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잡는 과학] “지문감식, 영화처럼 쉽게 되는 게 아니죠”

입력
2017.07.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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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감식 베테랑 윤광상 경기북부경찰청 계장

열이나 습기 등에 금방 망가져

“국내 기술 세계 정상급” 자신

윤광상 경기북부경찰청 과학수사계장.
윤광상 경기북부경찰청 과학수사계장.

“지문 감식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거랑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멉니다.”

올해로 20년째 지문감식을 해 온 ‘과학수사 1세대’ 윤광상(54) 경기북부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은 현장에서 겪는 고충을 이렇게 말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을 데이터베이스(DB)에 입력했을 때 ‘일치’ 또는 ‘불일치’로 금세 판독이 이뤄지는데 ‘영화는 영화일 뿐’이란다. 실제론 지문을 입력했을 때 나타나는 수십 개 유사패턴 지문 가운데 가장 유사도 높은 지문을 찾아주는데, 그 다음은 사람이 육안으로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는 게 윤 계장 설명이다. “결국 ‘지문 주인’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건 컴퓨터가 아닌 다년간 축적된 인간의 경험과 노하우란 얘기죠.”

지문 채취 과정을 살펴보면, 영화 속 장면들과 거리는 더 멀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열이나 습기 같은 환경적 요인으로 망가질 가능성이 높은 지문 특성상, 한 번 감식현장에 들어서면 증거가 될 만한 자료는 최대한 빨리, 많이 얻어내야 한다. 여유롭게 지문을 채취하면서 이런저런 토론까지 해 가는 모습은 그저 영화일 뿐. 윤 계장은 “상황에 따라선 화장실 갈 시간을 아끼려 음식도 물도 안 먹을 때가 많다”며 “양주 살인방화 사건 피의자 지문 역시 밤새 쉬지 않고 세 차례의 교차점검(이미 검색한 곳을 다른 조원이 다시 점검하는 방식)한 끝에 발견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내 지문감식은 이미 세계 정상급”이라고 자신했다. 2005년 인도양 쓰나미 당시 태국 현지에 파견된 그는 ‘고온처리법(익사 시신의 훼손된 지문을 뜨거운 물과 접촉시켜 복원하는 기법)’을 전세계에서 모인 과학수사요원들에게 전파해 사망자 신원확인에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직접 개발한 지문채취용 접착식테이프와 광학기법(광원을 쬐어 지문을 현출하는 방식)에 사용되는 접사촬영기구는 중동 등 해외지역 수출까지 앞두고 있을 정도다.

윤 계장 사무실 냉장고엔 지금도 감식에 쓰일 수십 개의 시약 재료들이 가득하다. 사실상 ‘반(半) 과학자’가 된 셈. 해외에서 들여오는 시약들 가격도 비싸거니와, 열악한 여건을 스스로 극복해가며 웬만하면 직접 만들어 사용해 온 습관 때문이다. “지문감식을 하는 과학수사요원 냉장고는 다 이렇다”면서 “신원확인을 위한 남다른 집념과 사명감이 없었다면 현재 수준의 발전 또한 결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의정부=글·사진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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