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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 장례 확산 되면 무연고 사망자 줄어들 것”

입력
2017.08.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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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대행해주는 시민단체 ‘나눔과나눔’ 박진옥 사무국장. 고영권 기자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대행해주는 시민단체 ‘나눔과나눔’ 박진옥 사무국장. 고영권 기자

9일 오후 1시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2층 유족대기실에선 장례 준비가 한창이었다. 갓 뽑은 꿀떡과 인절미, 한과 약과들이 모여 있는 한 편에서 4, 5명이 제기그릇과 참외, 사과 같은 제철 과일을 반짝이게 닦고 있었다. 황태, 곶감, 밤, 대추도 상 위로 올라갈 차비를 하고 있었다.

유족대기실 앞으론 ‘지금 이곳에서는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오셔서 국화꽃 한 송이 올려주세요’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시민단체 ‘나눔과나눔’ 소속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하고 있던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장례 준비 모습이다.

무연고 사망자 시신이 화장장으로 이동하는 모습. 이상무 기자
무연고 사망자 시신이 화장장으로 이동하는 모습. 이상무 기자

사망자 두 명 위패와 음식이 병풍 앞에 정갈하게 자리를 잡자 박진옥(45) 사무국장이 입을 열었다. “장례를 치러드려야 할 분들 시신이 도착했다고 하네요. 내려갑시다.” 회색 승합차에 실려온 관이 화장장으로 옮겨져 뜨거운 불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르는 모습. 시민단체 나눔과나눔 직원이 촛불을 붙이고 있다. 이상무 기자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르는 모습. 시민단체 나눔과나눔 직원이 촛불을 붙이고 있다. 이상무 기자

“57년생 이00 선생님은 영등포구에서 지병으로 홀로 돌아가셨습니다. 형님이 있으셨지만 경제적 이유로 시신을 위임하셨습니다. 잠시 묵념하겠습니다.” 박 국장은 묵념을 마친 뒤 향을 피우고 고인들에게 술 한잔씩 올렸다. 그리고 추모사가 이어졌다. “무연고 사망을 바라보며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봅니다. 죽음마저 고민되는 삶. 이들의 외로운 죽음이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편히 가소서.”

무연고 사망자의 화장과 장례가 끝나고 무연고추모의집으로 이동하기 전. 이상무 기자
무연고 사망자의 화장과 장례가 끝나고 무연고추모의집으로 이동하기 전. 이상무 기자

이날 장례는 1시간30분 정도 소요됐다. 박 국장은 “가족을 찾고 찾다 결국 무연고자가 되신 분들은 냉동고에 오래 보관돼 꽁꽁 얼어 있어 2시간 넘게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인의 추려진 뼈는 단지에 담겨 무연고 사망자들 안식처인 ‘무연고추모의집(경기 파주시)’으로 보내졌다.

무연고 사망자 화장과 장례가 모두 끝나고 고인의 위패를 태우는 모습. 이상무 기자
무연고 사망자 화장과 장례가 모두 끝나고 고인의 위패를 태우는 모습. 이상무 기자

장례를 마친 박 국장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공영장례’가 도입돼 장례비용을 대폭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가족이 뻔히 있는데도 무연고 사망자가 되는 분들이 확연히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가족의 시신을 포기했지만 화장 날짜에 맞춰서 화장이라도 지켜보는 분들이 있다”며 “유족들은 1,000만원 넘는 장례식을 원하는 게 아니다. 고인을 보내드리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소박하게 진행해도 된다”고 했다.

무연고 사망자 유골함이 보관돼 있는 무연고추모의집 내부 모습. 나눔과나눔 제공
무연고 사망자 유골함이 보관돼 있는 무연고추모의집 내부 모습. 나눔과나눔 제공

나눔과나눔은 조만간 서울시의회에 ‘서울특별시공영장례지원에관한조례’안 발의를 제안할 계획이다.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을 때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할 때 ▦재정적 어려움 등으로 장례 절차를 처리할 수 없는 기초생활수급자 사망일 경우에 한해 시에서 각종 장례용품과 장소 및 화장비용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박 국장은 “장례 지원이 하루빨리 제도화돼서 돈 때문에 장례를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아 우리 같은 시민단체가 할 일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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