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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끼리 변호사끼리 ‘그들만의 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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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확실한 ‘낭만적 사랑’보다
같은 직업, 계층 배우자 선택
남녀 평생고용 관행 무너지고
여성 경제활동 확대도 ‘한 몫’
#2
조건 비슷하고 이해도 잘 돼
동질혼, 결혼생활 만족도 높아
남성 77% “맞벌이 필수” 주장
“가사에 전념”은 6.6% 불과
#1. 개인병원 원장인 최상민(가명·48)씨는 아내도 의사다. 같은 의과대학 후배인 아내와 본과 2학년 때 연애를 시작해 남편은 성형외과, 아내는 소아과 전문의로 일하며 아들 둘을 낳아 기르고 있다. “사업가로 불황 때 어려움을 겪었던 아버지께서 평소 ‘결혼할 때는 여자도 능력이 있는 게 좋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그 영향인지 같은 의사면 평생 함께하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평생 함께하기 좋다’는 추상적 표현 속에 담긴 구체적 세목들은 다음과 같다. “의사 부부면 애들도 머리는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어디 가서 기죽을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부부가 함께 억대로 벌면 먹고 사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고요.”
최씨는 많이 벌 때는 연 10억원, 덜 벌 때는 3억원 정도를 번다. 아내는 아이들을 키우며 풀타임으로 일하기 어려워 다른 병원에서 페이닥터로 일하며 연 1억원 정도의 소득을 올린다. 학교 다닐 때부터 성격 좋은 걸로 유명했던 아내는 무엇 때문에 힘든지 긴 말 없이도 이해해 주고,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는 최상의 격려를 해준다. 결혼생활의 만족도가 당연히 높다. “다른 의사 친구들을 보면 배우자가 병원 일을 잘 이해 못 하더라고요. 우리는 서로 자문하고 격려해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죠.”
#2. 올 연말 결혼 예정인 변호사 김다빈(가명·34)씨의 예비신랑은 서울 서초동 소재 로펌에 근무하는 변호사(40)다. 김씨는 5년 전 같은 법대 친구 소개로 이미 변호사였던 남자친구를 만났다. “공부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남자친구가 실무를 알려주는 것뿐 아니라 먼저 시험을 치러본 입장에서 조언을 많이 해줬죠. 변호사가 된 뒤로도 사건 진행에 관한 전반적인 궁금증은 물론이고, 변호사들끼리도 잘 알려주지 않는 노하우를 많이 알려줘 의지가 돼요. 의뢰인들에게서 컴플레인이 들어올 때 응대하는 요령 같은 것도 배웠고요.”
과거 연애상대가 대체로 같이 공부하다가 사귄 경우가 많았다는 김씨는 “결혼 상대의 최우선 기준까지는 아니지만, 직업이 같은 사람과 결혼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했다”고 말했다. “주변 변호사 중 30% 정도는 변호사나 판ㆍ검사와 연애하거나 결혼하는 것 같아요. 다른 영역에 있어서 위로나 의지가 되지 않는 분들과 힘겹게 만나며 연애할 바에는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낫다는 생각도 많고요.”
고학력·고소득일수록 동질혼 대세
당신이 영화나 드라마의 작가라고 상상해보자. 주인공인 남자 변호사는 같은 사무실의 여비서와 사랑에 빠지고, 의사라면 가난한 불치병 환자와 결혼하는 게 일반적 서사 패턴이다. ‘실장님’은 여전히 말단 여직원의 천생배필이다. 하지만, 현실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변호사는 변호사와 사랑에 빠지고, 의사는 의사와 결혼하며, 실장님도 다른 회사 실장님과 로맨스를 맺는다. ‘억만장자와 결혼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억만장자가 되라’가 동질혼의 세계적 추세를 분석한 외신 기사의 헤드라인이었다. 학력, 직업, 소득 등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동질혼(homogamy)이 혼인 문화의 대세가 되고 있으며, 고소득ㆍ고학력일수록 이런 추세는 더 공고해지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처음 작성, 발표한 ‘2015년 기준 신혼부부통계’에 따르면, 2010년 11월1일부터 2015년 10월31일까지 혼인 신고한 초혼 부부 117만9,006쌍 중 남편과 아내 모두 대졸인 부부가 53.9%로 가장 많았다. 이 비중은 매년 조금씩 높아져 2011년 53.1%였던 것이 2015년에는 54.4%로 증가했다.<표 참조>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대졸 남편과 고졸 아내의 결합이라면 대졸 부부가 늘어난 것도 전반적인 대졸 인구 증가의 결과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로 많은 유형은 남편과 아내 모두 고졸인 부부다. 전체 신혼부부의 11.3%를 차지했다. 대졸자는 대졸자끼리, 고졸자는 고졸자끼리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과거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대졸 남편과 고졸 아내의 유형은 네 번째에야 등장한다.
