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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기억] 밀가루 범벅, 수난의 정원식 총리

입력
2017.06.03 07:42
1991년 6월 3일 정원식 총리서리가 온몸에 밀가루를 뒤집어 쓴 채 차량에 오르고 있다. 오른쪽은 당시 중앙일보 기자였던 박병석 전 국회부의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1년 6월 3일 정원식 총리서리가 온몸에 밀가루를 뒤집어 쓴 채 차량에 오르고 있다. 오른쪽은 당시 중앙일보 기자였던 박병석 전 국회부의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1년 6월 3일 오후, 새 총리에 지명된 정원식 전 문교부 장관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나오던 중 일생일대 최대 수난을 당했다.

91년 봄, 전국의 대학가는 전교조 탄압에 대한 항의와 학원 민주화에 대한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시기였다. 4월 26일 명지대생 강경대 군이 백골단이라 불리던 시위진압 경찰의 폭력에 의해 사망했고 이어 성균관대생 김귀정 양 마저 시위현장에서 압사당하며 목숨을 잃었다. 학생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증오는 정부를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노태우 정부가 시국을 타개한다며 전교조를 불법화한 정원식 전 문교부 장관을 총리로 지명했으니 학생들의 반감과 술렁임은 자명한 일이었다.

6월 3일, 정원식 총리서리가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던 중 교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학우 여러분, 전교조 선생님들을 학살한 정원식이 지금 우리학교에 있습니다” 당황한 정 총리서리는 서둘러 강의를 마치고 밖으로 향했지만 흥분한 학생들은 그를 에워싸고 계란을 던지기 시작했다. 피할 새도 없이 밀가루가 퍼부어 졌다. 한 손에 선물을 든 채 온 몸이 계란과 밀가루로 뒤범벅된 정 총리 서리는 학생들의 스크럼 안에서 20분이 넘는 수난을 당한 후에야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사건을 빌미로 순수하던 학원민주화 투쟁은 여론으로부터 외면당하며 동력을 잃었고 정 총리서리는 7월 3일 국회의 동의를 받아 정식 총리로 취임했다. 올해 구순(九旬)을 맞은 정 전 총리는 신일스승상위원장 등을 맡으며 아직 건강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손용석 멀티미디어 부장 stones@hankookilbo.com

1991년 6월 3일 오후, 총리에 지명된 정원식 전 문교부장관이 한국외대에서 강의를 마치고 나오다 학생들에게 달걀과 밀가루 세례를 받고 있다. 박종우 전 한국일보 기자
1991년 6월 3일 오후, 총리에 지명된 정원식 전 문교부장관이 한국외대에서 강의를 마치고 나오다 학생들에게 달걀과 밀가루 세례를 받고 있다. 박종우 전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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