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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철모 얹은 비목...증오 대신 평화를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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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이 수면아래 가라 앉고, 63빌딩 중간까지 한강물이 찰랑대는 위협이 코앞에 닥친다면? TV 뉴스에서 북한의 수공으로 서울이 물바다가 될 거라고 연일 떠들어 댄다면? 그랬다. 1986년 ‘북괴의 위협’이 생생하게 전달될 후, 순식간에 국민성금 661억원이 모아졌다. 북한의 금강산댐(임남댐) 수공에 대처하기 위해 그렇게 일사천리로 건설한 ‘평화의 댐’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국민을 위협하고 사정 모르는 어린아이의 코 묻은 용돈까지 ‘삥’ 뜯어간 건 괘씸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댐은 본래보다 더 높고 튼튼하게 보강됐다. 평화의 댐은 외관상 225m(해발)를 기준으로 아래와 위가 확연히 구분된다. 2001년 실제로 북한의 금강산댐 방류로 댐이 넘칠 위험에까지 처했고, 국민의정부는 댐을 보강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참여정부인 2006년에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댐이 완공됐다. 1999년 폭우 때는 수위가 203.6m까지 이르러 홍수조절 기능을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커졌다. 때문에 ‘정권안보용 vs 실용성’ 논란은 지금도 여전하다. 단 평시에 물을 가두지 않는 댐이니 위험관리비용을 아주 비싸게 치르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화천군은 현재 평화의 댐 주변을 ‘평화안보관광지’로 조성했다. 우선 가곡 ‘비목(碑木)’의 탄생지인 비목공원이 댐 바로 옆이다. 십자가 모양의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녹슨 철모를 얹은 비목이 전쟁의 참화를 쓸쓸히 대변하고 있다.
비목은 원래 이곳에서 10km 전방,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곳에 있었다. 1964년 학사장교(ROTC) 2기인 한명희는 백암산 돌무더기에서 비목과 철모를 발견한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가 조국을 지키다 초연(硝煙, 화약연기)에 스러져간 비감을 적었다가, 4년 후 한양대 음대교수인 친구 장일남에게 전해서 가곡으로 탄생했다. 매월 6월이면 비목공원에는 참전용사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절 첫 소절에 등장하는 궁노루는 사향노루의 일종이다. 요즘은 궁노루 대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산양 200여 마리가 평화의 댐 주변 습지와 바위언덕을 오가며 서식하고 있다.
비목공원 위에는 ‘세계평화의 종’ 공원을 만들었다. 29개 분쟁국가와 한국전쟁 당시 사용했던 탄피도 함께 녹아 있는 37.5톤의 종을 둥그런 종루에 매달았다. 바로 옆 관광안내소에 500원을 내면 실제 타종해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모은 돈은 에티오피아의 한국전 참전용사 가족을 돕는데 쓰인다. 종루 옆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얼굴 동판이 새겨져 있다. 실제 모양을 본 딴 손도 만들어 악수하는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게 했는데, 동판에 손만 돌출돼 있어 다소 거부감이 드는 것은 흠이다.
평화의 종 공원을 돌아 댐 아래쪽에는 ‘국제평화아트파크’를 조성했다. 평화를 약속하는 높이 38m의 거대한 반지 조형물을 중심으로 실전에 사용했던 무기를 배치했다. 예의 비장함과 적개심을 더하기 보다는, ‘평화를 입은’ 작품으로 재해석했다. 쇠사슬에 묶인 전차, 포신에 노란 나팔을 달고 오색 바람개비로 장식한 탱크, 장난감과 놀이시설로 변신한 대공포 등 주제는 한마디로 ‘무기여 잘 있거라’이다. 철책과 대북확성기 모형 위로도 하얀 비둘기가 날고 있다.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뿐 아니라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도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는 시설이다.
최근 평화의 댐까지 가는 길이 한결 편리해졌다. 기존에는 화천에서 460번 지방도를 이용해 해산령을 넘고 한참을 우회해야 했지만, 얼마 전부터 군사지역으로 묶여있던 빠른 길을 허용했다. 딴산유원지를 지나 ‘양구ㆍ평화의 댐’ 방면으로 우회전하지 않고 풍산리 방향으로 직진하면 된다. 내비게이션은 아직 가르쳐주지 않는 길이다. 평화의 댐 부근 민통선 초소에서 ‘사진을 찍지 않고, 도로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등의 동의서에 서명하면 간단히 통과할 수 있다.
화천=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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