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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스토리] 베트남 여행의 별미, 서울에서 소환되다

입력
2017.08.25 04:40
롯데호텔서울 뷔페 레스토랑 라세느의 베트남 메뉴. 풍성한 채소와 허브를 곁들여 느억맘 베이스 소스와 함께 먹는 분짜(왼쪽)와 짜조. 뒤쪽에 보이는 디저트는 베트남식 젤리.
롯데호텔서울 뷔페 레스토랑 라세느의 베트남 메뉴. 풍성한 채소와 허브를 곁들여 느억맘 베이스 소스와 함께 먹는 분짜(왼쪽)와 짜조. 뒤쪽에 보이는 디저트는 베트남식 젤리.

“베트남 음식이란 뭐죠?”

태국 음식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미 깊숙하게 자리 잡은, 세계적 흐름을 타고 한반도에도 어느 정도 안착한 음식 문화다. 그러나 베트남 음식은 아직 잘 모른다. 이제 막 쌀국수 이외 다른 메뉴를 시도해보려는 중이다.

롯데레전드호텔사이공 민 훙(Minh Hung) 셰프가 답했다. “느억맘(nuoc mamㆍ멸치 등을 발효시킨 액젓)이 모든 음식에 들어가는 것이 특징입니다. 수십 가지 허브와 향신료를 사용하고 다양한 형태로 가공한 쌀을 주식으로 먹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죠.”

“한국 음식이 뭐죠?”라는 질문에 우리가 답할 때 “다양한 발효 소스를 기본으로 맛을 내고 다채로운 종류의 채소를 반찬으로 내놓으며 쌀밥을 주식으로 먹는 게 특징이죠”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꽤나 흡사하다. 느억맘은 쉽게 말해 멸치액젓이다. 생선 단백질이 발효된 액체라면, 한국 음식에서 아주 익숙한 향과 맛이 아니던가. 깊은 국간장과도 결이 비슷하다. 베트남 음식은 느억맘을 기본적 맛의 뼈대에 깐 뒤 새콤달콤한 맛을 가미하고 다양한 허브와 채소, 향신료로 향을 더해 5미(味)를 고루 갖춘다. 미얀마, 태국, 라오스와 환경도 음식도 비슷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음식이 다르듯 분명히 다르다.

롯데레전드호텔사이공에서 롯데호텔서울로 파견된 온 민 훙, 쫑 꾸엉 셰프.
롯데레전드호텔사이공에서 롯데호텔서울로 파견된 온 민 훙, 쫑 꾸엉 셰프.

쌀국수 너머로 펼쳐지는 베트남 맛의 향연

“쌀국수 외에 추천하고 싶은 베트남 음식이 있나요?” “얼마든지요!”

베트남 음식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쌀국수만 있는 게 아니다. 베트남의 주식은 쌀인데, 지어 먹는 방식이 다양하다. 밥은 물론, 갖가지 모양의 국수와 라이스페이퍼를 만든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인식된 쌀국수는 포보(Pho Bo)다. 포(Pho)는 납작한 쌀국수 형태를 가리키고, 보(Bo)는 소고기라는 뜻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쌀국수 중 하나에 불과한,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한 종류인 포보뿐이었다.

포 이외에도 모양에 따라 분(Bun)을 비롯해 다양한 쌀국수가 있고, 육수의 재료와 고명에 따라 또 더 다양한 쌀국수가 조합된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쌀국수가 베트남의 전국적인 명물로 자리잡기도 했다. 분보후에(Bun Bo Hue)는 중부 도시 후에(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식 쌀국수로, 가느다란 쌀국수 면인 분(Bun)과 소고기(Bo)가 곁들여진다. 미(Mi)나 미엔(Mien)도 있는데 각각 달걀을 넣어 반죽한 노란 국수, 그리고 투명한 당면을 뜻한다.

