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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 찾아내라”… 막무가내 민원에 경찰 골머리

입력
2017.08.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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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 생떼 부리고 위치추적 요구

하루 수백건 신고 “수사력 낭비”

일부 시민의식 부재 아쉬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 정모(30)씨는 5일 서울 지하철3호선 연신내역 인근에서 직장동료와 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취했다. 오후 11시쯤 영등포구 대림동 집으로 택시를 타고 가던 중 휴대폰이 없어졌단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곧장 차를 세운 뒤 다른 택시를 타고 공덕동 마포경찰서로 분실 신고를 하러 갔다.

당직 형사는 “담당자가 없으니 가까운 공덕지구대로 가라”고 손사래를 쳤다. 걸어서 10분도 안 걸린다는 말에 뿔이 잔뜩 난 정씨는 욕설을 하고,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휴대폰을 찾아내라고” 몇 분 동안이나 행패를 부리던 그는 결국 다음날 경범죄처벌법 위반(관공서 주취 소란)으로 입건되는 신세가 됐다.

정씨처럼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아내라고 막무가내 요구하는 사람들 때문에 경찰이 골치를 썩고 있다. “휴대폰이 고가인데다, 그 안에 개인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어 필사적으로 찾으려 한다”는 건 이해하지만, 맡겨놓은 물건 내놓으라는 식으로 다짜고짜 억지를 부리는 민원인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선 경찰들은 우선 ‘수사력 낭비’라는 고충을 털어놓는다. 9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휴대폰 분실 신고는 총 24만4,839건. 매일 671건 정도 접수되는데, 앞뒤 자르고 “누가 훔쳐갔으니 범인을 잡아달라“는 내용이 상당수다. 그 말만 믿고 수사했는데 결국 단순 분실로 결론이 날 때가 많다.

민원인이 뒤늦게 휴대폰을 찾고 난 뒤 경찰에 알리지 않아 경찰력을 낭비하는 경우도 있다. 홍익지구대 관계자는 “얼마 전 40대 여성이 ‘자동차 트렁크 위에 휴대폰을 올려놨는데 누군가 훔쳐갔다’고 신고해 경찰 4명이 출동해 주변 폐쇄회로(CC)TV와 차량 블랙박스를 샅샅이 뒤진 적이 있다”고 했다. 한참 수사를 진행한 경찰이 사정을 설명하자 신고 여성은 그제서야 술집에 두고 온 걸 찾았다고 실토했다.

휴대폰 분실/2017-08-13(한국일보)
휴대폰 분실/2017-08-13(한국일보)

대부분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경찰을 찾아오는 것 역시 부담이다. 경찰 관계자는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설명도 못하면서 무조건 찾아오라 생떼를 부리고 경찰 탓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토로했다. 용산구 이태원거리처럼 외국인이 자주 찾는 지역에선 때아닌 차별 논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경찰이 “찾기 어려울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하면, “인종차별” “외국인 차별”이라면서 쌍심지를 켜고 따진다는 것이다.

위치추적 같은 무리한 요구도 적지 않다. 한 지구대 관계자는 “경찰은 납치 조난 등 특수한 범죄ㆍ재난 시에만 위치추적을 할 수 있는데도 ‘위치추적을 해달라’고 조르는 시민들이 많다”고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신고를 하지 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일부의 시민의식 부재가 아쉽다”고 말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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