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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부 연구기관, 5년 전 식용 닭에 피프로닐 사용 권고했었다

입력
2017.08.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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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과학원 진드기 퇴치 위해 사용 권고

육계에도 광범위한 사용 가능성 높아

文대통령 “축산ㆍ식품 안전 시스템 마련”

육계협회가 발간하는 '월간 닭고기' 2012년 8월호에 실린 닭 진드기 관련 글. 피프로닐과 다른 살충제를 순환해 사용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육계협회 제공
육계협회가 발간하는 '월간 닭고기' 2012년 8월호에 실린 닭 진드기 관련 글. 피프로닐과 다른 살충제를 순환해 사용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육계협회 제공

정부가 산란계(알 낳는 닭)가 아닌 육계(식용 닭)에는 맹독성 살충제 문제가 없다고 장담하고 있는 것과 달리 5년 전 정부 연구기관 스스로 ‘피프로닐’을 육계용 살충제로 사용할 것을 권고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피프로닐이 진드기 퇴치를 위해 육계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21일 육계업계 등에 따르면 육계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닭고기’ 2012년 8월호엔 ‘축산과학원에서 들려주는 닭 이야기-닭 진드기 구제로 닭고기 생산성 제고’라는 기고문이 실렸다. 국책연구기관인 국립축산과학원의 A연구원은 이 글에서 ‘철저한 닭 진드기 구제’라는 소제목 아래 “(살충제는) 동일계통 및 약제의 장기간 사용은 피하고 내성이 커지는 것을 고려해 순환(로테이션) 사용해야 한다”며 “페닐피라졸계의 피프로닐도 사용한다”고 밝혔다. 진드기를 퇴치하고 내성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여러 약품을 돌려써야 하는데, 이렇게 돌려쓰는 약품 중 하나로 피프로닐을 권고한 것이다.

그 동안 정부와 양계업계에선 산란계와 달리 육계에는 살충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최근 “육계는 문제가 된 피프로닐 같은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기고문을 작성한 A씨는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국내에선 피프로닐의 위험성이 제대로 확인된 바가 없었고 조사도 되지 않았었다”며 “농가들 입장에서 나름대로 진드기를 잡으려고 피프로닐을 구해 쓰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미 5년 전부터 육계 농가에서 피프로닐을 광범위하게 써 오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A씨의 기고와 증언에 따라 산란계와의 사육 방식 차이 때문에 육계에선 문제의 살충제가 쓰이지 않았다는 정부의 설명은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게 됐다.

지난 15일 오후 경기 화성시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농림축산식품부 농산물품질관리원 검사요원들이 시료 채취를 위해 계란을 수거하고 있다. 화성=연합뉴스
지난 15일 오후 경기 화성시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농림축산식품부 농산물품질관리원 검사요원들이 시료 채취를 위해 계란을 수거하고 있다. 화성=연합뉴스

앞서 농림축산식품부는 2015년부터 일부 농가에서 피프로닐을 쓴다는 사실을 파악해 탐문조사를 벌였다고 발표했다. 이보다 3년 앞서 기고문이 작성됐다는 점에서 당시 상황이 제대로만 파악됐다면 ‘살충제 계란 파동’은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농식품부가 피프로닐 사용을 금지시킨 것은 한참 후인 지난해 9월이었다.

이와 관련 정병학 한국육계협회장은 “육계용 닭은 30일 정도 키워 바로 출하되는 만큼 진드기가 살 여건이 안 된다”며 “진드기 외 다른 벌레를 잡기 위해 살충제를 쓰는 곳이 있을 수도 있어 최근 자체 조사를 벌였지만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가 이미 5년 전 피프로닐 사용을 권고한 사실이 확인된 만큼 산란계뿐 아니라 육계 농장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축산과 식품 안전을 위한 종합 시스템을 마련하겠다”며 2019년으로 계획한 사육환경표시제 시행을 앞당길 것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또 더 이상 알을 낳지 못할 정도로 노쇠해져 도살된 뒤 식용으로 팔려나가는 산란계 노계의 안전 대책도 세울 것을 당부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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