포보나 분보후에에서 알 수 있듯, 베트남 음식은 베트남어를 조금만 외우면 메뉴만 보고도 이해할 수 있게 돼있다. 가(Ga)는 닭이라 포 가(Pho ga)는 닭고기 쌀국수다. 헤오(Heo)나 런(Lon)은 돼지고기, 까(Ca)는 생선, 똠(Tom)은 새우다. 여행 중 ‘밥심’이 필요하다면 메뉴명에서 껌(Com)을 찾으면 된다. 밥이라는 뜻이다. 밥(Bap)은 옥수수라는 뜻이니 헷갈리지 말자. 조리 방법도 메뉴명에 이미 쓰여있다. 고이(Goi)는 샐러드, 꾸온(Cuon)은 롤, 코(Koh)는 졸임, 싸오(Xao)는 볶음, 느엉(Nuong)은 구이다. 제육 볶음, 된장 찌개와 같은 원리로 창제한 음식 이름이다.

여행자의 집단 입맛, 서울에 베트남을 소환하다

롯데호텔서울 뷔페 레스토랑 라세느에서는 주한베트남대사관, 베트남항공과 함께 베트남 음식을 선보고 있다. ‘신 짜오(Xin Chao) 베트남’이라 이름 붙인 이 프로모션은 9월 30일까지 열린다. 아직 낯선 베트남 음식을 낯설지 않게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다. 롯데호텔서울 관계자는 “최근 베트남 음식의 인기에 부응해 베트남 호치민시 롯데레전드호텔사이공의 민 훙, 쫑 꾸엉(Trong Cuong) 셰프를 초빙해 현지 입맛을 소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 훙 셰프는 “베트남에서도 누구나 좋아하고, 여행자들에게도 인기 있는 대표 메뉴를 골랐다”고 했다.

쌀국수를 진한 육수에 찍어먹는 분짜(Bun Cha), 쌀가루 반죽에 갖은 채소와 새우 등 해산물을 듬뿍 넣어 부친 베트남식 크레페 반 세오(Banh Xeo)등 색다른 음식 7가지를 베트남 요리사들의 솜씨로 맛볼 수 있다. 두 셰프가 주방에서 직접 조리한다. 부페 레스토랑에서 선보이니 음식 탐험가에게 반가운 기회다. 호텔 식당가는 주로 서양과 일본의 스타 셰프를 초빙해 왔다. 이번 베트남 음식 프로모션은 베트남 음식의 인기를 반영한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콘’의 다양한 베트남 요리. 콘 제공.
서울 마포구 서교동 ‘콘’의 다양한 베트남 요리. 콘 제공.

몇 해 전 양꼬치의 광속 질주를 보는 듯 하다. ‘3,900원 쌀국수’ 같은 분식 스타일의 쌀국수 전문점 프랜차이즈와 서울 종로에서 인기를 얻은 뒤 엄청난 기세로 분점을 늘려가는 에머이 같은 생 쌀국수 전문점, 그리고 신사동, 망원동, 한남동 등 음식 유행을 이끄는 동네마다 눈에 띄게 등장하고 있는 베트남 식당의 상승세가 매섭다. 프랜차이즈가 등장했다는 것은 그 음식의 맛이 표준화, 일반화해 대중 소비자에게 받아들여지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증거다. 쌀국수 시장은 이미 포화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유행을 이끄는 동네에서 등장하는 베트남 식당에서는 한국에서 맛보기 어려웠던 메뉴들을 경쟁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요즘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콴안다오, 용산구 한남동 분짜라붐은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니 동남아보다도 무더운 날씨에 힘입어 길고 긴 줄을 만들어내고 있다.

