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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비 1000만원… 돈 없어 동생 주검 포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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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사망 작년 1232명
5년 사이 두배나 증가
10명 중 9명은 가족 있지만
장례비 없어 시신 인수 외면
생활고 시달리는 빈곤층일수록
형제ㆍ자매 소득 수준도 낮아
가족 역할 제대로 하기 어려워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 75만원
시신 하루 보관 비용에 불과
“고립된 죽음, 나라가 끌어 안아야”
지난해 8월 4일 김모(당시 59)씨 부자는 서울 광진구 집에서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 무더운 여름 문을 모두 꼭 닫은 채 연탄불을 피우고 잠든 뒤 다음날 눈을 뜨지 못했다. 부자의 주검은 두 달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유서 대신 남겨진 아들(당시 27)의 다이어리엔 삶에 대한 의욕이 가득했다. 새로 시작하려던 사업 계획, 운을 기대한 듯 찍어둔 로또 번호 6개 등. 살고자 했으나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린 이들 부자에게 경찰은 ‘생활고로 인한 자살’이란 사건 제목을 달았다.
부자의 불운은 죽음 뒤에도 드리웠다. 경찰이 주변을 수소문하고 연락을 기다렸지만 시신을 수습할 가족이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 의뢰를 받은 구청이 시신을 인수할 수 있는 ‘연고’ 기준(2촌 이하)에 따라 제적등본, 가족관계증명서 확인 등 행정력을 가동한 끝에 김씨 누나, 여동생과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힘겹게 찾아낸 둘은 뜻밖의 말을 했다. “동생(오빠)과 조카 시신을 포기하겠습니다.” 김씨가 짊어져야 했던 빚이 함께 떠넘겨질까 봐 두렵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다. 사실 망자의 빚을 당장 떠안게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들 자매 역시 김씨 부자의 장례를 책임질 만큼 여유로운 살림이 아니었다. 결국 김씨 부자는 ‘실제’ 가족은 있지만 시신을 인수할 ‘행정상’ 가족이 없어 ‘무연고 사망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부자의 시신은 장례 절차가 생략된 채 공영 화장장(서울시립승화원)으로 옮겨져 화장됐다. 무연고 사망자는 화장 후 뼈를 골라내는 작업(수골)만 하고, 뼈를 가는 작업(분골)은 하지 않는다. 혹시나 뒤늦게 가족이 찾아와 장례를 해줄 수도 있다는 바람 때문이다. 수골 단지는 무연고 사망자만 안장하는 ‘무연고추모의집’(경기 파주시)으로 옮겨진다. 그 곳은 안장이라기보다 사실상 보관하는 장소에 가깝다. 그리고 10년간 가족을 기다린다. 김씨 부자처럼.
비단 김씨 부자만의 얘기는 아니다. 무연고 사망자가 늘고 있다. 살던 곳에서 혹은 길가나 병실에서 숨을 거뒀지만 유가족이 없거나 시신을 인수할 사람이 없어 시신마저 홀로 쓸쓸하게 남겨진 사람들. 상당수는 유가족이 있음에도 경제적인 부담 등을 이유로 시신 인수를 거부당한다. 죽어서까지 외면을 받고 있는 셈이다. 경제 불황과 각박한 사회가 만든 슬픈 단면이다.
2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무연고 사망자는 급증 추세다. 2011년 682명에서 매년 늘어 지난해에는 1,232명으로 5년 만에 두 배로 증가했다. 인구가 밀집된 서울시는 증가세가 더 가파르다. 지난해 전체 308명이던 해당 수치는 올해 상반기에만 200명을 넘어섰다.
