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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꿈꾸라, 낭만 로드스터 메르세데스 AMG SLC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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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스터는 자동차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초창기 자동차는 부유층의 유희 수단으로 그들의 목적은 이동과 더불어 경주와 과시에 있었다. 내 차가 더 빠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레이스를 시작했고, 내 차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모터쇼를 열었다.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 시트는 하나 혹은 둘이면 충분했고, 무거운 지붕도 필요치 않았다. 또한, 남들 눈에 달리는 모습이 멋있어야 했기 때문에 디자인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우리가 지금 로드스터(‘Road’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ster’를 붙임)라고 부르는 차는 이러한 배경에서 약 100년 전부터 존재했다. 그래서 로드스터엔 단순히 지붕이 개폐되는 것 말고도 특별한 헤리티지와 낭만이 담겨 있다. 일반적으로 지붕이 열리는 차 중 시트가 4개인 차를 컨버터블 혹은 카브리올레라고 하고 2개인 작은 차를 로드스터라고 한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1950년대에 로드스터를 본격적으로 내놓았지만, 그 전에 특별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1934년 메르세데스 W25는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열린 아이펠 레넨(Eifel Rennen) 그랑프리에 참가했다. 그런데 경기 규정인 무게 750㎏을 1㎏ 초과해 흰색 도장이라도 벗겨내야 했다. 그래서 은빛 알루미늄 차체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달렸는데, 결국 그 대회의 우승컵을 차지해 ‘실버애로(Silver arrow, 은빛 화살)’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이 정신은 20년 뒤에 아름답게 재탄생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로드스터는 1954년 유려한 자태와 걸 윙 도어로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은 300 SL에서 시작됐다. SL은 영어로 해석하면 ‘Sport Lightweight’라는 뜻이다. 즉 가볍고 빠르다는 특성을 나타낸다. 300 SL의 유산은 지금의 SL 클래스가 물려 받았고, SL의 소형 버전으로 SLK가 있었다. 뒤에 붙은 ‘K’는 독일어로 ‘Kurz’, 즉 ‘짧은’이란 뜻이다. SLK는 최근 페이스리프트 되면서 메르세데스 벤츠의 전사적인 모델 개명 정책에 따라 SLC로 이름이 바뀌었다. 뒤의 ‘C’는 C 클래스에서 따왔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국내에 4기통 엔진을 얹은 SLC 200과 AMG SLC 43 두 종류의 SLC를 판매 중이다. 그중에서 AMG가 주물럭거린 고성능 모델, SLC 43을 시승했다. 세월은 수십 년이 흘렀지만, SLC 43은 여전히 로드스터의 본질을 담고 있었다. 빠르고 가볍고 뽐내기 좋았다. 여기에 AMG 특유의 힘과 몸놀림이 더해져 독특한 운전 재미를 안겨 주었다.
AMG는 독일에서 경주용 차의 엔진을 전문으로 만들던 회사였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차를 튜닝해 고성능 버전으로 만들다 1999년 다임러 그룹의 식구가 됐다. 현재 AMG의 손길을 거친 차는 ‘메르세데스 AMG’의 이름으로 나오고 있다.
전반적인 겉모습은 지금의 SL(R231)을 줄여놓은 느낌이다. 여기에 크롬 핀으로 장식한 그릴, ‘바이터보(BITURBO)’ 레터링, 스포일러 립, 실내의 알루미늄 카본 트림 등의 디테일이 AMG의 캐릭터를 겉으로 드러낸다. 아쉬운 건 인테리어다. GLE처럼 이름과 얼굴만 바뀌었을 뿐 풀체인지 모델이 아니라 실내는 구형 그대로다. 그렇다고 형편없다는 뜻은 아니다. 요즘 나오는 메르세데스 벤츠 신차의 더욱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생각하면 상대적인 박탈감이 들 수도 있다.
AMG가 만든 M276 V6 바이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367마력, 최대토크 53.1kg·m의 힘을 쏟아낸다. 하지만 이 괴력은 쉽게 꺼낼 수 없다. 에코, 컴포트 주행 모드에선 힘을 최대한 아낀다는 느낌이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응답이 생각만큼 시원하지 않다. 엔진에 제대로 불을 붙이려면 스포츠나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돌려야 한다.
진가는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 나온다. 두 개의 배기 플랩은 주행 모드에 따라 다른 배기음을 내는데,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선 머리 뒤에서 AMG 특유의 “빠바바바방” 소리가 연거푸 울린다. 전자식 스티어링휠 시스템도 한 템포 힘을 빼 더욱 정교하고 스포티한 조종이 가능하다. 반응도 빨라져 가속 페달을 밟는 대로 시원하게 나간다. 고삐 풀린 엔진의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차는 로데오 경기에서 흥분한 말처럼 울컥거리며 날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트랙으로 순간 이동해 차의 뒤를 날리며 마음껏 달리고 싶은 생각이 한두 번 든 게 아니다.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송풍구를 손 쪽으로 돌리지 않았으면 스티어링휠은 내 손에서 나온 땀으로 축축해졌을 것이다.
딱딱한 AMG 스포츠 서스펜션은 고속으로 달릴 때 말고는 감흥을 주지 않는다. 예전 2세대 미니 쿠퍼가 추구했던 ‘고-카트’의 느낌이다. 과속방지턱이라도 만나면 나도 모르게 허리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부드러운 승차감의 대명사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단언컨대 적어도 AMG SLC 43은 그 반대다.
기존의 7단 자동변속기엔 2단이 더 추가돼 기어비 폭이 넓어졌다. 덕분에 일반적인 주행에서 엔진회전수가 줄었다. 뜻밖에 인상적이었던 건 에코 주행모드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인 디스턴스 파일럿이었다. 고성능 로드스터에 이런 기능이 필요할까 싶었지만, 스포티한 드라이빙에 지친 심신을 잠시 달래주기에 제격이었다. 디스턴스 파일럿 속도는 110㎞/h에서 제한된다.
로드스터의 매력은 지붕을 열었을 때 정점을 찍는다. 1세대부터 전통적으로 이어온 배리오 루프는 40㎞/h 이하의 속도에서 열고 닫힌다. 개폐엔 약 20초가 걸린다. 헤드레스트 아랫부분의 에어스카프는 탑승자의 목 쪽으로 따뜻한 바람을 보내 추운 날씨에도 오픈 에어링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바람의 세기는 주행 속도에 따라 3단계로 자동으로 조절된다. 지붕을 열고 100㎞/h 내외의 속도로 달리면 들리는 건 오직 거센 바람 소리와 그윽한 배기음뿐이다. 지붕은 열고 싶을 때 열면 된다. 하늘과 바로 마주할 수 있는 건 로드스터의 특권이다.
메르세데스 AMG SLC 43의 가격은 8,970만원이다. 한눈에 봐도 멋진 디자인과 폭발적인 힘 그리고 ‘삼각별’과 ‘실버애로’에 담긴 헤리티지의 값이다. 가격이 비싸다고 한숨 쉬기엔 이르다. AMG의 손을 거치지 않은, 4기통 엔진을 얹은 SLC 200은 6,300만원이다. 이 역시 만만한 가격은 아니지만 비슷한 가격대의 독일 세단이 인기 있는 나라에서 한 번쯤 낭만적인 꿈을 꿔봐도 좋겠다.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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