베트남 중부 후에 스타일의 쌀국수, 분보후에. 콘 제공.
베트남 중부 후에 스타일의 쌀국수, 분보후에. 콘 제공.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베트남 식당 안(Anh)에서는 얼마 전 두 번째 식당 콘(Con)을 개업했다. 서교동 경의중앙선 책거리 인근에 낸 두 층 규모의 식당은 안보다 훌쩍 크고, 메뉴도 거의 겹치지 않는다. 소고기로 육수를 내고 베트남 햄과 선지 같은 고명과 바나나 꽃, 레몬그라스, 허브를 듬뿍 넣어 매콤하고 기름진 육수에 훌훌 먹는 후에식 쌀국수 분보후에를 맛볼 수 있다. 짭짤한 느억맘 소스에 분, 채소, 짜조(Cha Gioㆍ고기와 채소로 속을 채운 라이스페이퍼 롤 튀김), 직접 만든 베트남 소시지 등 든든한 고명을 함께 비벼 먹는 분넴느엉(Bun nem nuong), 반세오 등 여전히 서울서는 쉽게 발견하기 힘든 베트남 음식이 주를 이룬다. 제이슨 대표는 “요즘은 전통적 베트남 음식을 더욱 다양하게 소개할 수 있는 시기”라며 “가정식 스타일이었던 안보다 좀더 다채로운 메뉴를 마련한 콘을 연 이유”라고 말했다. 또 “한국 소비자들은 언제나 새로운 맛과 문화에 열려 있다”며 “점점 더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이 한국에 소개될 것이고, 베트남 음식은 그 중 하나”라고 했다.

‘반세오’는 쌀가루로 만든 베트남식 크레페다. 숙주 등 채소와 돼지고기, 새우 등 넉넉한 재료가 들어가 식사로도 손색 없다. 콘 제공.
‘반세오’는 쌀가루로 만든 베트남식 크레페다. 숙주 등 채소와 돼지고기, 새우 등 넉넉한 재료가 들어가 식사로도 손색 없다. 콘 제공.

지난 몇 해간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관광 시장을 주도했다. 중부 다낭과 호이안, 나짱 등 새로운 관광지가 개발되면서부터 베트남을 찾는 이들이 부쩍 더 늘었다. 여행으로 찾은 베트남에서 맛 본 그 음식을 서울에서 그대로 맛보고자 하는 열망의 발길이 새로운 베트남 식당들로 몰리고 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사이공리'의 반미. 이해림 객원기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사이공리'의 반미. 이해림 객원기자.

사이공리(Saigon Lee)는 서울 노량진동 신노량진시장 골목에서 조그맣게 시작한 반미 전문점이다. 반미는 밀가루로 만든 베트남식 바게트를 뜻하기도 하고, 그것을 이용해 만든 베트남식 샌드위치를 뜻하기도 한다. 돼지고기로 만든 파테를 넉넉히 깔고 미트볼이나 베트남식 햄, 양념해 구운 돼지고기나 닭고기, 꽁치 등 주재료가 되는 고기를 듬뿍 넣은 샌드위치다. 풍성한 채소에 새콤하게 절인 당근과 무채까지 들어가 한국 여행자가 베트남에 가면 필연적으로 반하고 오는 맛이다. 몇 가지 반미로 시작한 이 식당은 불과 몇 달 만에 메뉴가 배 이상으로 늘었다. 손님은 그보다 몇 배로 늘었다.

이전에 사이공으로 불린 베트남 남부 대도시 호찌민 출신인 이소희 대표는 베트남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했었다. 한국에 정착하고 그 경험을 살려 식당을 열었는데 그야말로 ‘눈 떠보니 스타’ 식당이 돼있었다. 처음 생각한 식당의 타깃은 주변에 거주하는 베트남인이었다는데, 이제 식당 손님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다. 주변 고시생도 오고, 멀리서부터 찾아 온 반미 마니아들도 줄을 잇는다. 이 대표는 “호찌민에서 낸 맛을 그대로 내려 하지만 허브 종류가 다양하지 않아 쉽지 않다”고 했다. 또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에서 주문하거나 경기 수원에서 아버지가 마당에 키운 베트남 허브를 조금씩 가져다 쓰는데 꾸준히 공급하기엔 어려움이 많다”고 아쉬워했다.

이 대표가 냉장고에서 동양 바질과 레몬 바질, 민트를 꺼내 줬다. 듬뿍 넣은 고수가 시시해질 정도로 강렬하고 개성 있는 향이 훅 끼친다. 반미 사이에 듬뿍 넣어 한 입 베어 물자 호찌민 노점에서 먹던 그 맛이 온 몸으로 환기된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제는 베트남을 만난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강태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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