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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낙태약’ 들여오는 여성들

입력
2017.08.1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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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이 한 여성 구호단체로부터 배송 받은 '먹는 낙태약'. 인터넷 캡처
네티즌이 한 여성 구호단체로부터 배송 받은 '먹는 낙태약'. 인터넷 캡처

대학원생 A(28)씨는 1년 전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 피임을 잘 했다고 생각했지만 임신테스트기에 나온 선명한 두 줄을 보곤 눈앞이 노래졌다. 학생이었던 남자친구 역시 선뜻 아이를 낳자는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 해외 여성 구호 단체에서 낙태가 불법인 나라 여성들에게 일정 금액 후원금을 내면 ‘낙태약’을 지원해준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신청 3주 뒤 미국으로부터 약을 받은 A씨는 복용법에 따라 이틀간 세 번에 나눠 약을 먹었고 결국 유산을 했다.

국내에서 ‘먹는 낙태약’ 정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알려지면서,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몰래 이를 구해 먹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병원을 찾아 수술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여성들 입장에서 보다 쉬운 방법으로 낙태를 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약 복용으로 자칫 불완전 유산 등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낙태약을 찾는 이들은 일단 부작용이 적고, 값이 저렴하다는 점을 내세운다. 낙태가 합법인 나라에서 엄연히 일반 시판되는 약이고,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증도 받은 안전한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2005년 이 약을 필수의약품 목록에 등재하기도 했다. 올 4월 낙태약을 구매했다는 B씨는 “자연 유산과 동일한 방식이라 수술보다 안전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성폭행에 의한 임신 등 일정 조건 외에는 모두 불법이므로 의사가 요구하는 대로 값을 치러야 하고, 부작용이 생겨도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불안감에 낙태약을 음성적으로 구매한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산부인과의사회에 의하면 하루 평균 3,000여명이 암암리에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그 위험성이 적지 않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낙태약 상품명을 검색하면 수천개 판매 광고가 뜨지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글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실제로 인터넷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약을 구입해 먹은 여성이 불완전 유산으로 자궁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해야 했던 사례도 있다.

최중섭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미국에서도 해당 약은 전문의의 처방이 필수인 만큼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여성이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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