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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측근비리 단죄가 문재인 성공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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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서 오랫동안 대관업무를 해온 한 임원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에게 새로운 대통령의 등장은 기대보다는 부담이다. 늘 그래왔듯이 조만간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온갖 인사청탁과 요상한 민원이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미래를 걱정하며 역대 정권의 과거를 찬찬히 돌이켜봤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인사들은 말이 청탁이지 사실상 지시를 했다고 한다. 측근들을 요직에 앉혀 달라거나 친인척의 취업을 부탁하고 특정업체와 거래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형식은 부탁인데 자세는 매우 고압적이었다. 그는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처럼, 맡겨놓은 물건 찾아가는 것처럼 청탁을 하는데, 정말 ‘싸가지’가 없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도덕성을 금과옥조로 여겼던 노무현 정부 인사들은 어땠을까. 청탁이 있기는 매한가지. 다만 야인으로 지내다 예상치 못하게 권력을 잡게 된 인물들이 많았던 탓인지 인사청탁에 익숙하지가 않았다고 한다. 비교적 공손하게 부탁했고 청탁내용도 소소한 게 많았을 정도로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도 권력의 맛을 보더니 점점 체계적이고 능숙하게 청탁을 했다. 도덕성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겉과 속이 달랐으면서도 밖으로는 너무 깨끗한 척 하지 않았나. 차라리 대놓고 들이댔던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인사들보다 더 보기 싫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실제로 참여정부 시절 비리에 연루된 인사들을 열거하기는 어렵지 않다.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인사들만 따져봐도 10명이 넘는다.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서갑원ㆍ최철국 전 의원, 김원기 전 국회의장,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사법처리 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는 친인척 비리의 상징처럼 각인됐다. 노무현의 강직함과 소탈함, 정치적 소신에 매료돼 대통령으로 뽑아줬더니 측근들의 비행이 대한민국의 앞길을 막았다. 정권 말기에는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놔도 불신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자신이 아무리 떳떳해도 측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노무현 때처럼 순박하지도 않다. 대부분 제도권에 완벽히 적응한 닳고 닳은 인물들이다. 선거과정에서 통합을 강조하다 보니 대통령 주변에는 이곳 저곳에서 몰려든 ‘자칭’ 측근들로 넘쳐난다. 매머드급 인재풀은 분명 장점이지만 관리가 서툴면 언제든지 비리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구축해도 대통령이 그 많은 측근들의 비리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단호한 사후 대응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불안한 조짐은 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대선 후보 경선비용 명목으로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9억원을 수수했다. 세 차례에 걸쳐 현금과 달러, 수표 등이 담긴 여행용 가방을 통해 받았다. 한 전 총리는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에 대해 “거액의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해 죄질이 무겁고, 일부를 사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하고 명백한 사정들까지 부인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다. 책임을 통감하기보다는 직원에게 전가해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동지였던 한 전 총리를 옹호하기 위해 사법부를 겨냥했다. “내가 알기로 한명숙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논리였다. 그는 선고 직후 “검찰의 정치화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 동기와 과정을 문제 삼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사법부의 최종 판단마저 무시하는 태도에는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제 야당 대표가 아니다. 자신만 깨끗하다고 인정받기도 힘들다. 측근 비리가 드러났을 때 개인적 인연에 흔들려 감싸다 보면 정권은 물론 국민이 불행해진다. 읍참마속의 자세, 그것이 문재인 정권의 성공을 담보할 것이다.
강철원 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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