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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잡는 과학] “레드선만 외치면 끝? 최면 수사는 뇌파 활용한 과학입니다”

입력
2017.06.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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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관이 친밀감 형성시킨 뒤

뇌의 베타파를 세타파로 유도

희미한 과거 기억 끄집어내…

범죄 트라우마의 치료 역할도

법최면 '베테랑' 박주호 경위가 14일 전북 익산경찰서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법최면 '베테랑' 박주호 경위가 14일 전북 익산경찰서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최면수사에 덧씌워진 오해가 정말 많아요.”

14일 오전 전북 익산경찰서 거짓말탐지기실에서 만난 법(法)최면 전문수사관 박주호(44) 경위의 첫 마디는 “최면수사를 ‘과학’으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었다. 일반인은 물론 일선 경찰들조차 “양파를 먹으며 사과 맛을 느끼게 한다거나, 최면을 걸어 마음대로 조종하는 게 최면수사의 전부인 줄 안다”고 했다. “‘레드 선(Red Sunㆍ최면을 거는 구호 중 하나)’만 외치면 저절로 최면에 빠지는 것으로 믿는 사람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법최면은 그러나 뇌파를 베타파(β)에서 세타파(Θ)로 유도해 수행하는 엄연한 과학이다. 베타파는 깨어 있을 때 나타나는 파동을, 세타파는 졸리거나 명상에 잠겼을 때 나타나는 파동을 뜻한다. 최면 상태에서는 세타파가 주로 확인되는데, 이때 신체적 정신적 긴장은 이완되고 특정사건에 대한 기억력이 급격히 증가한다. 박 경위는 “사건과 관련 없는 기억의 수도꼭지는 잠그고, 수사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흘러나오도록 집중하게 하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최면 대상자는 피해자와 목격자로 한정한다. “심리적 외상이나 정신적 충격으로 사건 당시 기억을 못 하는 경우, 또는 시간이 많이 지나 사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 경우에 최면을 통해 대뇌 어딘가에 남아있는 기억을 끄집어 내기 위해서”이다. 피의자에겐 극히 제한적으로 술 때문에 범행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범행 장소나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대화가 기본이 돼야 하기 때문에, 정신질환을 가졌거나, 어휘 이해력이나 문장 독해력이 낮은 사람, 지나치게 나이가 많거나 어린 사람은 (대화를 기본으로 하는) 대상자가 될 수 없어요.”

최면상태로 들어가는 건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최면대상자가 수사관을 믿지 못할 경우 신체적, 정신적 이완이 불가능해 최면에 들기 어려우므로 충분한 설명과 일상적 대화를 통해 수사관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게 필수다. 이를 ‘라포 형성(Rapport Building)’이라고 부르는데, 박 경위는 “라포 형성이 최면수사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고 끝이 아니다. “최면 중 떠올린 기억은 각성 이후에 여전히 남아 있으므로, 깨울 때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사건을 떠올리며 두통이나 메스꺼움을 호소한다. “최면수사가 사람(범인)을 잡는 데 쓰인다고만 생각하는 것도 오해 중 하나에요. (최면상태에서) 범죄 피해자나 목격자가 겪었던 부정적 감정, 사건 이후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도 있으니까요.” 2007년 직장을 그만 두고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으로 경찰에 들어온 박 경위는 10년 내공을 쌓은 법최면 베테랑이다.

글ㆍ사진=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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