이 같은 동질혼 추세는 남성 가장을 받쳐주던 평생고용 관행이 무너져 내리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늘어난, 노동시장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남성이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이 육아와 가사를 담당하는 게 일반적이었던 과거에는 여성이 자신보다 조건이 좋은 남성과 결혼하는 앙혼(仰婚ㆍ상향혼)이 일반적이었다. 가부장제적 문화가 강력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보다 조건이 좋지 않은 남성과 결혼하는 강혼(降婚ㆍ하향혼)은 드물었다. 이런 문화에서 2000년대 급증한 고학력ㆍ고소득 여성은 결혼 상대를 찾지 못하고 ‘골드 미스 세대’를 양산했다. 한편으론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외벌이만으로는 생계유지나 부의 축적이 어려운 데다 정년 보장마저 불확실한 환경이 되면서, 남성들이 여성의 직업과 소득을 중요한 혼인 조건으로 꼽는 방향으로 급격히 인식이 변화했다. 지난해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래 등이 전국 미혼남녀 51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배우자의 조건에 대해 남성의 76.8%가 ‘맞벌이 필수’를 주장했고 ‘본인 의사에 맡긴다’는 16.6%, ‘가사에 전념’은 6.6%에 불과했다.
고학력ㆍ고소득 여성이 등장하고, 남성들이 이들을 앙망(仰望)하면서 고소득층의 동질혼이 대세로 떠올랐고, 결과적으로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학력과 소득이 높은 층에서 혼인율이 높아졌다. 통계청의 2016년 3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ㆍ30대 여성 임금노동자 중 박사학위 소지자(76.1%)와 중졸 이하(77.6%)가 기혼율이 가장 높고, 최고 소득인 10분위(76.7%)에서 가장 기혼율이 높다.<표 참조>
“결혼조건 따질수록 합리적 선택”
평균 혼인연령이 높아진 것도 동질혼 추세에 영향을 끼쳤다. 고교시절 첫사랑과 결혼하는 낭만적 서사의 주인공이 현실적으로 발생하기 어려운 사회구조로 바뀌었다. 서로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안고 결혼이라는 모험에 뛰어드는 대신 이미 구축한 조건들이 짝을 맺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남성의 화폐자본과 여성의 매력자본이 등가교환 되던 과거의 가치체계는 급속도로 붕괴 중이다. 이제는 화폐자본과 화폐자본의 성별 구분 없는 합산이 동질혼을 통해 새로운 짝짓기의 룰로 자리잡고 있다.
“의사들은 20대에 레지던트, 전문의 따려고 정신 없는 시간을 거치잖아요. 그러고 나면 서른이 훌쩍 넘어 있는데, 그때 낭만을 가지고 누굴 만난다는 게 힘든 면이 있어요.” 의사 최상민씨는 “낭만적 연애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에 90% 정도는 동의한다”며 “젊은 후배들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사들도 경쟁이 치열해지니까요. 젊은 의사들은 모두 직업 있는 배우자들을 원하거든요.”
