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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 전공과정 전국 3명뿐… ‘억울한 죽음’ 시그널 놓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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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들 돈 안 되는 법의학 외면에
41개 의대 중 10곳만 법의학 교실
검안서 사인 판단 오류 비율 55%나
‘타살이 병사로 둔갑’ 사례 증가 우려
“의사ㆍ치과의사 부검 허용 의료법 개정” 목소리
전직 법의관 A씨는 몇 년 전 현직에 있을 때 알코올중독자인 K씨의 변사체를 부검했다. 사체를 검안한 검안의는 K씨가 알코올중독으로 평소 간이 좋지 않았다는 가족들의 증언을 듣고 검안서에 사망원인을 병사(간부전)로 기록했다. 하지만 부검 결과 K씨의 사망원인은 외상에 의한 급성 경막하 출혈(머리손상)로 변경됐다. A씨는 “법의학에선 임상적인 부분을 전적으로 믿지 말라는 교육을 받는데, 보통 검안의는 가족들 진술이나 경찰 초동 수사 내용만 듣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내 법의학이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의과대학의 법의학 교육 외면, 이에 따른 전공자 부족, 그리고 법의관에 대한 처우 부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법의학이 설 자리를 잃은 결과다. 이미 그 부작용은 현실화하고 있다. 부검 결과 검안서에 기재된 사망원인이 잘못된 비율이 무려 55%에 이를 정도다. 법의학자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검안과 검시를 믿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6일 고려대 의대 법의학교실에 따르면 전국 41개 의대를 통틀어 법의학 전공자는 단 3명(서울대 의대‧고려대 의대 ‧전남대 의대)에 불과하다. 의대생들이 법의학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가성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법의학 전공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두 가지다. 의대에서 법의학을 가르치거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법의관으로 취직하거나. 교수가 되려면 자신을 가르친 교수가 정년퇴직을 해야 가능하고, 법의관은 공무원 신분이기에 의대를 졸업한 동기들보다 상대적인 박봉에 시달려야 한다.
41개 의대 중 법의학 교실이 있는 곳도 10곳에 불과하다. 의대 병리학교실 내 법의학과가 설치돼 있는 연세대 의대와 인문사회의학교실에 법의학을 전공한 교원을 두고 있는 울산대 의대까지 합쳐도 12곳이다. 특히 ‘빅5 병원’을 부속병원으로 둔 의대 중 독립적으로 법의학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서울대 의대와 가톨릭대 의대 단 두 곳이다. 법의학 전임교원 수도 턱없이 부족하다. 전국적으로 의대에서 법의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인력은 18명에 불과하다. 연세대 의대는 치과의사가 법의학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법의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사망진단서 등을 써야 하는 의사는 정확한 사망원인 파악을 위해 법의학 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교육 자체가 지나치게 부실할 수밖에 없다. 법의학 강의는 대다수 개설돼 있긴 하지만, 학점 배점이 낮고 필수과목도 아니다. 서울 한 대학은 법의학 강의 자체가 없이 대형병원에서 임상실습 교육만 받고 있을 정도다. 박성환 고려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현재 의대에서 법의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들 연령이 대부분 50대”라며 “기존 교수들이 은퇴하는 10년 가량 후 의대 내 법의학교실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라고 씁쓸해했다. 유성호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법의학을 전공하다가도 경제적 압박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다수의 법의학자들은 현재처럼 전문 인력 양성이 요원할 경우, 타살이 병사로 둔갑되는 억울한 죽음들이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실제 지난해 대한법의학회지 게재 보고서에 따르면 2,263건의 국과수 부검사례를 분석한 결과, 검시보고서 및 검안서에서 작성된 사인이 실제 부검결과와 불일치한 경우가 55.1%(1,246건)로 절반을 넘었다. 부검이 필요하지만 묻히는 사례도 많다. 대한법의학회지 ‘2015년도 서울과학수사연구소 검안사례들에 대한 통계분석’ 보고서는 “변사자 발생 시, 사인불명을 기재하거나 사망의 종류를 기타 및 불상으로 기재하면 수사업무가 증가해 이런 진단을 선호하지 않는다”며 “사인불명인 경우에도 부검률이 40%대로서 절반을 넘지 않는 것은 사인규명을 위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법의학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의료인들이 사망진단서와 사체검안서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의료법도 문제로 지적된다. 의료법 제17조(진단서 등)는 의사는 물론 치과의사, 한의사도 사망진단서와 사체검안서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시체해부및보존에관한법률은 의사와 치과의사에 부검도 허용하고 있다. 박종태 전남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실제로 이들 중 자살, 타살, 사고사를 구분할 수 있는 법의학적 지식을 갖춘 이들이 드물다”고 말했다. 한 전직 법의관은 “법의학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의료인들이 사망진단서와 사체검안서를 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한 현행 의료법은 반드시 개정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의학 교육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에 대한 요구도 높다. 익명의 한 의대 교수는 “의사국가고시 과목에 법의학이 포함된다면 법의학 교육이 지금보다 활성화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용어 설명
ㆍ검안(postmortem inspection) = 변사체에 대해 의사가 유족, 변사체 발견자, 수사관 등을 상대로 문진을 하고, 시진, 촉진 등 상처를 입히지 않는 비침습적 방법으로 변사체를 검사하는 것.
ㆍ부검(autopsy) = 해부를 포함한 침습적 검사를 시행해 변사체를 검사하는 것으로, 사망원인 규명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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