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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어요. 수동을 타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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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담당 기자가 되기 전, 스스로 운전을 ‘퍽’ 잘한다고 생각했다. 면허를 취득하자마자 이튿날부터 혼자 운전을 시작했고 초보 운전자가 어려워한다는 차선 변경과 주차도 문제없었다. 경차 마티즈로 고속도로를 누비며 소위 ‘칼치기’라는 다소 난폭한 차선 변경도 서슴지 않았다. 힘이 부족한 경차를 요령 있게 운전하며 제동을 덜하고 요리조리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며 속도를 유지하고 달렸다. 거침없이 가속할 뿐, 자동차의 움직임과 제동력이나 한계를 파악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그렇다. 무식했고, 그래서 용감했다.
단지 ‘자동차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자동차 기자’가 됐지만 이후로도 얼마나 무지하고 무모했는지를 매일매일 재확인하는 일이 반복됐다. 자동차도 운전 방법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학사는 전공에 대해 모든 걸 안다고 착각하고 석사는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걸 깨우치며, 박사는 단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알게 되는 과정’이라고 했던가. 자동차 기자로 일하는 것은 마치 석사과정 같았다. 이때부터였다. ‘운전 잘하냐’는 질문에 ‘네’가 아닌, ‘좋아해요’로 대답하기 시작했던 건.
어느덧 자동차 기자로 일한 지 3년, 이제 차 좀 안다고 자신했다. 자동차의 동력 전달 원리나 현가장치, 어떤 부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눈에 보이는 줄 알았다. 그러나 책으로 배운 이론은 그저 지식일 뿐, 경험을 통해 ‘아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석사를 취득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고작 한 학기 과정을 마친 수준도 안 됐다. 무식해서, 스스로 얼마나 모르는지도 몰랐다.
투스카니와 함께한 1주 / 빨간불과 언덕 공포증
Mission 시동 꺼뜨리지 않기
아마추어 레이스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것도 수동 변속기 모델만 출전 가능한 ‘원메이크’, 더군다나 ‘스프린트’다. 단 한 번도 혼자 수동 변속기가 달린 자동차로 도로를 달린 적도 없는 내가. 어쩔 수 없이 수동 변속기와 친해지기 위해 연습용 투스카니를 샀다. ([모터스포츠 롱텀] 5. 연습용 중고차 구매) 운전 연수? 그런 건 없다. 투스카니를 사자마자 혼자 집으로 끌고 왔다. 멈추고 출발할 때마다 계속 시동을 다시 켜면서.
수학 시간에 배운 기어의 원리를 잘 안다. 엔진과 변속기를 이어주는 클러치를 떼면 동력 전달이 끊어진다. 분명 작동 원리는 완벽하게 아는데 대체 시동은 왜 꺼지는 걸까? 기어 변경은 할 때마다 불쌍한 차는 사래 들린 천식환자처럼 울컥거리는지 안타깝다. 원인은 알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해야 조절이 되는지 도저히 모르겠더라.
일단 책과 인터넷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파워트레인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부품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다시 들여다보니 사실 아는 게 아니라 그저 외우고 있을 뿐이었다. 이론적 지식이 수동 변속기를 조작해 본 경험과 맞물려 드디어 이해되기 시작했다. 분명 글과 그림만으로 알던 원리가 몸으로 체득한 경험과 맞물려 깨달음이 되니 다른 세상 이야기가 펼쳐졌다.
투스카니와 함께한 2주 / 까칠한 팀장 조수석에 탑승하다
Mission 클러치 태우지 않고 출발하기
파워트레인도 좀 알겠고, 이제 혼자서 시동을 꺼트리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생각했을 때 즈음, 까칠한 팀장을 조수석에 태우고 서울에서 용인까지 왕복할 일이 생겼다. 타자마자 던진 팀장의 한 마디로 순식간에 내 수동 운전 실력은 초기화됐다.
“너는 왜 클러치를 다 태워 먹냐?”
내가 터득한 방법은 클러치 페달을 밟은 상태에서 엔진 회전수를 올려 페달을 떼는, 그래서 시동은 안 꺼지도록 하는 방식이었던 거다. 클러치 페달에서 발을 떼면서 가속 페달을 슬쩍 밟으면 꺼지고, 세게 밟으면 태운다고 구박한다. 답답해서 말대꾸했더니, ‘클러치 미트 포인트도 못 찾냐’냐고 난리다. 아니, 알겠는데, ‘아, 이쯤이군’ 하고 가속 페달을 밟으면 이미 꺼진 후인데 어쩌란 말인가.
결국, 서울, 용인을 왕복하며 시동을 18번 꺼뜨렸다. 굴욕적인 경험이었다. 나중엔 어이없어 웃음이 다 났다. 지난 일주일 동안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인천에서 서울역을 왕복하는 출퇴근길 상습 정체 구간도 시동 꺼짐 없이 잘 다니고 있었는데. 옆에서 18번을 굳이 세고 있는 선배는 얼마나 얄밉던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넌 왜 기어를 안 바꾸냐?”
