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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유권자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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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은 사기꾼이나 마찬가지고 따라서 누가 권력을 잡아도 내 삶과는 무관하다는 정치 혐오 내지 냉소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학자 래리 M. 바텔스가 쓴 ‘불평등 민주주의’를 읽으면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삶이 꽤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당 집권기의 미국 중산층 실질소득 증가율은 공화당 집권기보다 2배나 높았고 빈곤층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무려 6배나 높았다. 민주당 정권은 소득불평등을 감소시켰지만 공화당 정권은 심화시켰다.
▦ 이 정도면 미국의 중산층과 빈곤층은 당연히 민주당을 더 많이 지지해야 할 테지만 1950년대 이후 대선에서는 공화당의 승리가 많았다. 바텔스에 따르면 어찌된 일인지 미국의 중산층과 빈곤층은 부유층의 소득 증가를 자신의 소득 증가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부유층이 잘살게 되면 마치 경제 전체가 좋아졌다고 받아들이는 식이다. 권력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자신의 경제사정이 달라지는데도 알아채지 못하고 무지와 착각에 사로잡혀 엉뚱한 투표를 한다는 것이 바텔스의 지적이다.
▦ 그러니 이들은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돼도 그것을 그저 하나의 현상으로만 바라볼 뿐 그런 결과를 가져온 정치세력을 탓하지 않는다. 좀 심하게 말하면 무엇이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선거 결과는 결국 유권자의 책임이 될 수밖에 없다. 같은 유권자라도 이해관계가 다르고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하니 유권자 중에 누가 더 절실한지에 선거 결과가 좌우된다. 주요 정당의 후보 다섯 명을 포함해 무려 열 세 명이 완주한 한국의 제 19대 대선도 마찬가지다.
▦ 중요하지 않았던 대선이 한번도 없었지만 부패와 독선에 사로잡힌 대통령을 국민의 힘으로 쫓아내고 치른 이번 선거는 그 과정과 결과가 유난히 엄중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국민의 삶이 달라진다는 ‘불평등 민주주의’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더욱 엄격하고 진지하게 후보를 골라야 했다. 그런데도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색깔론이 막판까지 꽤 재미를 본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알아채지 못한 미국의 중산층과 빈곤층처럼, 한국 유권자 중 일부는 여전히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뜻일 게다. 그것이 내내 아쉽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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