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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이동 사다리 닫힌 사회일수록 동질혼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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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IMF이후 계층 양극화 심화로
개인 노력 통한 신분상승엔 한계
믿을 건 결혼으로 구축한 가정뿐
부부의 부와 학력, 자녀에게 대물림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동질혼이 대세가 되어가는 데에는 사회구조적 변화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닫혀있는 사회일수록 동질혼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취업난, 저임금, 저금리, 평생직장의 실종, 주거비의 급격한 상승, 극단적 양극화가 계속되는 사회에서 개인의 노력으로 올라설 수 있는 계층이동에는 한계가 있다. 기회가 적고 사회보장 제도가 취약할수록 나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는 오직 가족뿐이고, 그렇기에 결혼의 양상이 달라진다. 미국 법학자인 준 카르본 미네소타대 교수와 나오미 칸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저서 ‘결혼시장’(시대의 창)에서 “(2008~2010년) 소득 상위 1%가 미국 소득의 약 24%를 가져가고, 하위 90%의 임금은 계속 떨어지는 엄청난 소득 격차로 인해 남녀가 배우자를 만나는 방식이 변화했다”며 “어느 때보다 미국 남녀가 상대의 소득을 중요한 매력으로 여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득격차가 극단적으로 커진 만큼 개인에게 소득이 의미하는 바는 더 커졌고, 이런 환경에서 남녀 모두, 특히 고소득 남녀가 합리적으로 타협할 수 있는 결론은 동질혼이 되는 것이다. 두 저자는 “소득이 계속 상층에 집중되고 고용불안이 커질수록 일부를 제외한 미국 가족 대부분은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수저론’이 공고한 한국의 상황도 다를 게 없다. 결혼 상대를 선택할 때 예비 배우자의 학력이나 소득 등의 조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청년들은 많지 않다. 정지민 칼럼니스트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계층 양극화가 심화되고 노력을 통한 계층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최근 정서이다 보니 ‘결혼을 하더라도 내 현재 위치는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작동한다. 예비 배우자의 직업, 소득, 학력, 지위 등이 연애에서 획득해야 할 목표가 된 듯한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고소득자는 고소득자와 가정을 꾸리고, 저소득자는 자신보다 더 잘 버는 상대를 끊임없이 찾거나 둘이 돼 더 힘들어질 바에야 결혼을 하지 않겠다며 독신으로 남는다.
이렇게 결성한 가정은 기댈 곳 없는 이 사회에서 나의 생계와 지위를 유지해 줄 유일한 감정적 유대 집단이자 이익 공동체가 된다. 부부의 부와 학력, 결혼의 기회는 고스란히 자녀에게 대물림된다. 대학 등록금은 비싸고, 공교육은 부실한 상황에서 자녀 교육이란 가족 스스로 해내야 할 과업으로서 각 가족이 가용자원을 총동원한 지위 경쟁의 각축장이 된다.
단지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고 값비싼 학원이나 과외 교육을 받게 할 수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학력 부모에게서 숨쉬듯 공기처럼 흡수하는 문화자본 역시 막대하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혁신가들이 모두 이 그룹에서 배출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어머니는 정신과의사, 아버지는 치과의사였다.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의 아버지는 컴퓨터공학이라는 분야를 기초한 미시건주립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어머니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강사였고, 세르게이 브린 역시 아버지가 메릴랜드대 수학과 교수, 어머니가 미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이었다. 공교육을 아무리 강화하더라도 메울 수 없는 우주적 간극이다. 별자리에 관심을 갖는 아들에게 NASA 어린이체험 프로그램이 즉각 제공되고,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는 딸에게 즉석 코딩 강의가 펼쳐지는 세계다. 동질혼을 가장 합리적 전략으로 일컫는 이유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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