 철학 안에서 시장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였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남은 건 소비자의 선택이다.
2008년 11월 BMW가 2.0ℓ 디젤 엔진을 단 5시리즈를 들여온 건 ‘신의 한 수’였다. 2010년 6세대 520d(코드 네임 F10)는 출시되자마자 벼락스타가 됐다.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크기에 우수한 연비를 자랑했고 고급유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었다. 게다가 6,000만원대라는 가격은 많은 이의 구미를 당기게 했다. 이전까지 대세를 이루었던 고배기량 가솔린 모델은 주로 8,000만원대였기 때문이다. 6세대 520d는 출시되고 나서 27개월 동안 수입차 시장에서 단 한 번도 왕좌를 내어주지 않았다. 메르세데스 벤츠 역시 E 220 CDI라는 경쟁 모델이 있었지만, 당시 그들의 주력은 가솔린 모델인 E 300이었다. 2010년 E 300은 총 6,228대가 팔리면서 메르세데스 벤츠 전체 판매량의 39%를 차지했다.
하지만 520d의 영광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지난해 6월 10세대로 탈바꿈한 새로운 E 클래스는 사전 계약 수만 1만 대를 넘어섰다. E 클래스는 지난해에만 총 2만2,463대(9세대 포함)가 팔리면서 프리미엄 세단의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 5시리즈처럼 터보차저를 단 2.0ℓ 디젤 엔진만 인기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영역이 새롭게 가세했다. E 클래스의 정통성을 지키고 있는 E 300의 수요는 없어지지 않았다. 올해 7월까지 E 220d(4매틱 포함)는 총 8,020대, E 300(4매틱 포함)은 7,872대가 팔렸다. E 클래스 세단에서 가장 낮은 트림인 E 200 마저도 3,563대가 팔렸다. 이런 추세라면 E 클래스는 올해 3만 대 판매도 노려볼 만하다.
지난 3월부터 고객 인도가 시작된 E 350d는 7월까지 총 671대가 팔렸다. E 클래스의 주력은 아니지만, 고성능 디젤 세단의 수요도 꾸준히 맞추고 있는 셈이다. 경쟁 모델인 BMW 530d도 비슷한 수준으로 팔리고 있어 V6 디젤 세단 영역 역시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E 350d의 안팎을 꼼꼼하게 살펴보니 E 클래스가 왜 승승장구하는지 새삼 단박에 느껴졌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라인업은 최상위 모델인 S 클래스에서 시작해 E와 C 등 밑으로 내려가는 방식이고, BMW는 반대로 3시리즈에서 시작해 위로 올라간다. 지금의 C 클래스와 E 클래스가 멀리서 얼핏 보면 S 클래스와 구분이 안 가는 이유다. 당연히 E 클래스의 외모에도 S 클래스의 유전자가 아롱거리게 새겨져 있어 우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하이라이트는 인테리어다. 메르세데스 벤츠 특유의 간결함과 곡선의 미학이 살아있다. 탄탄한 광택이 흐르는 알루미늄 패널은 젊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특히 E 350d의 센터페시아에 자리한 널찍한 12.3인치 디스플레이에선 미래의 감각마저 든다. 주행 중 크게 쓸 일이 없는 변속기는 스티어링휠에 붙여 두는 게 디자인적으로 낫다고 판단한 그들이다. 이는 2.0ℓ 엔진을 단 E 클래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얻기 위해 독일 프리미엄 세단을 찾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E 클래스의 성공 비결은 우선 이러한 디자인에 있는 건 아닐까?
게다가 E 350d 곳곳엔 AMG 익스테리어 패키지가 적용돼 스포티한 느낌을 더한다. 520d 역시 M 스포츠 패키지가 들어갔지만, E 350d가 주는 느낌과 다르다. E 350d가 입은 옷이 정갈한 슈트에 스포티한 포인트만 줬다면, 520d는 스포티한 액세서리를 과하게 드러낸 느낌이다. 물론 520d의 디자인도 안팎으로 세련되게 업그레이드됐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고급스럽고 우미한 감각을 갖춘 프리미엄 비즈니스 세단을 찾는다면 E 클래스에 더 눈길이 간다.
