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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스토리] 단순한데 알차다...일본식 샌드위치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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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츠산도’ 바, 레스토랑서 즐겨
두툼한 돼지고기 튀김에 머스터드
쫄깃-고소해 술안주로 제격
#2
‘타마고산도’는 카페 중심 유행
달걀말이 넣은 오사카식이 주인공
부드러운 맛, 예쁜 질감이 포인트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는 파스타, 두부, 샐러드만큼이나 샌드위치가 유독 자주 등장한다. 최근 한국에 번역 출간된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도 어김 없이 샌드위치가 등장한다. ‘나’는 햄과 양상추, 피클을 넣은 간단한 샌드위치를 먹고,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가 로스트 비프 샌드위치를 주문한다.
‘태엽 감는 새’에는 토마토 샌드위치에 대한 좀 더 소상한 묘사도 등장하는데 “정말 그걸로 끝이에요?”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간단하기 짝이 없다. 빵에 버터와 겨자를 바르고, 토마토와 치즈를 끼워 넣는 것이 전부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손녀’는 샌드위치를 정말 맛있게 만든다. 햄, 오이, 치즈에 고급 겨자와 싱싱한 양상추, 직접 만들었거나 그것에 가까운 마요네즈를 넣는다.
2015년 작가가 이메일로 받은 독자들의 질문에 공개적으로 답하는 프로젝트인 ‘무라카미씨가 있는 곳’에는 하루키가 대학 졸업 후 운영한 재즈 바 ‘피터캣’에서 만든 샌드위치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역시 치즈와 채소만으로 만든, 황당할 정도로 단순한 것이었다. 같은 해 7월 책으로 묶여 나온 이 프로젝트에서 하루키는 “고등학교 때부터 빠져 있었던 곳인데 고베의 ‘토아로드’에 있는 ‘델리카트슨’이 샌드위치의 원점”이며 “이곳의 샌드위치를 뛰어넘는 샌드위치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샌드위치는 소설 ‘댄스 댄스 댄스’에 등장하기도 한다. 현재도 영업 중인 이 델리숍의 샌드위치는 요즘도 하루키의 샌드위치처럼 간명하다.
1930년 개업한 일본 도쿄 우에노의 돈카츠 전문점 ‘이센’ 본점과 분점들은 현재까지도 ‘젓가락으로 잘리는 부드러운 돈카츠’를 내세우고 있다. 일찍이 개항한 일본에는 양식이 일본 음식의 일부로 편입된 형태가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오므라이스 같은 ‘경양식’이고, 빵에서 특히 독특한 궤가 발달했다. ‘조리빵’ 또는 ‘빵 퀴진(Pain cuisine)’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밥 반찬을 빵에 넣은 것’인데,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카레빵, 소시지빵, 피자빵, 명란 바게트 등이 일본 조리빵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일본식 샌드위치 중에도 조리빵의 맥에 닿아 있는 것이 많다. 식빵과 주재료, 그리고 소량의 소스로만 만든 단순한 샌드위치다. 감자와 삶은 달걀, 몇 가지 채소를 다져 넣은 포테이토 샐러드 샌드위치가 그렇고, 달달한 볶음 국수 요리 야키소바를 넣은 야키소바빵이 그렇다. 편의점이나 기차역의 매점에서도 팔 정도로 흔한 또 다른 일본식 샌드위치 중엔 돈카츠를 식빵 사이에 샌드한 ‘카츠산도(돈카츠+샌드위치를 줄인 말)’와 ‘타마고산도(달걀말이를 식빵 사이에 샌드한 것)’, 아니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즐겨 만드는 것 같이 단순한 구성의 샌드위치도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일본의 샌드위치가 유행을 타고 있다. 카츠산도와 타마고산도가 동시에 인기를 얻고 있다.
부드러운 빵과 두툼한 돈카츠의 조화, 카츠산도
일본 도쿄의 유흥가였던 우에노 지역에는 게이샤들이 많은데, 카츠산도는 이센 본점에서 게이샤들의 패스트푸드로 개발됐다. 손으로 들고 먹을 수 있어 한 끼니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고,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잘려 있어 게이샤들의 빨간 입술 연지가 지워지지도 않았다. 적당히 촉촉한 식빵 사이에 돈카츠를 넣고 빵 안쪽에는 겨자 맛이 나는 소스를 살짝 발랐다.
한국에 처음 소개된 카츠산도는 ‘긴자 바이린’의 카츠산도다. 긴자 바이린은 도쿄 긴자의 돈카츠 전문점으로, 이센과 비슷한 시기 개업했다. 한국 매장은 2011년 열었다. 이미 들어와 있는 음식을 화제에 오르게 한 건 지난해 12월 문 연 도산공원 인근의 바 ‘폴스타’. 일본의 유명 바텐더가 헤드 바텐더로 있는 이 바는 잘 만든 칵테일만큼이나 ‘카츠산도’로 유명하다.
올해 3월 한남동에 문을 연 레스토랑 ‘다츠(DOTZ)’는 ‘브런치 명소’로 빠르게 자리 잡았는데 거기엔 카츠산도의 공헌이 크다. 커피숍 ‘보통’과 함께 운영되는 모던한 아시안 레스토랑이 정체성인데, 점심에만 파는 카츠산도로 빠르게 입 소문을 탔다. 현상욱 셰프는 “소금물에 24시간 정도 담그는 ‘브린’이라는 염지 방법으로 밑간을 하고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것이 포인트”라며 “180g 이상의 고기를 사용하는데, 지방층은 일정한 모양을 내기가 힘들어 돼지고기 등심 부위 중 살코기만 사용한다”고 말했다. 빵 전문점 ‘오월의 종’에서 주문 제작하는 식빵은 카츠산도에 최적화된 상태로 들어오고, 일반적 돈카츠 소스와 홀그레인 머스터드에 유자청의 즙만 배합한 특제 소스가 돼지고기의 고소한 향과 향긋하게 어우러진다.
