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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혼다의 든든한 씨알, CR-V

입력
2017.07.11 12:27
5세대로 새롭게 선보인 혼다 CR-V. 사진=조두현 기자
5세대로 새롭게 선보인 혼다 CR-V. 사진=조두현 기자

혼다는 CR-V를 가리켜 ‘콤팩트한 크로스오버 차’라고 말한다. CR-V라는 모델명도 ‘레크리에이션을 위한 작은 차(Compact Recreational Vehicle)’라는 뜻이다. CR-V는 이름에 걸맞게 다섯 세대에 이르기까지 차체 길이를 4,500㎜대로 유지 중이다. 그런데 실제로 차를 타보면 실내 공간과 쓰임새는 콤팩트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CR-V는 국내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처음 출시된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수입차 판매 순위에서 항상 10위권 안에 들었고, 2007년엔 1등도 했다. 2010년 이후 디젤 엔진을 얹은 SUV와 CUV에 상위권을 내주었지만, 그래도 독자 영역을 구축하며 수요를 만들고 있다. 내구성이 좋다는 평 덕택에 중고차 시장에서도 감가율이 적기로 유명하다. 지난해 CR-V는 1,343대 팔리면서 혼다 전체 판매량의 20%를 차지했다. 어코드 다음으로 비중이 높다.

CR-V는 새로운 터보 엔진을 달고 외모를 가다듬었다. 스페어 타이어는 기존처럼 트렁크 아래에 두었다
CR-V는 새로운 터보 엔진을 달고 외모를 가다듬었다. 스페어 타이어는 기존처럼 트렁크 아래에 두었다

1995년 콘셉트카로 세상에 처음 선보인 CR-V는 당시 혼다가 내부에서 직접 디자인한 첫 CUV였다. 동시에 최초로 보디 온 프레임 대신 유니보디 방식을 채택한 차였다. 10년 전에 출시한 3세대부터 리어 도어의 스페어타이어가 트렁크 밑부분으로 들어가 험한 인상보단 도시에 어울리는 세련미를 갖추기 시작했다. 4세대까지 i-VTEC 자연 흡기 엔진을 고집하다 최근 5세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터보차저를 단 다운사이징한 엔진을 탑재했다. 신형은 지난 3월 말 서울모터쇼에서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신차효과로 지난 5월과 6월에만 800대 넘게 팔리면서 호응을 얻고 있다.

휠베이스는 늘어나고 오버행은 짧아져 실내 공간이 넓어졌다
휠베이스는 늘어나고 오버행은 짧아져 실내 공간이 넓어졌다

신형 CR-V의 실루엣은 이전 세대와 비슷하다. 다만 보닛 위, 헤드램프, 옆구리의 선이 날카롭고 굵어지면서 한층 공격적인 인상을 띈다. 날개 형상을 연상시키는 헤드램프와 크롬으로 도금돼 층을 이루는 그릴은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그릴엔 고속에서 공기저항을 줄여주는 ‘액티브 셔터’ 기능이 적용됐다. CR-V가 오랫동안 고수해온 세로 모양의 테일램프 아래엔 가로 모양의 램프가 추가됐는데, 이를 통해 뒷모습의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또한, 얇은 A 필러, 긴 후드, 짧은 리어 오버행, 울룩불룩한 네 바퀴의 펜더 그리고 듀얼 배기 파이프 등이 스포티한 캐릭터를 더한다.

2열 시트를 접으면 최대 2,146ℓ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2열 시트를 접으면 최대 2,146ℓ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덩치는 전 보다 커졌다. 이에 따라 실내 공간도 넓어졌다. 휠베이스가 40㎜ 길어지면서 실내의 총 부피는 약 51ℓ 늘었다. 2열 시트의 레그룸도 53㎜ 길어졌다. 1열 시트부터 테일 게이트까지의 길이는 249㎜ 늘어 2열 시트를 접으면 최대 2,146ℓ의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2열 시트는 6:4 비율로 접고 펼 수 있으며, 헤드 레스트와 트렁크에 달린 레버로 움직인다. 트렁크 하단의 높이는 두 단계로 조절할 수 있어 필요에 따라 평평하게도 만들 수 있다. 시승차인 투어링 트림의 경우 테일 게이트가 열리는 위치를 사용자의 키에 맞게 설정할 수 있다. 실내 분위기는 투박하고 간결한 혼다의 스타일 그대로다. 시트 포지션은 SUV처럼 높은데, 테일 게이트 창문이 작아 후방 시야 확보가 후련하지 않다.

시빅의 터보 엔진을 CR-V의 덩치에 맞게 새롭게 손봐서 달았다
시빅의 터보 엔진을 CR-V의 덩치에 맞게 새롭게 손봐서 달았다

신형 CR-V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엔진이다. 국외에선 기존의 2.4ℓ 4기통 엔진도 만날 수 있지만, 국내엔 1.5ℓ로 몸집을 줄이고 터보차저를 장착한 4기통 엔진 한 종류만 들어왔다. 터보 엔진을 단 CR-V는 이번 신형이 처음이다. 기존 자연 흡기 엔진의 마력과 토크 수준에 맞추기 위해 10세대 시빅에서도 선보였던 터보엔진의 터빈, 흡기구, 배기구 등을 재설계했다. 시빅에 달린 터보차저의 터빈 날은 11개지만, CR-V의 것은 9개고 모양도 다르다. 웨이스트 게이트는 전자식으로 작동해 과급 압력을 정확히 조절한다. 또한 피스톤 크라운(피스톤에서 연소실을 향하고 있는 동그란 면)을 다듬어 압축비를 10.3:1까지 낮추고 효율성을 높였다.

