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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 ‘택시운전사’ 속 택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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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 수천만원 들여 총 7개월 동안 수입 및 개조 작업
송강호가 무리 없이 직접 브리사를 운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2일 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했다. 이 영화는 1980년 5월 어느 날,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이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치만)를 태우고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향한 이야기를 그렸다.
피터는 만섭과 대학생 재식(류준열), 광주 택시운전사 황태술(유해진) 등의 도움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삼엄한 언론 통제를 뚫고 이를 전 세계에 낱낱이 고발한다. ‘택시운전사’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참담한 민낯을 두 외지인의 관점을 통해 색다르고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지난 2003년 송건호 언론상을 받은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와 익명의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실제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꾸며졌다. 영화에서 만섭은 피터와 헤어지면서 ‘김사복’이란 엉뚱한 이름과 잘못된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실제로 위르겐 힌츠페터는 끝내 김사복을 찾지 못하고 지난해 1월 79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영화에서 인물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존재가 있다. 바로 만섭의 분신과도 같은 1973년식 초록 브리사 택시다. 택시는 영화의 전반적인 시각적 느낌을 결정하는 동시에 내러티브를 끌고 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차의 캐스팅에도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묻어난다.
브리사는 1970년도에 기아에서 만든 뒷바퀴굴림 소형 세단으로 마쓰다의 기술력을 빌려 만들었다. ‘바닷가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이름처럼 출시 이후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현대 포니의 등장으로 서서히 밀려나 1981년 단종됐다. 실제로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택시를 끌고 항쟁했던 조성수 씨는 “그때 택시의 90% 정도는 브리사였고, 포니는 브리사 이후에 나온 차여서 몇 대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밝혔다. 영화에서 만섭은 브리사를, 태술은 포니를 끌고 나온다.
장훈 감독은 만섭의 택시로 브리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모나지 않고 둥그스름한 외형이 만섭의 캐릭터와 잘 맞아서라고 설명했다. 모델은 빨리 정했는데, 색을 고르는 단계가 쉽지 않았다. 당시 하늘색, 노랑, 초록 택시가 많았는데, 제작진은 녹색이 보기에 편하고 화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것 같다고 판단했다. 컴퓨터로 채도와 명도가 다른 다양한 녹색을 샘플로 만들고, 실제 차에 칠하기를 십여 번. 여러 고민 끝에 만섭의 브리사와 가장 잘 어울리는 녹색이 탄생했다.
브리사의 초록은 만섭의 의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야기의 설정상 하루 만에 돌아와야 했기에 만섭은 영화 내내 노란색 유니폼 셔츠 하나만을 입고 나온다. 의상을 맡은 조상경 실장은 차의 색이 결정된 후 여러 종류의 노랑 셔츠를 만들어 배우에게 직접 입혀보면서 색깔을 정했다. 장면에 따라 채도와 명도를 누르기에도 좋고, 올리기에도 쉬운, ‘딱 알맞은’ 노랑을 찾았다.
브리사를 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제작 당시 국내에 남아 있는 브리사는 상태가 좋지 않아 촬영용으로 부적합했다. 결국, 제작진은 국외로 눈을 돌려 일본과 인도네시아의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몇 대의 브리사를 겨우 찾았다. 만섭의 브리사만 총 석 대가 마련됐다.
그런데 영화의 장면처럼 무리 없이 정상적으로 운행할 수 있어야 했기에 개조가 필요했다. 구형 아반떼의 뼈대에 브리사의 차체를 얹어 그럴듯하게 꾸몄다. 수입해서 도색, 개조, 주행 테스트까지 이르는데 총 7개월이 걸렸다. 가격을 정확히 따질 수는 없으나 한 대당 수천만 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만섭 이외의 등장인물이 끌고 나오는 택시 중 파손이 예정된 차도 같은 방식으로 제작됐다. 그 이외의 택시들은 클래식카 업체로부터 대여했다.
만섭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는 촬영 내내 직접 브리사를 운전했다. 영화 제작 관계자는 차 실내가 지금과 많이 달라 송강호 씨가 운전하기에 좁고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적응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영화 속 캐릭터처럼 ‘베스트 드라이버’가 따로 없었다는 후문.
한편, 얼마 전 광주광역시에서 만난 ‘그때’의 진짜 택시운전사 장훈명 씨는 이 같은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때 저도 브리사를 끌었습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어느 때는 10명 넘게 태운 적도 있습니다. 기어 레버는 운전대에 붙어 있었고 앞 좌석이 일자로 뻗어서 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때의 택시 기사들은 모두 스스로 정비가 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차가 자주 고장이 났어요. 클랙슨을 고쳐도 2주일 지나면 또 말썽이었지요. 카뷰레터는 밥 먹듯이 들여다봤습니다. 그래서 옷에 항상 기름때가 묻어 있었어요. 영화에서처럼 서로 차를 봐주며 고쳐주기도 했습니다.”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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