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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믿을 정부 주도 사업…참여 기업 ‘수난’

입력
2017.07.18 17:30
지난 10일 오후 공사가 중단된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5호기 건설 현장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지난 10일 오후 공사가 중단된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5호기 건설 현장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ㆍ6호기’, ‘창조경제혁신센터’, ‘북한 개성공단’.

이들의 공통점은 크게 4가지다. 1)정부 주도형 대규모 프로젝트로 진행됐지만 2)현재는 모두 교착상태에 빠졌고 3)피해는 고스란히 참여 기업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4)해당 사업이 위기에 직면한 이유가 사실상 관련 기업 경영과 무관하다는 측면도 유사하다. 기업들은 “정부를 믿고 투자 했는데, 보상도 없이 손실은 우리한테만 돌아온다”며 공공연히 볼멘소리를 내놓고 있다.

당장, 기업들의 난감한 입장은 최근 뜨거운 감자로 부각된 신고리 원전 5ㆍ6호기 사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업은 정부의 ‘탈(脫)원전’ 방침 속에 지난 14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진이 ‘신고리 원전 5ㆍ6호기 공론화 기간 중 공사 일시 중단 계획’을 의결하면서 멈췄다. 이 사업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38개월 동안 심의를 거쳐 지난해 6월 승인된 총 8조6,0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로 현재까지 약 1조6,000억원이 투입됐다. 공사 현장엔 1,700개 협력사와 1만2,800여명이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한수원 이사회의 일시 중단 계획 결정으로 기업들의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3개월 동안 논의 과정을 거쳐 신고리 원전 5ㆍ6호기 사업 지속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지만 이에 따른 관련 기업들의 보상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시공사들의 반발도 뒤따르고 있다. 신고리 5ㆍ6호기 원전 사업 관계자는 “한수원측에서 신고리 5ㆍ6호기 원전의 영구 정지는 반대한다고 기본 입장을 내놨지만 그 동안 발생될 피해 보상은 누가 책임지느냐”며 “수 조원이 들어가는 국책 사업에 대해 이처럼 무책임한 발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앞서 삼성물산은 “시공계약 일시 중단 근거가 불분명하고 납기 연장이나 추가비용 발생에 대한 보상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며 한수원측에 문제를 제기했다. SK건설도 한수원에 “조속히 보상방안을 포함한 현장 운영 세부지침을 통보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수원내에서도 진통을 겪고 있다. 한수원 노조는 18일 신고리 원전 5ㆍ6호기 일시 중단을 의결한 한수원 이사회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키로 했다.

정부 방침에 따라 동참한 ‘창조경제혁신센터’도 기업들에겐 적지 않은 부담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의 상징인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지난 2014년9월 일자리 창출과 신사업 육성을 목적으로 전국 17개 지역에서 16개 대기업이 참여한 가운데 출범했다. 하지만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부정부패와 더불어 몰락한 박근혜 정부의 연장선으로 비춰진다는 점에서 관련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이미 일부 기업은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다른 이름으로 바꾸고 박근혜 정부의 흔적 지우기까지 나섰다. 사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출범 당시부터 기업들의 강제 참여 의혹에 휩싸였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운영하는 한 대기업 임원은 “솔직하게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하고 싶어서 참여한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에서 워낙 강하게 밀어붙이니까 어쩔 수 없이 동조했던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우리한테도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할 이유는 없었지만 당시로선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북한 개성공단 운영 중단을 결정한 지난해 2월1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물건을 실은 차량들이 입경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정부에서 북한 개성공단 운영 중단을 결정한 지난해 2월1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물건을 실은 차량들이 입경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정부 주도로 추진됐던 북한 개성공단 중단 역시 기업들에게 민폐를 끼친 대표 사례다. 특히 대부분의 개성공단 운영 기업이 열악한 경영 환경의 중소기업들이란 점에서 피해가 크다. 지난해 2월 개성공단 가동이 전면 중단된 이후 현재까지 확인된 전체 피해액 가운데 일부가 지원됐다. 신한용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가 확인한 개성공단 폐쇄 피해금액 7,086억원 가운데 아직까지 2,248억원은 지급되지 않았다”며 “기업의 생존을 위해 미지급분 만이라도 빠른 시일내 지급되길 희망한다”고 촉구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가 지난 5월 개성공단 입주기업 12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설문에 답한 108개사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대비 평균 26.8% 감소했다.

기업들은 이처럼 정부에서 주도한 사업들의 잇따른 중도 하차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에선 계속해서 일자리를 늘리라고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동참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향후 정부 주도 사업이 외형적인 변수에 따라 중단될 경우 입게 될 피해 보상을 확실하게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기업들의 참여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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