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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의 불편한 시선] 현대차의 사면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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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장의 변화와 고급 브랜드 꿈꾸는 현대차의 입장
중국 자동차 시장은 이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1등이다. 물론 자동차 문화나 시장의 건전성 같은 배경이 아니라 연간 판매량에 대한 이야기다. 중국 자동차 제조사 협회(CAAM)의 발표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SUV와 승용차만 2437만대가 팔려 세계의 모든 시장을 압도한다. 픽업 트럭을 제외한 SUV와 승용차가 687만대 팔려 2위에 오른 미국의 3배가 넘고, 153만대의 우리나라에 비해 약 16배에 이른다. 2013년에 세계 1위에 오른 이후 2015년 중국 주식 시장의 붕괴로 잠깐 주춤했지만 낮은 배기량 차에 대한 세제 혜택을 이어가며 2015년 대비 약 15% 성장했다.
이는 중국 국내 회사와 SUV를 포함한 크로스오버의 약진에서 기인한다. 공장 출하를 기준으로 중국 브랜드는 1052만대가 팔려 전체 시장의 43%를 차지했다. 2016년에만 모델 체인지를 포함해 93개의 새 차가 나왔고 이는 매월 평균 8대라는 말이다. 이 중 65종이 중국 브랜드이고 47개 모델이 크로스오버를 포함한 SUV로 현재 중국 시장의 방향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수입 관세가 엄청난 중국 시장의 특성상, 수입차는 전체 판매의 5% 정도로 이 조차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고급차가 중심이다.
이곳에서 세계 고급차 브랜드들은 어떻게 살아 남아 있을까? 독일 3사 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아우디다. 1988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과감한 투자로 현지 공장을 지으며 진출했다. 가장 먼저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춰 현지화 모델을 내놓았고 2009년에 공장을 확장해 현재 생산 대수는 53만대를 넘는다. 2017년 3월 기준으로 중국 전역에 깔려 있는 판매 네트워크는 무려 470개가 넘는다. 베이징에만 23개, 상하이에 19개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차를 살 사람이 있을까 싶은 티벳 자치구에도 전시장이 있다. 전체 판매대수는 59만대로 현지 생산 모델의 비중이 거의 90%에 가까운 것도 놀라운 일이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2005년에 베이징 벤츠라는 합작사를 통해 공장을 짓고 운영을 시작했다. 이 공장은 면적만으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큰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 생산 시설로 작년 한해 32만대 넘는 차가 만들어졌다. 이는 47만2천대를 판 전체 중국 판매 중 2/3을 차지할 정도로 비율이 높고, 여기서 나온 E 클래스와 C 클래스, GLA와 GLC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덕분에 현지 생산 모델을 기준으로 할 때 2015년 대비 28%, 판매 기준으로 27%라는, 프리미엄 브랜드 중에 가장 높은 성장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BMW는 이 두 회사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31만대를 생산하지만 전체 판매는 51만6천대로 벤츠보다 높다. 그럼에도 현지 모델인 롱 휠베이스 5시리즈가 14만3천대가 팔리며 13만5천대가 팔린 아우디 A6 L을 젖히고 프리미엄 브랜드 중 가장 많이 팔린 차가 되었다.
여기에 작년부터 현지 생산한 차를 판매하기 시작한 재규어 랜드로버가 가세해 고급차 시장은 점점 더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5644대를 공장에서 내보낸 재규어의 숫자는 역시 처음으로 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어큐라의 6842대보다 낮은 것으로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무려 5만1천대가 넘게 생산된 랜드로버 덕분에 새로 지은 중국 공장은 한숨을 돌렸을 것이다. 이는 2016년 중국에서 새로 생산을 시작한 르노의 3만대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놀랄만한 일이다.
