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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 철수 이끌어 줘 감사” 참전용사에 고개 숙이다

입력
2017.06.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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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빅토리호 항해사 루니 제독

직접 찍은 흥남 철수 사진 선물도

“나무처럼 풍성한 동맹으로 성장”

헌화 후 ‘겨울 왕’ 산사나무 심어

28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미국 순방에 나선 문재인대통령이 미 버지니아주 콴티코 국립 해병대 박물관에 위치한 장진호 전투 기념비(지난 5월 4일 준공)에 헌화,묵념 후 기념사를 하고 있다. 콴티코= 고영권 기자
28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미국 순방에 나선 문재인대통령이 미 버지니아주 콴티코 국립 해병대 박물관에 위치한 장진호 전투 기념비(지난 5월 4일 준공)에 헌화,묵념 후 기념사를 하고 있다. 콴티코= 고영권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진심은 미국에서도 빛났다. 함경남도 흥남시청 농업업과장이던 부친이 모친과 함께 흥남철수 작전으로 피난선을 탈수 있었던 가족사를 가진 문 대통령이 흥남철수 작전을 가능케 했던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 “한미동맹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졌다. 몇 장의 종이 위에 서명으로 맺어진 약속이 아니다”고 강조하자 한미 관계자 모두는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문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대통령 전용기가 미 워싱턴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가 있는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국립 해병대 박물관으로 향했다. 로버트 넬러 미 해병대 사령관과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 해리티지재단의 로버트 블랙맨 이사장이 영접에 나서 문 대통령을 반겼다. 문 대통령이 “(워싱턴에) 도착하자마자 여기를 처음 왔다”고 말을 건네자 넬러 사령관은 “가족사와 해병대 역사가 인연을 맺고 있는 이곳 행사장에 오셔서 큰 영광”이라고 화답했다.

스티븐 옴스테드 미 해병대 예비역 중장 등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와의 해후는 지켜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문 대통령은 옴스테드 전 중장에게 고개를 90도 가까이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이에 옴스테드 전 중장은 “3일 동안 눈보라가 왔고,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새벽 1시쯤에 눈이 그치고 별이 보이기 시작해서 그 별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당시 전투상황을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그 별을 보고 희망을 찾아서 10배가 넘는 중공군을 뚫고 나와 결국 흥남철수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셨다”고 거듭 감사의 뜻을 전했다.

문 대통령 부모가 탔던 메리디스 빅토리호의 1등 항해사였던 로버트 루니 예비역 제독은 문 대통령에게 당시 자신이 직접 찍은 빅토리아호의 사진을 선물했다. 루니 전 제독은 “한미동맹은 피로 맺어진 관계”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흥남부두에서 빅토리호에 올랐던 젊은 부부가 남쪽으로 내려가 새 삶을 찾고 그 아이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돼 이곳에 왔다”며 “참으로 가슴 벅찬 감사 감동의 시간이었다”고 소회를 남기며 루니 전 제독에게 각별한 감사의 뜻을 거듭 전했다.

문 대통령은 흥남철수 작전을 결정했던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의 외손자인 토마스 퍼거슨 대령에게 “할아버님 덕분에 흥남철수를 할 수 있었고, 제가 그래서 여기에 설 수 있었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알몬드 장군의 부참모장으로 흥남철수 작전에 기여했던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손자인 네드 포니에게는 “흥남철수가 가능하도록 큰 도움을 줘서 감사하다. 그때 9만1,000명이 구출됐고, 그 피난민에 우리 부모님이 계셨다”고 말했다. 피난민 구출을 미 측에 요청했던 현봉학 박사의 자녀인 현 보울린 여사는 “부친의 제막식에 와 주셔서 감사하다”며 고 인사를 전했고, 문 대통령은 "도리를 다하는 데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늦게나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내외는 이들과 함께 기념비로 이동해 헌화한 후 희생자들을 기리는 묵념을 했다. 붉은색과 파란색 꽃으로 태극 모양의 장식을 한 조화 아래엔 ‘숭고한 희생으로 맺어진 동맹’이라고 적혀 있었다. 넬러 해병대 사령관은 기념사를 통해 “장진호 전투가 문 대통령께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두 나라의 굳건한 동맹 속에서 앞으로 우리가 직면한 도전에 대해 함께 극복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말로 “같이 갑시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으로 ‘윈터 킹’(겨울 왕)이라는 별칭을 가진 산사나무를 심었다. 문 대통령은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영웅적인 투혼을 발휘한 장진호 전투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다”며 “이 나무처럼 한미동맹은 더욱 더 풍성한 나무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해병대는 문 대통령의 장진호 전투 기념비 참배 모습을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생중계 했다. 20만여명이 이 영상을 시청했고, 문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하는 2,000개에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워싱턴=김회경기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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