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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기억] 잊혀진 원훈 ‘정보는 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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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12일 서울 내곡동 국가안전기획부(NSPA)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감회 어린 표정으로 건물 앞에 섰다. 두달전 정보수장으로 임명된 이종찬 부장의 인사를 받은 김 대통령이 가려져 있던 표지석의 천을 걷어내자 간결하면서도 힘찬 문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가 친필로 쓴 ‘정보는 국력이다’ 라는 새 부훈(部訓)이자 원훈(院訓)이었다.
악명 높았던 중앙정보부와 후신 국가안전기획부가 내세웠던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부훈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반 혁명세력과 간첩을 색출하고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활동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중앙정보부(KCIA)를 창설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를 모방한 무소불위의 권력기구가 탄생한 것이다. 81년 전두환 정권 때 국가안전기획부로 개편된 후에도 본연의 정보 업무보다 공안 대공 수사 등을 빌미로 국민과 재야인사 탄압에 앞장서 권력의 도구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중정과 안기부로부터 누구보다 많은 감시와 피해를 받았던 DJ는 집권 후 국가정보기관 개혁작업에 착수했고 98년 4월 안전기획부를 국가정보원(NIS)으로 개칭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국내 사찰활동을 폐지하고 해외 정보 획득에 주력한다는 취지였지만 이듬해 1월 정식 출범한 DJ 정부의 국정원 또한 도청의혹과 정치활동의 유혹을 완전히 씻어내지는 못했다.
이날 제막된 표지석 원훈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10년 만에 사라졌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정보는 국력이다’ 원훈을 폐지한 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을 내세웠고 이는 다시 박근혜 정부에 의해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로 대체됐다. 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정보기관의 원훈이 수시로 바뀐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정원 개혁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원훈 개칭에 앞서 온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내실 있는 개혁 작업이 되길 바란다.
손용석 멀티미디어 부장 st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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