그런데 운전대를 잡고 가속 페달을 밟으면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종합적인 운전 재미는 확실히 520d에 더 있다. 지금의 3시리즈에서 아쉬웠던 날카로움과 쫀쫀함이 살아있다. 오랜만에 ‘타이어가 땅을 움켜쥐고 달린다’는 표현을 끄집어내도 좋을 정도로 흥겹고 통쾌하다. 주행모드 설정을 통해 부드럽게 혹은 화끈하게 탈 수도 있다. 5시리즈는 비즈니스 세단이라기보다 스포츠 세단에 더 가깝다. 전자식 네바퀴굴림 시스템인 x드라이브는 안정성까지 더해줘 어디서든 운전의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520d(G30) 때문에 앞으로 BMW가 내놓을 G 코드 시리즈의 후속작이 궁금해진다. 얼마 전 520d 딩골핑 에디션 낙찰자가 해준 운전 재미 때문에 E 클래스에서 5시리즈로 갈아탔다는 말이 실감 났다.
E 350d는 일단 520d와 성능 면에서 비교할 수 없다. 520d엔 2.0ℓ 4기통 디젤 엔진이 장착돼 최고출력 190마력, 최대토크 40.8㎏·m의 힘을 낸다. E 350d엔 3.0ℓ V6 디젤 엔진이 들어가 있어 최고출력 258마력과 최대토크 63.2㎏·m을 뿜어낸다. 출력에서 체급이 다르다. 당연히 V6 엔진의 울림이 더 크고 높은 출력이 부드럽게 쏟아져 나오는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새롭게 개발된 E 클래스의 섀시는 풍부한 토크를 부드럽게 곱씹으며 튼튼하게 버텨준다. 그래서인지 고속에서 체감 속도가 정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 E 350d의 주행감이 그만큼 안정적이고 조용했다는 뜻이다. 혹시 에어 서스펜션이 달린 건 아닌지 확인해 볼 정도였다. 핸들링은 날카롭지 않았지만 높은 출력을 가뿐하게 소화해낸다. 다만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 들려오는 디젤 엔진 특유의 거친 소음, 자동 변속기의 지나친 간섭과 친절(?)은 운전 재미를 떨어뜨렸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지난해 신형 E 클래스를 출시하면서 S 클래스에서 선보였던 각종 주행 보조 장치를 넣었다. E 350d에도 자동으로 주차하는 ‘파킹 파일럿’과 앞 장애물을 스스로 감지해 제동하는 ‘액티브 브레이크 어시스트’ 등의 첨단 장치들이 기본으로 들어가 있다. 교통사고 때 발생하는 충돌 소음으로부터 청각을 보호하는 기능까지 갖췄다.
5시리즈 역시 7시리즈에서 선보였던 제스처 컨트롤이 들어갔다. 룸미러 인근에 있는 센서가 손동작을 감지해 버튼을 누르지 않고도 볼륨 조절 등 다양한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반자율주행’이라고도 부르는 ‘드라이빙 어시스턴스 패키지 플러스’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로 속도를 설정하고 앞차와의 거리를 선택한 다음 능동형 차선 이탈 방지 장치를 활성화하면 가속 페달을 밟지 않고도 스스로 주행한다. 탁월한 운전 재미를 갖춘 차에 이런 기능이 있다는 것에 아이러니를 느꼈지만, 어떻게 보면 야누스의 얼굴 같은 매력으로도 다가온다.
앞서 말했듯이 E 350d와 520d는 경쟁 모델이 아니라 우위를 가리는 비교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각각의 시승을 통해 E 클래스와 5시리즈라는 차가 어떤 성격의 차인지는 가늠해볼 수 있었다. E 350d는 ‘삼각별’이 주는 의미가 중요하고 200마력, 60㎏·m 이상의 높은 출력을 부드럽게 만끽하고 싶은 이에게 적당하겠다. 단, 그만큼 내야 할 비용도 많이 든다.
결론적으로 독일 태생의 프리미엄 세단을 고려 중이라면 지금은 BMW 520d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520d(F10)는 지금의 경쟁 모델에 비해 부족한 게 많았다. 이는 왕좌에서 물러나게 된 이유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의 520d(G30)는 브랜드의 철학이 제대로 드러난 호쾌한 운전 재미 그리고 첨단 기능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까지 갖췄다. 한 마디로 괄목상대다. E 클래스의 포트폴리오가 워낙 치밀하고 다양한 탓에 당장 전체를 따라잡지는 못하겠지만, 520d만큼은 국내 시장에서 아직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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