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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식지 않았다. 오히려 활활 타오를 뿐!

입력
2017.08.01 07:00
아마추어 레이스에 참가하는 한국일보 모클팀 박혜연 기자
아마추어 레이스에 참가하는 한국일보 모클팀 박혜연 기자

한국일보 모클팀이 참가하는 슈퍼스파크 전이 어느덧 3회를 맞이했다.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오르는 ‘차알못’ 기자는 이제 어엿한 아마추어 레이서다. 난 그저 콘텐츠 담당으로 박혜연 기자의 도전을 지켜봤을 뿐이다. 그렇다. 눈치 챘겠지만 박기자의 자전적 에세이에 자주 등장했던 시니컬 팀장이 바로 나다. 심술궂은 계모 마냥 구박만 일삼았지만 박기자의 경기가 열리는 주말이면 무조건 인제를 향했던, 그렇게 그녀의 ‘열정 지피기’에 나선 숨은 조력자를 자처하며 응원을 보내왔다.

1전을 끝내고 레코드 라인을 복기하는 박혜연 선수
1전을 끝내고 레코드 라인을 복기하는 박혜연 선수

솔직히 ‘포디움’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번 3전을 마지막으로 그런 어설픈 욕심은 스스로 지워내게 됐다. 참가 횟수가 누적될수록 박기자는 완벽하게 경주를 즐기게 됐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팀에 적응해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 하리라!’ 성경 구절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처음 한국일보 모클팀 공식 경주차를 찾으러 모클을 비롯한 자동차 매매 사이트를 이 잡듯 뒤지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분명 부딪치고 부서질 거 새 차 같은 중고차를 사기로 결심한 뒤 직접 경기도와 경상도를 오가며 매물을 찾았다. 결과적으로 ‘부산 싸나이’ 딜러를 만나 주행거리 7000km에 불과한 새 차 같은 스파크를 산 건 결과적으로 다행이었다. 3전을 맞이한 지금 경주차 스파크는 만신창이가 됐으니!

1전을 끝낸 뒤 공식 기록을 확인하는 중이다.
1전을 끝낸 뒤 공식 기록을 확인하는 중이다.

문득 박기자의 1전 예선전이 떠오른다. 문을 열고 버킷 시트에 몸을 끼우는 동작부터 헬멧을 건네자 몸을 비틀면서 힘들게 쓰고는 한스를 고정하는 것조차 낯설어 하던 모습. 모든 게 어설펐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게 다 추억이자 즐거움이다. 얼굴에 헬멧 주름이 새겨지도록 열심히 달린 박기자가 대견스럽다. 사실 자동차 전문기자를 자처하는 이들도 대다수는 레이스에 참전할 생각조차 않는 게 현실이다. 그 정도 열정 있는 기자는 손에 꼽을 정도니까.

한국일보 모클팀 경주차인 쉐보레 스파크. 정확한 데이터 측정은 경주의 기본이다.
한국일보 모클팀 경주차인 쉐보레 스파크. 정확한 데이터 측정은 경주의 기본이다.

2전이 끝난 뒤 박기자가 내게 넌지시 말했다. 출력도 다른 차에 비해 떨어지는 것 같고, 직선 주로에서 매번 추월을 당한다고. 즉시 인캠을 가져와 영상을 체크했다. 내 분석으로는 마지막 코너에서 감속 없이 과감히 진입하지 못하는 습관과 스타트에서 수 초를 버리는 운전 미숙, 그리고 스스로의 경험부족이 원인 같지만 선수가 차를 믿지 못하면 아무리 이성적으로 설득해봐야 헛수고다. 그래서 맵핑으로 유명한 업체를 찾아 다이나모에 올렸다. 결과는 이상 무! 작년 스파크 원메이크 레이스에 출전해 포디움에 오르내린 경주차와 유의미한 데이터 차가 없었다.

출력이 대동소이한 원메이크 레이스에서는 한층 섬세한 운전 기술이 요구된다.
출력이 대동소이한 원메이크 레이스에서는 한층 섬세한 운전 기술이 요구된다.