듀얼 배기 파이프와 테일 게이트의 가로 라인들이 스포티한 캐릭터를 더한다
듀얼 배기 파이프와 테일 게이트의 가로 라인들이 스포티한 캐릭터를 더한다

그 덕에 배기량은 줄었지만, 최고출력은 역대 CR-V에서 가장 강력한 193마력, 최대토크는 24.8㎏·m으로 힘이 소폭 향상됐다. 하지만 2.4ℓ 자연 흡기 엔진을 얹은 이전 세대에서 느꼈던 시원하고 즉각적인 가속감은 그립다. 터보차처 엔진은 1,600㎏의 체구를 핸들링하기에 부족함은 없으나 초반 운전 재미를 느끼려면 가속페달을 좀 더 깊숙이 밟아야 한다.

기어 레버의 조작감은 거친 기계를 다루는 듯 투박하다
기어 레버의 조작감은 거친 기계를 다루는 듯 투박하다

출력은 무단변속기인 CVT(Continuously Variable Transmissions)를 통해 흘러 들어간다. CVT는 손목시계의 스테인리스 밴드처럼 생긴 강철 벨트가 두 개의 축을 돌며 토크를 변환시켜 변속 충격이 덜하고 매끄럽다. CVT의 핵심은 세심한 기어비 제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컴퓨터가 주행 상황에 맞춰 알아서 해준다. 전진 기어비는 2.645~0.405, 후진 기어비는 1.859~1.265, 최종감속비는 5.64다. CVT는 일반 주행에선 일을 아주 잘한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이전 세대에선 기어 레버를 ‘S(Sport)’ 모드에 두면 큰 덩치가 무색할 정도로 즉각적인 반응이 있었는데, 신형에선 ‘S’ 모드의 존재감을 상대적으로 크게 느끼지 못했다.

시트 포지션은 SUV에 탄 듯 높다
시트 포지션은 SUV에 탄 듯 높다

실린더 용량을 거의 1ℓ나 들어냈으니 효율성이 대폭 향상했을 거로 단순히 예상했으나, 실제 주행에선 그렇지 않았다. 서울과 강원도를 오가며 53ℓ의 연료를 모두 쓰는 동안 평균 연비는 12.5㎞/ℓ를 보였다. CR-V의 국내 공인 복합 연비는 12.2㎞/ℓ, 고속 연비는 13.6㎞/ℓ, 도심 연비는 11.3㎞/ℓ다. 이전 세대의 2016년형 모델의 복합 연비가 11.6㎞/ℓ였던 걸 고려하면 연비는 그렇게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50g/㎞에서 138g/㎞로 줄었다. 배기량이 적어져 자동차세가 줄어든 것은 환영할 만하다.

2열 시트를 볼 수 있는 룸 미러. 아이를 뒤에 태우고 운전해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유용한지 공감할 것이다
2열 시트를 볼 수 있는 룸 미러. 아이를 뒤에 태우고 운전해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유용한지 공감할 것이다

1년 전 이전 세대 CR-V를 끌고 유명산과 호명산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큰 덩치치고 핸들링이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엔 시승을 위해 신형을 몰고 구불구불한 강원도 미시령 옛길을 오르내렸다. 탄탄한 섀시와 잘 조율된 서스펜션의 전통은 잘 이어받았음을 확인했다. 신형은 10세대 시빅과도 공유하는 ACE(Advanced Compatibility Engineering) 플랫폼에서 제작된다. 혼다 측에 따르면 앞에서 받은 충격을 차 전체에 골고루 분산시켜 탑승자뿐만 아니라 상대 차에게까지 전달되는 피해를 줄여준다고 한다. 신형 차대엔 1,500MPa의 초고장력 강판이 13.8% 들어갔다. 이전 세대는 3%에 불과했다. 서스펜션은 앞 맥퍼슨 스트럿, 뒤 멀티링크 방식의 더블 위시본으로 구성됐다. 댐퍼의 마찰 저항은 낮게 조율됐고, 뒷바퀴는 스태빌라이저 바가 단단히 붙들고 있어 코너링 성능을 돕는다.

컬러 헤드업 디스플레이의 모습. 내비게이션과는 연동 안 되며 속도와 엔진 회전 범위 등을 보여준다
컬러 헤드업 디스플레이의 모습. 내비게이션과는 연동 안 되며 속도와 엔진 회전 범위 등을 보여준다

요즘 나오는 CUV답게 기능적인 면에도 공들인 흔적이 보인다. 컬러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새롭게 디자인된 TFT 디지털 계기반은 주행 중 필요한 정보를 알기 쉽게 보여준다. 아틀란에서 제공한 3D 내비게이션이 들어가 있고, 시승차인 투어링 모델엔 스티어링휠과 1·2열 시트에 열선이 깔렸다. 애플 카플레이도 있어 아이폰 5 이상부터 사용 가능하다. 후진할 때는 후방 카메라의 각도를 세 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정체 구간에서 유용한 오토 홀드 기능도 들어있다. 운전석 메모리 시스템은 키(Key)에 따라 시트 포지션 값을 저장한다. 키를 소지한 상태로 차에서 멀어지면 자동으로 문이 잠긴다. 다만 센터페시아에 달린 7인치 인포테인먼트 화면은 다른 경쟁 모델의 것에 비해 작아 보인다.

국내엔 EX-L, 투어링 두 가지 트림으로 들어오는데, 모두 네바퀴굴림 모델이다. 평소엔 앞바퀴로 달리다 센서가 위험을 감지하면 즉시 뒷바퀴로 구동력을 배분한다. 옥탄가는 87로 일반 무연 휘발유를 권장한다. 가격은 EX-L이 3,930만원, 투어링은 4,300만원이다.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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