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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 3인조’ 형사보상금 11억과 잃어버린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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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금 1일에 최저임금 5배 적용 계산
박탈 당한 기회비용은 고려 안 해
정부 “예산 없다” 지급 미루기도
사형 후 무죄 판결 3,000만원 보상
총 보상금액 2011→2014년 4배 폭증
“수사기관 신중한 결정” 가장 중요
1999년 불심검문 도중 전북 삼례 나라슈퍼 강도사건 범인으로 몰려 3~6년씩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삼례 3인조’를 기억하십니까. 2015년 재심 끝에 누명을 벗은 이들이 지난 14일 1억4,000만원을 공익단체와 피해자 유족에게 기부금으로 내놓기로 결정해서 화제가 됐습니다. 죄 없이 치른 옥고의 대가로 3명이 국가로부터 받은 11억4,000만원의 형사보상금 가운데 10%를 기부하기로 결정한 겁니다.
이들처럼 무고하게 형사처벌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국가는 형사보상금을 지급합니다. 손해배상금은 사법처리 과정에서 명백한 실수가 있었다는 게 소송을 통해 입증돼야 받을 수 있지만, 형사보상금은 수사과정의 실수를 입증하지 않고도 사법부의 최종 무죄 결정만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보상금 산정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구금일수에 따라 하루당 그 해 최저임금법에 따른 일일 최저임금액부터 그 다섯 배까지의 한도 내에서 재판부 재량으로 결정합니다. 법원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은 사람들에 대해선 대체로 다섯 배 상한선을 적용해 형사보상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불법체포나 고문, 가혹행위 같은 적법절차 위반과 인권유린이 만연했던 사실에 대한 인정과 사죄의 의미’라는 게 법조계 설명입니다. 삼례 3인조가 받은 돈도 구금일수 1일당 24만1,200원(당시 최저임금의 5배)을 적용했습니다.
형사보상금 갈수록 폭증
삼례 3인조가 피의자로 둔갑하는 과정에서 자행된 고문과 기록 조작 등 수사기관의 횡포와 오만은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싶겠지만 통계를 들여다 보면 국가가 무죄를 받은 사람들에게 형사보상금으로 쓰는 돈은 상당합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구속ㆍ재심사건에서 무죄로 결론 나서 정부가 지급한 형사보상금이 2011년 221억원(1만4,252건) 정도였지만, 2014년에는 851억원(3만38건)으로 폭증했습니다. 대법원 사법연감을 봐도 법원은 최근 10년간 형사보상을 청구한 10명 중 8,9명꼴로 보상을 받을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결정했습니다. 구치소에 수감 됐다가 무죄로 풀려나거나, 형을 마친 뒤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검찰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보상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기도 합니다. 형사보상금 지연이자 청구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24건에 달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 중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가,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된 사례가 19건입니다. 지난 5일 대법원에선 사상 처음으로 과거사 사건 관련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은 23명에게 국가가 지연이자까지 지급해야 한다는 확정 판결을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보상금을 받는다고 해서 잃어버린 세월과는 맞바꿀 수는 없다는 점에서 수사기관의 신중한 결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똑바로 수사하면 억울한 사람도 만들지 않고, 국가 예산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 적지 않아
검찰은 그러나 ‘무고한 사람들을 갈수록 마구잡이로 잡아 넣는 것이냐’는 비판에 대해 ‘착시효과’를 거론하며 억울함도 표합니다. “2010년부터 20개 법률 규정에 대한 위헌 결정이 있어서 재심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2006년 발족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10년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재심 청구가 급증한 점도 작용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수사기관들이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가까운 예로 지난 2015년 배임수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민영진 전 KT&G 사장이 15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과 가까운 기업인들을 옥죄기 위한 박근혜 정권의 하명 수사라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10개월간의 수사 끝에 민 전 사장을 구속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1,2,3심 모두 죄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민 전 사장도 이제 법원에 형사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형사보상법, 美 獨 彿 사례 참고해야
‘삼례 3인조’ 같은 사법피해자가 엄존하는 현실 때문에 보상금 청구기간이 1년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5년 이내로 늘어나는 등 법 규정이 많이 보완됐지만, 여전히 미비한 점이 적지 않습니다. 무죄를 선고할 때 형사보상금 청구 권리에 대한 재판부의 고지 의무가 없어 권리 자체를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보상금 지급 결정 및 실제 지급되기까지 걸리는 기한을 명시한 법률 규정이 없어 돈을 받기까지 오랜 기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박탈당한 기회비용을 단순 구금일수로만 계산해서 산출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특히 무고한 사형에 대한 형사보상금은 3,000만원으로 제한돼 있습니다. 국가에 의해 빼앗긴 목숨 값이 3,000만원인 셈입니다.
그래서 형사보상을 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금전 보상 이외에 재사회화 서비스를 제공해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옥살이 한 당사자의 수입과 기회비용, 주거이전비용, 면회를 위해 그간 배우자가 지출한 교통비까지 형사보상 금액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압수수색이나 운전면허 정지로 인한 피해까지 보상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는 독일의 사례도 눈길을 끕니다.
“오만했고 너무 자신했다”
미국에서도 1983년 ‘삼례 3인조’ 사건과 비교될 만한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도살인으로 총을 맞고 숨진 전당포 주인 살인사건에 대해 검찰이 주인집 정원사였던 글렌포드를 오염된 증언과 조작된 증거를 근거로 기소했고 법원은 사형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흑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과 편견이 뒤엉켜 자행된 비극이었다는 점이 뒤늦게 밝혀졌지요. 뒤늦게 진범이 나타나 30년 동안 복역한 글렌포드가 2014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그를 기소했던 당시 지방검찰청 수석검사 스트라우드는 지역 신문에 이렇게 기고했습니다.
“나는 오만했고, 심판하는 일을 좋아했고, 스스로에게 도취돼 있었고, 또 자신만만했다. 나는 정의 그 자체보다 내가 이기는 것에 더 몰두했다. 이제서야 나는 33살의 젊은 검사였던 내게 다른 한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판단을 내릴 능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뼈 아프게 깨달았다.” 통렬하게 스스로를 반성한 검사 스트라우드의 기고문이 오늘날 우리 검찰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그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지만, 적어도 변명 없이 반성했습니다. 대한민국 검사들은 그럴 용기가 있을까요.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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