측정 데이터를 받고는 박기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숙련된 정비사를 찾아가 정비를 체크했고, 한 때 튜너로 이름 날렸던 선배를 오랜만에 만났다. 점화 전압을 점검하고 공연비 농후도 측정, 연료분사를 차단해 기통 편차를 점검했다. 저속 흡기밸브가 닫힐 때 살짝 지연되어 간극을 조절했고 오일을 규정 점도 SAE 5W20로 바꿨다. 마지막으로 흡기 라인을 분해해 쌓여있던 카본을 완벽하게 녹여냈다. 흡기 에어필터를 검증된 애프터마켓 제품으로 바꾸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건 규정 위반. 쉐보레 순정 필터를 새로 끼워준 뒤 모든 데이터를 리셋하고는 앞으로는 무조건 고급유를 태우기로 계획했다. 3전까지 한달 이상 남아 타이어 교환을 권했지만 “슬릭 타이어에 가깝게 트레드를 마모시킨 뒤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박기자의 고집이 대견스러웠을 뿐이다.

열정이 없다면 도전 자체가 불가능한 게 모터스포츠다. 한번이라도 자동차 경주장에 와봤다면 느껴지겠지만 스스로 즐기려는 의지와 실제 참여가 없다면 무척 심심한 곳이다. 선수들이 자신만의 꿀단지를 숨겨놓고 한 숟가락씩 퍼먹는 재미에 빠져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물었다. “대체 자동차 레이스를 왜 하는가?”라고. 뜨거운 여름의 태양 아래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트랙에 뿌려가면서도 도전하는 이유, 바로 그게 궁금했다.

박기자의 대답이 궁금하신가? “그냥 재미있으니까. 읽거나 들어 지식처럼 알고만 있던 걸 깨닫고 몸으로 체득하는 과정이 미치도록 즐거우니까!”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한가? 지금부터는 박기자의 입상 성적은 중요치 않다. 도전을 넘어 스스로 즐기기 시작한 어엿한 레이서에게 한국일보 컨텐츠 효과를 위해 성적을 강요하는 건 내 그릇된 욕심일 뿐이다.

3전 예선전에서 박기자는 23명 중 18등, 2분 17초를 기록했다. 장족의 발전이다. 초반 2초 가량의 스타트 실수를 감안한다면 이제야 경주를 안정적으로 풀어내는 듯하다 예전만큼 긴장하지도 않고 코너에서 차를 과감하게 던질 수도 있다. 지금처럼만 레이스를 즐기다 보면 경차 전을 벗어나 한층 짜릿한 윗급 기종을 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늦게 시작했지만 또래 자동차 담당기자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난 긴밀한 관찰자 역할을 자처했지만 스스로 감동한 장면도 많았다. 남들과 경쟁하는 걸 싫어하는 나와는 달리 그들은 팀을 이뤄 서로 격려하며 도전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라온 레이싱팀 감독이자 오일숍을 운영하는 최헌호 대표는 “박선수는 매번 노력한 만큼 성장해서 깜짝 놀랐다. 다음 경기가 기대된다”는 평가를 내렸다. 레이스몰 유영선 대표는 결승전의 특성을 세밀하게 알려주며 스타트와 추월 전략에 대해 꼼꼼하게 코칭했다. 슈퍼아베오에 출전한 그는 3위에 입상했으며 올해 레이스에 참전하는 내내 포디움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준 선수다.

곁에서 바라본 그들은 프로팀에 비해 규모와 경험의 잣대만 다를 뿐 완벽한 레이스 팀이었다. 모클 서비스팀의 함승완 과장도 정식 테스트를 거쳐 라온에 입단한 뒤 언더백 레이스 대신 슈퍼아베오 전에 출전하는 중이다. 박기자와 함과장이 한솥밥을 먹던 회사 동료를 넘어서서 함께 레이스에 도전하는 팀원이 된 걸 축하하는 바다.

지난 추억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난 레이스의 매력에 사로잡혀 제대로 인생을 즐기는 후배의 열정만을 응원하기로 했다. 한국일보 모클팀의 레이스 참전 공식 활동은 막을 내리지만, 박기자와 함과장은 라온 레이싱팀의 일원으로 한층 성장해 나갈 것이다. 그 동안 응원해준 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앞으로도 그들의 성장에 아낌 없는 성원 부탁 드린다.

최민관 기자 edito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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