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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꿈 익어가는 공시생의 책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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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딴 짓 하다가도 검찰 로고를 보면 화들짝 놀라 다시 공부에 집중하게 되요.” 9급 검찰사무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배한솔(23)씨는 올 봄 한 차례 실패를 경험한 직후 책상 위 노트북 PC의 바탕화면을 검찰청 로고로 바꿨다. 책상 앞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만큼 수시로 초심을 일깨워 줄 상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배씨는 “하루 5번 이상 로고를 바라보며 검찰청으로 출근하는 상상을 하는데 그때마다 ‘이대로만 하면 합격할 수 있다’는 긍정 에너지가 솟는다”고 말했다.
‘14시간의 법칙(하루 14시간 공부해야 합격)’이 지배하는 서울 노량진 공시촌에선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세븐일레븐 족'이 흔하다. 하루 종일 책상 앞을 지켜온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들, 운명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들의 책상은 더욱 더 무거운 긴장감에 짓눌린다. 잠시라도 한 눈 팔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도 책상 구석구석에서 묻어난다. 인터넷 강의 청취용 PC 화면에 들어가고자 하는 기관의 로고나 청사 사진이 등장하고, 책상 위에 놓인 스톱워치는 공부 시간을 분ㆍ초 단위로 기록, 감시한다. 중요한 용어 정리 메모가 빼곡한 책꽂이와 벽면의 빈 공간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문구들로 채워지고 있다.
대학진학 대신 경찰 공무원을 꿈꾸는 김혜인(19)씨는 독서대 위의 태블릿 PC와 휴대폰 배경화면을 경찰 로고로 꾸몄다. 김씨는 “제 인생이 걸린 시험을 앞두고 스스로 설정한 목표가 눈 앞에 있으니 더 자극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역시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최모(22)씨는 독서대와 벽면에 ‘경찰’ 스티커 여러 개를 붙여 놓았다. 경찰 로고와 함께 ‘젊은 경찰관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는 문구도 액자에 넣었고 암기용 메모지는 경찰을 모티브로 디자인된 제품을 쓴다. 이들이 로고에 집착하는 이유는 눈 앞의 상징적 이미지가 가장 완벽한 동기부여 수단이기 때문이다. 최씨는 “거리에 지나는 순찰차만 봐도 가슴이 뛰고 설렌다”고 말했다.
역사 선생님을 목표로 3년째 임용고시에 도전하고 있는 최원종(30)씨는 교생실습 당시 반 학생들이 보내 준 응원메시지를 보며 힘을 얻는다. ‘쌤 시험 잘 보세요~!!’ ‘좋은 선생님 되세요’ 등이 적힌 하트 메모지를 책상 위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둔 최씨는 “이걸 보고 있으면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생긴다”고 말했다.
꿈을 이룬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의지를 북돋우거나 위로를 받기도 한다. 상담 교사가 꿈인 김은별(25)씨는 얼마 전 한 취업준비생이 취업용 포트폴리오 완성을 위해 마련한 이벤트에서 미래의 자화상을 선물 받았다. 김씨는 “비슷한 처지의 취준생이 그려준 그림을 보면 짠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고 말했다. 경찰 공무원을 준비한 지 만 2년째인 이희철(28)씨는 다 쓴 볼펜을 버리지 않고 색깔 별로 모아뒀다. 오랜 시간 동안 해 온 공부를 눈으로 확인하며 성공을 다짐하기 위해서다. “내가 쏟아온 노력을 형상화하고 싶었다”는 이씨의 책상 한 구석엔 껍데기만 남은 파랑, 빨강, 검정색 볼펜 70여 개가 쌓여 있다. 이 밖에도 장 시간 공부하는 모습을 ‘타임랩스(Time Laps)’ 영상으로 압축해 기록하거나 공부하는 장면을 다른 공시생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스스로를 감시하기도 한다.
동기부여를 위한 다양한 방법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했을 땐 지체 없이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효과적이다. 까칠한 셀프 경고문구를 메모지에 써 붙이기도 하고 ‘난 어떤 문제든 풀 수 있다’는 식의 격려성 최면을 스스로 걸어보기도 한다.
공부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 현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수험생을 괴롭힌다. 서울 노량진에서 국가고시의 일종인 약대입문자격시험(PEET)을 준비해온 양모(23)씨는 시험을 사흘 앞둔 지난 16일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시험이 얼마 안 남았는데 막판에 잘못될 것 같은 생각만 든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겨우 마음을 추스른 양씨는 이날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메모지에 적어 책상 앞에 붙였다. “다 못할 수 있어 워낙 많잖아. 그래도 주어진 시간 집중해서 마지막으로 정리할 거 하고 다시 볼 거 보고~ 그렇게 하고 들어가면 되는 거야~ㅎㅎㅎ 끝까지 끝까지 파이팅이야♡.”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미소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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