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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친할수록 침을 먹이는 한국문화

입력
2017.07.26 15:21

우리가 가장 흔히 사용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마음’이나 ‘사랑’일까? 그러나 이런 단어보다 빈도수가 더 높은 게 바로 ‘우리’이다. 우리는 동아시아의 집단주의 문화를 대표하는 가장 특징적인 단어다. ‘우리 집’이나 ‘우리나라’라는 표현을 넘어서 ‘우리 마누라’라는 말까지도 서슴없이 하는 형국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러한 특징은 한자 표현에서도 확인된다. 나라를 의미하는 국가(國家)는, 본래 제후의 영지인 국(國)과 대부의 영지인 가(家)의 합성어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라는 최소공동체를 유지하는 ‘집 가(家)’이다. <대학>의 ‘8조목(八條目)’에서도,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제가(濟家) 이후에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治國)이 등장하지 않던가? 흥미로운 것은 우주(宇宙)도 실은 ‘집 우(宇)’와 ‘집 주(宙)’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집이 확대된 가장 큰 집이 바로 우리의 우주인 것이다.

동아시아의 선불교에서는 ‘세계는 한 송이의 꽃(世界一花)’이라고 했고, 장자는 ‘제물론(齊物論)’에서 ‘천지는 하나의 손가락’이라고 했다. 또 신유교의 장횡거는 ‘서명(西銘)’에서 ‘하늘은 아버지고 땅은 어머니며, 백성은 나의 동포고 만물은 나와 함께하는 존재’라고 하였다. 즉 천하일가(天下一家)인 셈이다.

이런 생각들 때문이었을까? 우리나라에선 지나가는 분들도 본래는 3촌 관계를 나타내는 칭호인 아저씨와 아줌마로 불린다. 또 식당이나 미용실에서 서비스를 해주는 분들은 모두다 이모이다. 물론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 진짜 이모와는 다르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라는 크고 작은 내(內)집단의 문화 속에 존재하게 된다. 이는 능력보다도 인간관계의 비중이 더 크게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관계는 ‘혈연’과 ‘친밀도’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이것의 척도는 서로 간에 얼마나 침을 먹이고 먹느냐에 달려 있다. 처음 들으면 이게 뭔 소린가 싶지만, 생각해보면 금방 수긍이 갈 것이다.

우리 음식은 찌개나 탕처럼 여러 사람이 함께 먹는 공유음식이 많다. 요즘에는 앞 접시를 두고서 덜어 먹지만, 이건 진짜 최근에 생긴 풍속일 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찌개 속에 먹던 숟가락이 교차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게 바로 침을 먹이는 문화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식당에서 먹는 상황이 아니면, 가정에서는 이 문화가 어느 정도 유지되곤 한다. 이것이 바로 밥을 공유해서 먹는 내(內)집단, 즉 식구(食口)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요즘에야 보기 드물지만, 예전에는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뜨거운 음식을 식히기 위해 자신의 입에 넣었다가 손주나 아들에게 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거야말로 우리라는 집단구조 속에서 가장 가까운 혈연간에 이루어지는 적극적인 침 먹이기 문화인 셈이다.

굳이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친밀도가 높으면 침 먹이는 문화는 존재하게 된다. 친구가 먹던 음료를 그대로 마시거나, ‘한 입만 먹어보자’고 하는 것은 우리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침을 먹는 관계는 상당한 친밀도가 없으면 형성되지 않는다. 즉 이것은 혈연과는 또 다른 친밀도에 입각한 침을 먹이는 문화인 것이다.

이외에도 우리에게는 침 먹이는 것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관계를 만드는 방식도 존재한다. 바로 술자리에서 잔을 돌리는 문화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술자리를 통한 밤 문화는 인간관계의 친밀감을 강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그런데 바로 그 핵심에 침 먹이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문화배경 때문에 우리의 술잔에는 오늘날까지도 손잡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침 먹이는 문화는 개인주의의 약진 속에서 축소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굳건한 현재형이라고 하겠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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