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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여전히 무섭다” 남성은 “왜 그리 예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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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남녀 200여명 거리 설문
남성 상당수 “할 말 없다” 주저
격앙된 반응 보인 40대 남성
“여혐 아닌 정신질환 범죄일 뿐”
“여동생 생각하면… 무관심 반성”
응답한 대부분은 “변화해야” 공감
“아니, 아직도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까? 정신질환자가 한 짓이라는 결론이 났는데도요.”
지난 12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부스를 차리고 시민들로부터 포스트잇 메시지를 받고 있는 취재팀에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다가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내가 겪었을 수도 있던 일”이라 말하며 사건 후 보였던 여성들 ‘분노’와는 결이 다른 분노. 그 남성을 필두로 “도대체 왜 여자들이 이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모르겠다”는 날 선 목소리가 부스 옆을 지나치는 남성들 입에서 터져 나왔다.
11, 12일 양일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1년, 당신의 삶은, 사회는, 어떻게 변했습니까’라고 질문에 답을 한 남성은 총 55명. 이들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적 사건”이라고 같은 목소리를 냈지만, 누구도 직접적인 ‘공포’나 ‘불안’을 말하지 않았다. 제3의 입장에서, 피해자의 아픔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것이 본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무서운 범죄’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여자들이 측은했다”는 답변도 27세 남성을 비롯, 여럿 있었다.
심지어 일부는 “사건 때문에 남녀 갈등이 늘었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어이없이 대한민국이 분열됐다”(32세 남성), “육아, 직장 관련 얘기를 할 때 여자친구와 의견 차이가 심해졌다”(28세 남성)고 했다. “사건 이후 졸지에 여성혐오의 가해자로 지목됐다”고 불평하는 남성도 있었다.
무엇보다 남성들은 답변을 하는 것 자체를 주저했다. “아직도 무섭다”며 자발적으로 의견을 남기고, 같이 온 일행에게도 “너도 써”라며 독려하는 여성들과는 딴판이었다. 일부 남성은 앞서 시민들이 남기고 간 포스트잇을 몇 분 동안 읽고, 휴대폰 카메라로 수 차례 부스를 촬영하면서도 “딱히 할 말이 없다” “보기만 하겠다”며 단호하게 참여거부 의사를 밝혔다. 질문에 답한 남성 55명은 전체 응답자 218명의 25%에 불과했다.
반면 응답 남성 중 소수(2명)는 본인과 가까운 여성의 입장을 떠올려보며, ‘여혐 현상’과 이에 대한 여성의 불안을 최대한 공감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엄마가 겪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한 20대 초반 남성, “여동생이 당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30대 남성이 붙인 포스트잇엔 “여성혐오가 원인”이라며 “뿌리뽑아야 한다”는 답이 담겨 있었다.
‘반성한다‘는 목소리(5명)도 이어졌다. 한 30대 남성은 사과와 함께, “부끄럽다”고 했다. “내가 외면해왔던 이들의 비명을 들은 것 같다”(29세 남성)는 답도 있었다. 사건을 “시작점” “전환점”이라 표현하며 양성평등사회를 향한 계기로 삼겠다는 각오를 내놓는 이도 여럿 있었다. 이인혁(24)씨는 “여성인권에 대한 무관심이 대형재난을 부른 것”이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모두가 여성인권 향상에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각론엔 차이가 있었지만 응답자 대부분(50명)이 “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엔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성별뿐 아니라 연령에 따른 차이도 눈에 띄었다. 어학원과 술집이 밀집해 있어 상당수 유동인구가 젊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현장에서 만난 중년 중에는 이 사건에 관심을 보이는 이를 찾기가 힘들었다. “잘 모른다”는 게 대부분 중년 시민의 응답이었다. 나이를 기재한 응답자 평균 연령은 24.8세. 20대 응답자가 137명(64%)으로 가장 많았고, 10대(40명, 19%) 30대(31명, 14%)가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남성들이 100% 공감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5%라는 남성의 참여, 그들이 보여준 공감의 노력을 “긍정적인 신호”라고 봤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굉장한 노력을 수반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개인들은 성찰했고, 사회를 이해하려고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여성들의 손을 잡아야 진정한 사회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구단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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