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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노을 지는 파로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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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철을 맞아 분주한 요즘, 지방 댐들은 봄 가뭄으로 저수율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물이 필요한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제때 공급하지 못해 농민들 마음은 바짝바짝 타들어 간다. 전국에서 댐이 가장 많은 강원도도 겨울부터 이어진 봄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강원도 화천과 양구를 이어가는 파로호도 가뭄으로 물 유입량이 줄면서 수위가 많이 낮아졌다. 상류 지역인 양구 공수리 마을도 가뭄으로 땅이 말라붙어 자동차들이 지날 때마다 흙먼지가 날려, 마치 흰 연기를 뿜어내는 연막 소독차가 지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양구의 공수리는 ‘육지 속의 섬’이라고 불리던 오지 마을 중의 하나였다. 80년대 만든 세월교가 여름 장마철이면 물에 잠겨버려 섬이 되는 곳이었다. 가뭄으로 먼지가 날리는 삭막한 풍경도 해 질 무렵이면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아름다운 비경으로 탈바꿈한다.
먼지가 날리던 비포장도로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저 멀리 산 아래로 지는 해가 노을을 토해내면 붉은빛을 받은 실개천은 비단을 깔아 놓은 듯 영롱하다. 그곳에 낚싯대를 드리운 낚시꾼을 보고 있으니 이곳이 가뭄으로 어려움을 받는 현장이라는 것이 거짓말 같다. 어느새 머릿속에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아버지와 두 아들이 함께 몬태나주의 아름다운 숲과 강을 배경으로 플라이낚시를 던지는 장면이 떠올라 몽환적 감상에 젖어 들었다. 그것도 잠시 가뭄 현장에서 그런 감상에 젖어있는 나를 나무라며 어서 시원한 봄비가 주룩주룩 쏟아져 가뭄에 속 타는 농민들의 마음을 해갈시켜 주길 간절히 기원해본다.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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