변호사 김다빈씨는 “사람 하나 보고 좋아서 결혼했다가 경제적 이유나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헤어지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며 “그런 간접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확률적으로 결과가 좋지 않을 선택들은 애초에 배제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남들 보기에 제 연애가 낭만적 연애가 아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 나머지 다른 요인들을 모두 뛰어넘는 하나의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봐요. 제가 이혼 사건을 많이 다루는데 하나하나 들여다 보면 헤어지는 이유는 모두 현실적인 것들이더라고요.”
동질혼, 결혼의 질은 더 높아
동질혼은 결혼의 질이 매우 높은 최상의 결혼 형태 중 하나다. 양성평등도 보다 잘 구현된다. 통계청의 2015년 교육수준별 이혼율 자료에 따르면, 학력이 높을수록 이혼비율도 급격히 낮아진다. 고졸 남성의 이혼율은 대졸 이상 남성의 1.5배였으며, 여성은 고졸이 대졸 이상보다 1.7배 더 많이 이혼했다.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빠른 감정이입은 동질혼의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대형로펌에서 일하는 5년차 변호사 이하준(가명ㆍ35)씨는 로스쿨에서 함께 공부한 동기와 결혼해 22개월 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부부 변호사다. 살면서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특별히 해본 적은 없었지만, 함께 공부하고 진로 때문에 여기저기 부딪히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게 된 케이스다. “대형로펌이다 보니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요. 직업이 달랐다면 설명이나 양해를 구할 일이 많았을 텐데 그럴 필요가 없어 좋죠.”
변호사 김다빈씨도 “리걸 마인드를 가진 분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보니 그렇지 않은 분들과는 소통이 잘 안 되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법률용어로 농담도 많이 하고 하는데, 남들 눈에는 얼마나 비호감이겠어요. 사실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하잖아요. 거기다 결혼 후 아이 낳고 키우려면 가사노동, 육아노동의 부담도 상당히 큰데, 이 영역에서 나를 이해해주고 동질감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함께 헤쳐나갈 용기를 갖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동질혼이 부여하는 이 유대감은, 사랑의 힘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아슬아슬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열쇠 3개’를 들고 오는 부잣집 아들ㆍ딸들의 이점마저 능가한다. 의사 최상민씨는 “한 동기 여학생이 소위 2세 경영인과 결혼했는데 전문의 딴 후 병원에 매여 일만 하는 걸 남편이 도저히 이해를 안 하려 들어 결국 이혼했다”며 “의사 배우자들이 ‘고생했어’ ‘힘들지’하며 이해하고 다독여주는 것과 완전히 딴판”이라고 말했다. “아내가 돈만 많은 경우에는 의사 신랑을 돈으로 산 듯 행동하다 싸우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이혼한 사람들이 주위에 제법 많아요. 부잣집 사위가 되는 것보다 같은 직업인 배우자 만나 맞벌이 하며 사는 게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씨는 “여자 동기들의 경우 50% 이상이 같은 의사와 결혼했다”며 “여자 동기 비율이 전체 정원의 30% 정도밖에 안 돼서 남자들은 그렇게까지 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자유연애시장에서 개인들의 자유로운 짝짓기를 특정 방향으로 강제할 방법은 없다. 당사자들로서는 양질의 결혼생활에 이르게 하는 합리적 선택이다. 부의 재분배는 조세제도와 사회복지를 통해 달성해야 할 과제이지, 아니꼽다는 이유로 ‘동질혼 결사 반대 시위’를 벌일 수도 없다.
“우리 둘째가 과학고를 다니거든요. 참 똑똑한 아이죠. 생화학자가 되고 싶어하는데 의사 자격증까지 가지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제가 조언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의사 최상민씨는 결혼 조건으로 “첫째 똑똑한 머리, 둘째 경제력, 셋째 외모”를 꼽았다. 부부가 똑똑한 아이를 낳아 함께 키운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가정을 꾸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를 실현한 현재의 부부생활에 그는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공교육도, 복지제도도, 사회안전망도 믿을 수 없는 황무지 같은 조국에 가정이라는 튼튼하고 화려한 성채를 세우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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