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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스타일’의 성지? 불법 온상 된 강남클럽

입력
2017.08.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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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부터 건장한 가드 불쾌한 눈빛

외모ㆍ옷차림 훑으며 입장 실랑이

폐쇄 공간에서 생일축하 불꽃쇼

자정 지나며 거대한 흡연실로

성추행ㆍ절도ㆍ폭행신고 줄잇는데

경찰 CCTV 설치 요청도 거부

홍대 사건 한달…안전 불감증 여전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클럽을 찾은 손님들이 춤을 추고 있다.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클럽을 찾은 손님들이 춤을 추고 있다.

“왜 안 된다는 거에요?” “글쎄 안 된다니까, 안 돼!”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절정으로 치닫던 18일 밤 11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A클럽 입구에서 몸무게가 100㎏은 족히 돼 보이는 덩치 좋은 청년이 20대로 추정되는 외국여성 서너 명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강남 일대에서 ‘핫(Hot)’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이 클럽 출입에 전권을 가진 ‘가드(문지기)’의 제지에 여성들이 발끈하고 나선 것. 양 손바닥을 안쪽으로 향한 채 여성 몸매를 그리는 적나라한 손짓을 하며 가드가 말했다. “전체적으로 어렵다는 거야. 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들어.”

옆 쪽에서도 30대 남성과 말다툼이 한창이었다. “테이블 예약 손님이 아니면 입장이 안 된다”는 제지와 “들어가서 비싼 술 시키면 되는 거 아니냐”는 반박이 충돌하고 있었다. 한 남성은 입구 사진을 찍다가 “휴대폰을 부숴버린다”는 위협에 질겁을 했다. 그 사이 한껏 멋스럽게 차려 입고 입구 앞에서 줄을 선, 족히 100명은 될 법한 이들은 가드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외모와 옷차림 등 가드가 부여한 일방적 기준을 무사 통과한 ‘선택 받은 자’들의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됐다. 고막을 뒤흔들고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데시벨 높은 전자음악에 몸을 맡긴 이들, 대나무처럼 무대 위로 뻗은 요란한 레이저 조명 아래 술에 취한 이들이 자정을 넘어가면서 지하 1, 2층 클럽을 가득 채웠다. 300㎡ 남짓 어두컴컴한 지하 공간은 금새 연기 자욱한 거대한 흡연실이 됐고, 테이블 곳곳에선 ‘생일 축하’ 노래와 함께 폭죽놀이형 막대 ‘스파클라 불꽃쇼’가 펼쳐졌다. 입구가 하나밖에 없는 폐쇄공간이라는 사실은 애초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대학생 최모(25)씨는 이를 “즐겁다가 문득 무서워지는 시간”이라고 했다.

18일 오후 철제 인테리어로 가득한 서울 강남구 논현동 A클럽에 손님들이 들어서고 있다. 김형준기자
18일 오후 철제 인테리어로 가득한 서울 강남구 논현동 A클럽에 손님들이 들어서고 있다. 김형준기자

경찰도 슬슬 바빠진다. 무아지경 공간이 무법지대로 변해가는 시간. 경찰 관계자는 “주말이면 강남 일대 클럽에서만 하루에 평균 2, 3건, 많게는 5건 정도 사건사고 신고가 들어온다”고 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건 성추행 관련 다툼이다. 지난 13일 인근 D클럽에서는 30대 남성이 여대생을 성추행해 강남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화장실로 가려던 여성을 구석으로 끌고 가 범행을 저지른 건데, 남성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했다. 그 곳에서는 하루 전 유명 남성 아이돌 그룹 멤버가 여대생을 성추행해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절도도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한다. 춤을 추는 사람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몰래 빼내가거나, 테이블에 잠시 내려놓은 지갑을 그냥 가져가기 일쑤다. 지난달 30일에도 경기 김포에 사는 30대 직장 여성이 A클럽에서 휴대폰을 절도 당했다며 경찰을 찾았다.

20대 여성 김모씨는 클럽 얘기만 나오면 몸서리를 친다. “모르는 남자가 다가와서 제 몸을 번쩍 들어올리다 떨어뜨렸어요.” 바닥에 머리를 부딪힌 김씨는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실려가야 했다. 재미동포인 그 남성은 다음날 아무 일 없다는 듯 미국으로 출국했다고 한다. 담뱃재를 아무렇지 않게 털다 옆자리 남성 얼굴에 화상을 입힌 20대 대학생, 몸을 부딪혔다고 서로 뺨을 때리는 몸싸움을 해 경찰 조사를 받게 된 20대 초반 여성 등 말다툼이나 몸싸움은 수시로 벌어진다.

지난 5월 강남경찰서는 강남 일대 대형클럽 5곳 책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폐쇄회로(CC)TV를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A클럽만 해도 입장객 짐 보관장소에 집중된 4, 5개 CCTV 외 다른 감시장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있던 카메라도 몇 달 전 뜯어냈다”는 게 클럽 단골들 얘기. CCTV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쉽지 않을뿐더러 범죄 예방 효과도 전무하다는 게 경찰 입장이다. 하지만 클럽 책임자들은 “유지 및 관리 비용이 많이 들고, 입장객들도 꺼려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경찰 관계자는 “불과 한달 전 벌어졌던 홍대 클럽 흉기난동 사건이 여기서 벌어지면 오롯이 피해자나 목격자 진술만으로 진상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 전역에 호우주의보가 내린 20일 새벽, 강남 한복판은 여전히 클럽을 찾은 손님들로 붐볐다. 클럽 안은 흥으로 가득했고, 경찰서엔 여전히 이성을 다스리지 못한 이들로 가득했다. 클럽에서 상대를 때린 20대 남성, 파출소 바닥에 시원하게 토사물을 뿜어낸 인사불성 외국인, 경찰서로 온 이유도, 국적도 다양했다. ‘강남스타일’의 성지는, 그렇게 불법이 판치는 무법지대가 돼 가고 있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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