서울 서래마을에 올해 1월 개업한 다이닝 바 ‘더 하우스’에서는 카츠산도를 칵테일, 위스키 등과 함께 즐길 수 있다. 도쿄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은 윤강민 셰프는 “카츠산도는 어떤 술과도 어울리는 훌륭한 바 푸드(Bar Bood)다. 두툼한 돼지고기 튀김에 머스터드와 짭짤한 간이 어우러져 맛이 없을 수 없다”고 카츠산도를 추어올렸다. 더 하우스에서는 1㎝가량의 지방층을 살린 돼지고기 등심을 사용하는데, 쫄깃하게 씹히는 고소함이 살코기의 촉촉함과 대비를 이룬다. 깔끔하게 디종 머스터드만 사용해 맛이 깔끔하다. 다츠와 더하우스는 ‘미디엄 웰’ 정도의 익힘으로 카츠산도를 내는데 전체적으로 핑크빛이 돌지만 가운데까지 완벽하게 익은 상태다.
서울 경리단길에 지난해 9월 조용히 오픈해 은근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마음과 마음’은 오너셰프 오원희씨가 어린 시절 다닌 서울 종로의 경양식집 ‘마음과 마음’에 대한 향수를 담아 만든 식당이다. 일본식 경양식의 본고장 고베 등에서 요리 경력을 쌓은 셰프답게 대표 메뉴는 오므라이스와 함박 스테이크. 각종 일본식 샌드위치다. 지방이 붙어 있는 돼지고기 등심 돈카츠에 연겨자와 직접 만든 마요네즈를 배합한 소스만으로 맛을 낸 카츠산도, 48시간 동안 수비드(밀폐 봉지에 음식물을 담아 미지근한 물로 오래 데우는 조리법)로 조리한 로스트 비프와 치킨 육수, 레드 와인으로 만든 특제소스가 어우러진 ‘로스트 비프 산도’, 그리에르 치즈로 감칠맛을 더해 두껍게 만 달걀말이가 들어간 타마고산도 등 세 가지 일본식 샌드위치를 내놓는다.
포근한 달걀이 주인공, 타마고산도
그렇다. 레스토랑과 바에서는 카츠산도가, 카페에서는 일본식 달걀 샌드위치(타마고산도)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가로수길의 의류 매장 ‘배럴즈’에서 숍인숍으로 운영되는 ‘마빈 스탠드’는 인근 거주자와 직장인의 사랑을 받는 샌드위치 전문점이다. 매니저 윤양정씨는 “타마고 샌드위치는 일본에서는 ‘유행한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 정도로 보편적이며, 가정에서도 종종 만들어 먹는 음식”이라고 했다. 또 “달걀말이가 들어가는 스타일은 오사카식, 삶은 달걀을 으깨 넣은 것은 도쿄식이다”고 했다. ‘마음과 마음’의 타마고산도를 비롯해 요즘 한국에서 인기인 것은 달걀말이가 들어간 샌드위치다. ‘마빈스탠드’의 ‘타마고 샌드’는 와사비 맛을 베이스로 한 특제 소스를 사용하는 것이 독특하다. ‘명란 타마고 샌드’는 달걀말이에 명란 스프레드가 들어가 짭짤한 감칠맛이 더해진다. 윤씨는 “일본식 샌드위치는 주재료의 맛이 주가 되는 간결한 메뉴이다 보니 소스의 중요도가 높다”며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주재료와 조화를 이루는 균형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 종로2가의 커피 노포인 ‘카페 뎀셀브즈’도 최근 계란말이 샌드위치라는 이름으로 타마고산도를 내놨고, 명란 계란말이 샌드위치도 출시했다. 베이커리 담당 이사 김화진씨의 설명. “새로운 메뉴를 찾다 보니 일본의 타마고 샌드위치가 떠올랐다. 일본에 자주 오가는데 두툼하고 모양 자체가 예뻐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에서 타마고 샌드위치는 흔한 음식이지만, 교토에 본점을 둔 ‘마도라구’ 카페처럼 새로운 소스 조합으로 색다른 맛을 선보이는 곳도 있다.” ‘카페 뎀셀브즈’는 ‘계란말이 샌드위치’라고 부르는데, 부드러운 달걀의 질감이 빼어나다. 카페 특성상 포장 판매가 많아 차가운 상태로 먹기 좋게 만들었다. 달걀 알끈을 모두 제거하고 체에 여러 번 걸러 일본식 달걀찜처럼 부드러운 질감이고 완성한 모양새도 매끈하다. 카페는 단순하게 꽉 찬 달걀 맛을 또 한 번 업그레이드한 ‘명란 계란말이 샌드위치’도 내놓는다.
일본에서는 김치볶음밥만큼 흔한 카츠산도, 그리고 타마고산도가 한국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김화진 이사의 말대로 일본식 샌드위치는 단순하지만 꽉 찬 맛을 갖고 있는 데다 일반적 샌드위치보다 조리가 훨씬 간소하다. 샌드위치 전문점을 준비하고 있다면, 하루키의 작품을 탐독해 보는 것도 좋겠다. 전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일본식 샌드위치 오타쿠’가 하루키일 테니.
이해림 객원기자
사진 강태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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