팀장의 말을 듣고 나니, 그제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레이크를 밟고 있거나, 스티어링 휠을 돌리고 있을 때, 혹은 평지가 아닌 언덕이나 내리막길에서는 기어를 바꾸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언덕에서 속도는 줄어드는데, 기어 단수를 낮추지 않고 버티고 있으니 시동이 꺼지지. 원리를 생각하면 굉장히 당연한 일인데.
“야, 좀, 이거 울컥거리는 거, 짜증나, 어우, 말 타냐?”
기어 변경 시 회전수를 맞춰 동력을 잇고 최대한 매끄럽게 기어를 변속해야 한다는 것 역시 모르지 않았다. 긴장해서인지, 평소보다 더 안되는 걸 어쩌나! 정체구간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시동 걸린 걸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데 부드러운 변속이라니.
총체적 난국이다. 팀장의 잔소리에 상해버린 내 자존심도 문제였지만, 이 상태로 자동차 경주에 나간다니 팀장은 얼마나 황망할까! 팀장의 지적에 섞인 조언을 바탕으로 집중적으로 연습에 돌입했다.
때마침 아베오 경주차를 운전해볼 기회가 생겼다. 투스카니가 아닌 다른 수동 변속기가 달린 자동차를 운전해보는 건 처음이다. 인천의 한적한 도로에서 슈퍼챌린지에 출전하는 아베오를 타고 1km 정도 곧게 달려봤는데 불과 5분 남짓한 시간에 내 차와는 감각이 완전히 달랐다. 특히 클러치 감각이 생소했는데 투스카니는 까탈스럽지만 어떤 상태인지 감은 왔는데, 아베오는 도저히 모르겠다. 클러치가 맞물리는 순간도, 소리로 판단하던 엔진 회전수도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속도로 보면 변속해야할 듯한데 엔진 회전수는 높지 않고, 기어를 바꾸면 느낌이 영 이상하다. 아베오는 2단 구간이 유난히 길다. 어찌 되었든 시동만큼은 안 꺼진다. ‘어어어, 내가 시동을 또 꺼트리겠군’하는 순간에도 엔진은 여전히 살아 있다. 수동 변속기에 이제는 좀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다시 또 초기화다.
좌절할 시간이 없다. 팀장에게 주말에 집중적으로 연습할 거라고, 연습하면 금방 실력이 늘어날 거라고 큰소리 탕탕 쳤으니. 아베오는 잊고 일단 투스카니에 제대로 적응해야겠다. 시동 꺼트리지 않기, 그리고 부드럽게 변속하기!
집 근처 인천항 주변에는 밤이 되면 텅 비어있는 8-10차선 도로가 즐비하다. 양옆으로 트레일러가 주르륵 줄 맞춰 늘어선, 왠지 모르게 박력 있는 풍경 속에서 투스카니 수동 연습을 시작했다. 정지했다가 출발하기만 200번 정도 했나? 평지뿐만 아니라 오르막 구간에서 출발하는 연습도 병행했다. 클러치 페달에서 발을 떼는 만큼 미세하게 가속 페달을 밟아나가는 것이 핵심인데, 이게 참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머리로 ‘이쯤인가’하고 생각하면 오히려 늦는데 그냥 생각 없이 왼발과 오른발의 박자를 맞춰 반응하면 착착 된다. ‘오, 이거군!’
며칠이 지난 후,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네 차가 시동이 잘 꺼지도록 세팅되어 있긴 해” (울컥)
투스카니와 함께한 3주 / 시동이 꺼질거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Mission 회전수 맞춰가며 기어를 자유자재로 변경하기
내가 출전하는 경주 때문인지 지난주엔가 팀장이 “아베오 경주차를 빌려올 테니 일단 내 앞에서 타봐”라고 말하기는 했다. 그런데 이리도 빠르게 닥쳐올 줄이야. 당장 월요일부터 아베오를 빌려 놨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불과 며칠 전 투스카니와 달라도 너무 다른 아베오를 타보고 좌절했는데, 바로 그 아베오를 타보란다. 열심히 연습한 투스카니는 어쩌고.
이번 차는 핸즈 모터스포츠 페스티벌 아베오 전에 참가한 경주차다. 무려 작년 챔피언이 탄 차라고 한다. 이번에는 촬영도 겸해 30분 정도 타볼 수 있었다.
“시동은 안 꺼트리네”
내가 잘한 게 아니라, 아베오가 시동이 잘 안 꺼질 뿐이다. 오히려 문제는 수동 변속기 달린 세 대의 아베오를 타봤지만, 클러치 감각을 영 모르겠다는 거다. 그래서 자꾸만 변속할 때 망설이게 된다. 아베오는 나의 미숙함을 티 내지 않고 기어를 잘 바꾸고 달려나간다. 단지 나만 혼자 찜찜할 뿐.