미국 브랜드인 캐딜락의 성장은 말 그대로 엄청나다. 현지 생산 대수가 2015년의 5만3천대에서 2016년 11만1천대로 두 배 넘게 뛰었고, SUV의 붐에 따라 SRX의 반응이 좋아 렉서스를 제치고 럭셔리 브랜드 5위로 올라섰다. 올해를 기점으로 미국보다 중국에서 더 많이 팔릴 것이라는 예측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현대자동차의 생산 대수는 2015년 전체 2위에서 2016년 5위로 떨어졌다. 생산량은 7.4%가 늘어났음에도 순위가 밀린 것은 뷰익이나 혼다 같이 현지 생산이 크게 늘어난 회사들 때문이다. 다행히 작년 3월에 새로 런칭한 엘란트라(아반떼)가 13만대 넘게 팔려 새로 데뷔한 차 중 판매 1위에 올랐고, 10월 창저우 공장의 완공과 함께 판매를 시작한 새 베르나도 잘 팔리고 있다. 문제는 시장이 커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둔화된 판매 성장율이다. 과거 복제품 수준이던 현지 브랜드들이 차츰 완성도 높은 차들을 내놓으면서 초기 현대차가 가지고 있던 가치, ‘적당한 값에 고급스럽다’는 가치가 점점 더 희미해진 것이 원인이다. 거기에 싼 값을 무기로 내세운 중국 회사들과 이에 맞춰 가격 인하를 시작한 폭스바겐 등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이럴 때는 대당 수익성이 좋은 고급차를 내놓는 것이 좋은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현대차 만을 보더라도 신구형을 합쳐 아반떼가 41만대 생산되는 동안 쏘나타는 하이브리드를 합쳐도 4만2천대 밖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20만 위안쯤이면 폭스바겐 파사트가 19만 위안이고 동급의 중국 브랜드 세단들은 13만 위안 수준으로 가격 경쟁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거기다 위에 설명한대로 높은 관세 때문에 고급차를 수입해 판매하는 것으로는 현지에서 생산한 차들과 경쟁이 불가능하다.
물론 현대차 그룹의 중국내 생산 능력은 넉넉하다. 작년 말 중국에서 4번째로 창저우 공장이 완공되어 현대차는 141만대, 기아차 89만대를 합치면 총 230만대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 충칭 공장이 확장되면 최대 270만대의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 현재 114만대 수준인 베이징 현대의 생산량을 생각해볼 때 충분한 여유가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그랜저 같은 현대차 브랜드의 고급 모델을 만들어 팔거나, 아예 제네시스 브랜드를 별도로 런칭하기에는 위험이 크다. 현대차의 쇼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구입할 수 있는 차의 가격대를 훌쩍 넘어서는데다 영업 사원들이 그런 차를 팔아본 경험도 없기에 판매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 이는 제네시스 모델에도 마찬가지다.
제네시스 브랜드 모델들은 현지에서 생산하는 것도 어렵다. 후륜 구동 대형차 중심의 현재 라인업을 중소형차를 주로 만들어온 현지 공장을 개조해 생산하려면 비용이 크게 올라간다. 브랜드를 알리고 마케팅하는 비용은 별도로 하고, 현대자동차와 분리된 쇼룸을 포함한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비용도 걸림돌이다. 아직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독립 쇼룸 운영을 중국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단순히 새 차를 판매하는 것과는 완전 별개의 문제다.
또 현재의 제네시스 라인업에는 중국에서 가장 크게 성장하는 SUV를 비롯해 라인업이 빈약하다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한다. 물론 어차피 현대차 브랜드로 판매하지 못할 차들이라면, 그랜저와 아슬란을 비롯해 맥스크루즈까지 현존하는 대형차들을 리배징과 상품성 개선을 통해 현지에서 생산, 중국형 제네시스 브랜드로 내놓을 수도 있다. 시간도 없고 그만큼 투자할 여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이것도 쉽게 하기 어렵다. 만약 고급차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이미 레드 오션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독일 3사는 10년 이상 현지 생산과 딜러를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가 있고, 캐딜락과 링컨 같은 미국 브랜드조차 발 빠르게 시장에 진입해 지금의 성공을 더 키울 것이기 때문이다.
쓰다 보니 중국 시장 안의 현대차는 말 그대로 사면초가나 다름없다. 물론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시장이어서 예측이 더 어려울 것이고, 현재의 정치 외교적 환경까지 힘든 상황이라 만만치 않을 것이다. 머물러 있는 판매, 치고 올라오는 중국 경쟁사 같은 현실적인 문제와 함께 미래에 대한 전략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더 걱정스럽다. 조금 이른 투자와 안목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물러날 수 없는 것이 중국 시장이고 그 중에서도 고급차 시장이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지 않았는가. 좋은 상품은 어디에서도 인정 받기 마련이다. 차분히 정리한 전략으로 중국에서도 제 2의 도약을 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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