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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 시세대로 받겠다” 황혼육아의 반란

입력
2017.08.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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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 돌보는 노동에 정당한 대가

주 5일 월 100만~150만원 형성

“골병 드는데 쥐꼬리 용돈 말 안 돼”

월급 외 물품 구입용 카드 요구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맞벌이 아들부부 대신 손자를 여섯 살이 될 때까지 맡아 키워온 윤복순(65)씨는 최근 ‘양육비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손주를 봐주는 조부모들이 많다 보니 노인정에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데, 윤씨가 아들부부로부터 받아온 양육비 50만원이 ‘시세’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얘기를 들어보니 보통 못 받아도 100만원은 받고, 나처럼 주5일 하루 종일 봐주는 경우에는 200만원까지도 받더라”며 “다 늙어서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쥐꼬리 같은 용돈 받고 죽을 때까지 손자만 따라다닐 생각이냐고 주변에서 말 하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조부모들이 자녀에게 손주 돌봄노동에 대한 제대로 된 임금을 요구하는 이른바 ‘황혼육아 반란’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황혼육아는 이미 하나의 육아문화다. 15일 보건복지부 산하 육아정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자녀의 양육을 조부모에게 맡기는 가정의 비율(보육기관 병행)은 2009년 23.2%에서 2012년 35.8%, 2015년에는 65.6%로 증가했다. 또 같은 조사에서 자녀에게 손주 양육비를 받는다는 응답도 2015년 77.6%로 황혼육아도 돈을 지불해야 하는 엄연한 노동이라는 인식이 확실히 자리잡았다. 과거 당연히 손주니까 돌봐줘야 한다는 이유로, 또 자식에게 돈 얘기를 하는 것이 껄끄럽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했던 관행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손주를 키우는 ‘할마’(엄마+할머니)와 ‘할빠’(아빠+할아버지)들이 많아지면서 노인정이나 복지관, 동창회에서도 양육비 시세는 중요한 대화주제가 됐다. 평균 액수는 주 5일 12시간 정도 맡기면 월 100만~150만원쯤이고, 주 5일 24시간 맡겨야 하면 베이비시터(보모)의 월급과 맞먹는 수준인 200만원 이상으로 훌쩍 뛴다. 여기에 손주의 분유나 기저귀 값 등의 비용은 별도다. 첫 아이를 임신 중인 조빛나(32ㆍ가명)씨는 “친정 어머니가 요즘은 다 그렇다면서 아이를 봐주는 비용으로 월 200만원에 신용카드를 요구했다”면서 “신용카드가 없으면 아이 물품을 모두 본인 돈으로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였다“고 말했다. 조씨는 “너무 당당히 요구해 서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모르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 보다는 어머니가 봐 주시는 게 나아 그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손주를 돌보느라 신체적ㆍ정신적 골병을 앓는다는 ‘손주병’을 피하기 위한 다양한 팁도 조부모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다. 특히 과거 손주를 돌보면서 자연스레 가사노동까지 떠맡던 것에서 벗어나 육아의 범위를 명확히 정해놓는 것이다. 최근 육아휴직을 끝내고 직장에 복귀한 송연아(가명ㆍ33)씨는 “아이를 봐주고 있는 친정 어머니가 하루 종일 아이에만 매달릴 수 없다고 해서 정부에서 시행하는 아이돌봄서비스를 신청하고 대기 중인 상황”이라며 “게다가 ‘집안일도 못해 준다’며 가사도우미는 따로 불러달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심지어 양육비를 두고 양쪽 부모에게 흥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윤석(37ㆍ가명)씨는 이번 달부터 딸을 세 살까지 키워 준 장모 대신 어머니에게 맡기고 있다. 장모에게는 월 150만원의 양육비를 드려온 반면 어머니에게는 월 100만원만 드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어머니께도 죄송하고, 키워 준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딸에게도 미안하지만 월급으론 생활비와 양육비도 빠듯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조부모들의 황혼육아가 공보육의 정책적 공백으로 인해 빚어진 현상인만큼 국가 보육시스템 마련에 앞서 조부모 양육 지원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조부모의 육아를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나 법적ㆍ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조손(祖孫)수당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자녀를 양육하는 조부모에게 정부에서 일정 부분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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