관계 기관 종사자들은 가족이 실제 없는 무연고 사망자보다 최근엔 ‘유가족 무연고’ 사망자가 대부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직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구청 관계자는 “경찰이나 병원에서 가족을 찾을 수 없다며 보내오는 분들 10명 중 9명은 2촌 이내 가족과 연락이 되지만, 정작 시신을 인수해가는 건 한두 명 될까 말까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청 관계자도 “10년 전에는 10명 중 5, 6명은 시신을 인수해갔는데 이제는 사실상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빈곤이 가장 직접적인 이유로 꼽힌다. 구청 관계자는 “가족이 시신을 수습하면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최근에는 장례비용을 댈 수 없어 시신을 포기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결국 돈이 가족 시신까지 포기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실제 병원이나 전문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공영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서울시설공단이 시민 정보 제공 차원에서 조사한 장례비용은 빈소사용료(3일장 기준) 186만원, 장의용품 및 염습 320만원, 안장 260만원 등을 합쳐 평균 1,189만원 정도. 가장 기본적인 절차만 치러도 족히 600만원은 든다. 정부가 기초생활수급자에 한해 장례비를 75만원 지원하고 있지만, 시신을 수습하고 병원이나 장례식장에 하루 보관하는데 드는 비용밖에 안 된다.
이렇다 보니 가족 시신을 두고 달아나는 일도 발생한다. 2013년 5월 대전 한 병원에서는 장례를 치르던 유족이 어머니(68) 시신을 남겨놓고 사라졌다. 두 아들과 딸이 1,000만원 가까운 장례비를 낼 수 없자 “돈을 마련해 오겠다”고 떠난 뒤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돈으로 병원비를 납부하고, 장례비는 조의금으로 충당하려 했지만 조의금이 그만큼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장례 절차는 중단됐고 어머니는 무연고 사망자로 남게 됐다.
2013년 경북 경산시에서는 남편 발인을 2시간 가량 앞두고 장례비를 마련하겠다며 장례식장을 나선 아내 김모(53)씨가 자신이 살던 아파트 13층에서 뛰어내려 운명을 달리했다. 김씨 남편도 생활고를 버티지 못하고 같은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한 터라 안타까움은 더했다. 이들 부부는 10년 가까이 매달 나오는 120만원 지원금에 의존하던 기초생활수급자였다. 김씨는 지인들에게 줄곧 “장례비 500만원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부부 모두 무연고 사망자가 됐다. 지난해 4월 서울에서는 돈이 없어 아버지 장례를 포기해야 했던 30대 남성이 불과 몇 년 후 같은 이유로 무연고 사망자가 되는 일도 있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빈곤층일수록 부모 자녀 형제 자매 모두 비슷한 소득 수준일 확률이 높아 서로 가족 역할에 충실하기 어렵다”며 “이렇게 파편화된 가족 구성원들이 사회 안전망에서도 배제되면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례비나 병원비에 밀려 가족이 시신을 포기해 무연고 사망자가 되는 것은 죽음 이후에도 다시 한 번 고립되는 것”이라며 “사회가 시신을 포기하는 가족을 비정한 사람으로 몰고 갈 게 아니라 해당 문제를 국가 시스템으로 끌고 들어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1월 말 A씨는 서울 강북구청에서 걸려온 전화에 “형을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해달라”고 부탁하면서 통곡했다. 형의 두 아들이 시신 인수를 포기한 뒤 그에게 연락이 왔지만 그 역시 신용불량자였다. 그가 수화기 너머 생면부지 공무원에게 했던 기나긴 다음 넋두리는 어쩌면, 죽어서도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려지는 사람들을 우리 사회가 무관심하게 방치해선 안 된다는 호소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남처럼 떨어져 지낼 수 밖에 없었어요. 형은 서울에서, 저는 강원도에서 서로 어떻게든 살아 남아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매일 버티고 버티면 언제간 형과 다시 살을 부대끼며 살 수 있는 날이 올 줄 알았는데 오지 않았네요. 심지어 제가 형의 장례도 제대로 치러주지 못해 너무 슬프고 화가 납니다. 살아서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했는데, 죽어서도 남들처럼 죽지 못하네요. 저희 형 잘 보내주세요. 죄송합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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