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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 리더] 대입수학 1점 받은 마윈 “포기하는 것이 가장 큰 실패”

입력
2017.07.0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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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서 수학 못해 연거푸 낙방

입사시험도 30차례나 떨어져

美 출장길서 인터넷에 감명

B2B 전자상거래 사업 시작

알리페이 발판 비약적 성장

세계 두번째 IT 기업 우뚝

마윈 알리바바 회장. 알리바바 그룹 제공
마윈 알리바바 회장. 알리바바 그룹 제공

1982년 첫 대입 시험 수학 과목에서 1점(120점 만점)을 받아 떨어졌다. 이듬해 치른 시험에서도 수학 점수(19점)가 합격의 발목을 잡았다. 그 다음해 수학에서 79점을 맞은 뒤에야 전문대인 항저우사범전문대 영어교육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졸업 후 입사시험에선 30번이나 낙방했다. 그 중에는 미국계 패스트푸드 업체인 KFC 매장점원 채용 공고도 있었다. 그는 지원자 24명 중 유일하게 탈락한 사람이었다.

훗날 미국 경제전문잡지 포브스는 2000년 중국 본토 기업인 최초로 이 사람을 표지모델로 실으며 이렇게 평가했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곱슬머리를 가졌다. 개구쟁이처럼 이를 드러내며 웃는 소년 같다. 그러나 제대로 된 리더를 찾기 힘든 시대에 수많은 추종자들을 이끌며 세상을 바꾸고 있다.” 중국의 최고부호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 이야기다.

실패에서 찾은 성공 자양분

알리바바 그룹은 중국 중소기업과 해외 기업을 연결해주는 기업간 전자상거래(B2B) 사이트 ‘알리바바닷컴’과 기업ㆍ소비자간 거래(B2C) 온라인 쇼핑몰인 ‘타오바오’ 등을 운영한다. 이들이 중국 전자상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에 달한다. 중국 국내 소포 10개 중 7개가 알리바바를 통해 거래되는 물품들이다.

그러나 마 회장은 직관이나 혜안보다는 결핍과 실패에서 성공의 열쇠를 찾는다. 그는 2013년 서울대 초청강연에서 “첨단기술에 대한 지식과 계획이 없었다”는 말로 성공요인을 설명했다. 첨단기술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기술자들과 토론하며 편리한 서비스를 만들 수 있었고, 사업계획을 정해놓지 않았기에 끊임없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겪은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수많은 실패가 없었다면 지금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나무라도 그 밑에는 자양분이 있다. 가장 큰 자양분은 실패에서 나온다.”

대입ㆍ취업에 이어 창업에서도 마 회장은 수 차례 실패했다. 88년 대학 졸업 후 항저우 전자과학기술대학 영어강사로 일하던 그는 95년 특기를 살려 항저우 최초로 번역전문회사 하이보(海博)를 차렸다. 하지만 적자가 계속 됐다. 결국 도매시장에서 의약품, 의료기계, 일용잡화 등을 싼 값에 사서 항저우 시내에 내다파는 ‘보따리 장사’까지 겸했다.

인터넷 열풍ㆍ현지화 전략에 승승장구

마윈의 인생을 뒤바꿔 놓은 건 95년 항저우시와 미국 투자회사 간 분쟁 협상의 통역가로 오른 미국 출장길이었다. 당시 미국은 세계 최초 웹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를 중심으로 초기 인터넷 문화가 급속도로 성장하던 때였다. 인터넷이 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란 확신에 마윈은 귀국 후 기업의 홈페이지를 개설ㆍ운영하는 중궈황예(中國黃頁)를 세웠다. 그러나 당시 중국은 인터넷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97년 중국 대외경제무역부에서 정부 조직의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을 하다 2년 뒤 50만 위안(약 8,500만원)으로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유통망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판로를 열어주면 성공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국제시장에 진출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의 뛰어난 제품을 전 세계 다른 기업들이 구매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새로운 B2B 전자상거래 방식에 매료된 골드만삭스와 소프트뱅크가 창업 첫 해에 각각 500만 달러(약 56억원)와 3,000만 달러(약 342억원)를 투자하면서 알리바바는 주목 받기 시작했다. 마윈을 만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투자의사를 밝히기까지 6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2003년에는 1억 위안을 투자해 타오바오를 만들어 당시 이베이가 지배하던 중국 온라인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베이가 바다의 상어라면 우리는 양쯔강의 악어다. 바다에서 싸우면 지겠지만 강에서는 이긴다”는 생각을 가졌던 마윈은 상품 판매자의 제품 등록ㆍ판매 수수료 무료 서비스 등 차별화 전략을 앞세워 점유율을 늘려갔다. 결국 2006년 이베이는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2004년 선보인 알리페이도 타오바오의 비약적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알리페이는 일종의 결제 중계서비스다. 타오바오에서 물건을 산 소비자가 지불한 금액은 소비자가 물건을 받아본 뒤에야 판매자에게 건네진다. 결제 후 배송완료가 되기 전까지 해당 금액은 알리페이에 예치된 상태로 있는 것이다. 이는 온라인 쇼핑에서 사기 당하지 않을까 하는 소비자들의 의구심을 해소해줬다. 알리페이는 현재 전 세계 4억5,000만명의 사용자를 지닌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결제 서비스로 성장했다.

20년 후 20억명에게 서비스 제공 목표…거래 장벽 철폐가 신념

2014년 9월 19일 전 세계의 눈은 뉴욕 증권거래소에 쏠렸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로 성장한 알리바바가 상장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공모가는 주당 68달러였다. 매수자가 몰리면서 주가는 38.07% 오른 93.89달러로 마감됐다. 알리바바의 시가총액은 2,314억 달러로 평가 받았다. 정보기술(IT) 업체 중 구글(4,061억 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덩치가 큰 기업이 된 순간이다. 회사 설립 15년 만에 26조원 자산을 가진 중국 최대 부호가 된 그는 “상장으로 갖고 갈 것은 돈이 아니라 신뢰와 부담, 책임감”이라며 “우리가 번 돈은 고객과 중소기업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 해 마 회장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꼽은 ‘올해의 인물’ 2위에, 지난해에는 미국 경제지 ‘포천’이 선정한 ‘올해 가장 위대한 지도자’ 2위에 선정됐다.

물론 탄탄대로만 걸었던 건 아니다. 중국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이 2015년 타오바오에서 거래되는 상품 중 정품은 37%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알리바바 주가는 폭락했다. 같은 해 9월엔 주당 59.24달러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발견 시 위조품 즉각 폐기 등의 대책을 마련한 뒤 주가는 꾸준히 올라 6월27일(현지시간) 주당 141.53달러를 찍었다. 지난해 알리바바의 총 거래액은 같은 해 중국 전체 민간소비 규모(33조2,316억 위안)의 11.4%에 달했다.

그러나 마 회장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최근 2036년까지 전 세계 20억명의 소비자에게 손쉬운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발표했다. ‘물품 거래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한다’는 그의 신념이 회사의 경영철학에도 스며들어 있다.

“포기하는 것이 가장 큰 실패”라고 말하는 마 회장은 대학입시ㆍ취업ㆍ창업에서 수차례 고배를 마시고도 불만만 늘어놓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불평하는 건 결혼 후 배우자에게 매일 욕하면서도 이혼하지 않는 것과 같다”며 “무의미만 행동”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 “꿈은 계속 변하지만 이상은 일관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 ‘고객의 성공이 내가 성공하는 길이다’ ‘어디서든 쉽게 물품거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등으로 압축되는 그의 이상은 알리바바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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