“어때? 탈만해? 클러치 미트 포인트 알겠어?”
“음, 변속 감각은 잘 모르겠는데 투스카니보다 운전은 쉬울 거 같은데요. 어쨌든 시동은 안 꺼지니까.”
“얼씨구…”
운전이 쉬울 거 같다는 건, 그냥 공도에서 슬슬 다닐 때 얘기다. 시동 유지하고 부드럽게 기어 바꾸는 걸 연습해왔는데, 아베오는 이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투스카니에 비하면 막 운전해도 차가 부드럽게 완화해준다고 느껴질 정도다. 어쨌든 ‘오늘은 딱히 욕먹을 일은 없겠구나’하고 안심하고 있는데, 신호등 없는 고속화 도로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팀장의 목소리.
“3단, 4단, 3단, 2단, 3단, 4단, 2단”
“네?”
“아오, 그게 아니지, 저기 세워봐, 내려!”
갑자기 기어 단 수를 바꾸라고 한다. ‘왜지? 뭐지? 지금 잘 달리고 있는 거 같은데? 타코메타 바늘 위치는 적절하고 속도랑 기어 단수랑 맞는 거 같은데? 이번엔 뭐가 또 문제야… 하아.’
“봐, 그냥 변속하라는 게 아니야. 기어 단수를 낮추려고 클러치 밟는 순간 가속 페달을 같이 밟아 회전수를 맞추란 말이야.”
“클러치 밟은 채로 가속페달 밟는 거 아니라면서요?”
“…”
무식하면 용감하다. 진짜. 하지만 팀장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왜 그런지 설명해주기보다 일단 그렇게 하란다. ‘그래, 못할 것도 없지.’
‘우우우우웅- 컥컥’
“얼씨구”
“아니, 이게 될 거 같은데...”
“넌 이것도 못하는 애가 무슨 레이스를 한다고....”
아니 그러니까 클러치 페달을 밟고 가속 페달을 톡 밟아 회전수를 올리고 기어를 내리고… ‘@#@^%&^%#$! … 그런데 대체 이걸 왜 하는 건지. 잘 달리고 있는데 굳이 왜 기어를 바꿔야 하고 그걸 자연스럽게 못 해서 욕을 먹어야 하는 거야!!!‘
폭풍 같은 아베오 경주차 주행이 정신없이 끝났다. 이제 겨우 월요일. 주말까지 기다렸다가 연습할 수는 없었다. 당장 해야 했다. 결국, 퇴근하자마자 투스카니를 몰고 집 근처 신호등도 없는 빈 도로로 향했다.
일단 4단에 맞게 속도를 올리고, 클러치 페달 가속 페달을 동시에 밟으면서 기어를 3단으로 낮추고 다시 가속 페달을!
‘우웅우웅- 우우우우웅-’
“아! 이거구나! 회전수를 맞추는 건 속도를 더 높이기 위해서였어!”
기어를 한 단 낮출 때 가속 페달을 밟아 회전수를 올려주면서 변속하면 싹 맞물리며 ‘훅’ 치고 나가는 시원한 가속이라니. 경기 중에 속도를 줄였다가 가속하며 코너를 탈출할 때 쓰라고 알려준 거라는데, 그냥 평지에서 그렇게 하다 보면 자꾸 히죽히죽 웃음만 나온다. 이거 진짜, 신난다! 내가 왜 소심하고 부드럽게만 탄 거지? 변속이 탁탁 맞아들어가면서 우렁찬 엔진 소리와 함께 가속할 때의 카타르시스란!
이 정도면 초보 단계는 간신히 벗어난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지금의 나는 스프린트 레이스에 출전한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엉망이다. 올해 초 레이스에 참전하겠다고 선언할 때는 오히려 내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조차 몰랐기에 무모하게 결심할 수 있던 거다.
수동 운전을 하면서 자동 변속기가 달린 차를 탈 때는 알 수 없던 것들을 깨닫고 있다. 조향과 가감속, 차체의 움직임만 살펴봤던 자동 변속기 모델과는 차원이 다르다. 부끄럽지만 다른 선배들의 ‘기어비가 길다 짧다, 변속이 느리다, 기어 몇 단이 어떻다’ 이런 표현들을 제대로 이해 못 했던 게 사실이다. 수동 운전을 해보니 이제 조금 알겠다. 이론적으로 아는 것과 경험을 한 것은 분명 다른 법이다. 스스로의 재미를 떠나 시승기를 쓰는 기자로서 진작 수동 변속기로 운전해봤어야 했다는 후회마저 든다.
지난 일 계속 후회해봐야 되돌릴 방법은 없다. 앞으로는 덜 부끄럽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볼 작정이다. 투스카니와 함께 서킷도 갈 거다. 고령의 투스카니가 못 버티고 퍼져버릴지언정.
박혜연 기자 heye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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