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 개선 어떻게…

입력
2017.03.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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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과목 도입 계획 제자리 걸음

응시 자격 제한도 부정적 목소리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을 치른 후 시험장을 빠져 나오는 응시자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을 치른 후 시험장을 빠져 나오는 응시자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확정된 것 없습니다. 의견 수렴을 더 해야 합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29일 2018년 9급 공무원 시험부터 영역별 ‘전문과목’을 도입하기로 한 개선 계획에 대해 진행된 게 없다고 밝혔다. 인사처는 지난해 1월 청와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신년 업무보고를 하며 9급 중 세무직(세법·회계학 중 1개) 일반행정직(행정법총론·행정학개론 중 1개) 교육행정직(교육학개론·행정법총론 중 1개) 지원자들에게 해당 분야 전문과목을 필수로 도입하겠다고 했다. 시행 시기가 내년으로 다가왔지만 정부가 손도 못 대는 것은 공시족들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해마다 약 57만 명이 모든 걸 걸고 시험에 응시하는 형편이라 시험제도 변경을 검토 중이라는 말만 나와도 파장이 만만치 않다”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이미 수 차례 공무원 시험제도에 손을 댔다. 하지만 그 때마다 혼란이 이어졌고, 공시족은 계속 늘었다.

전문과목 도입에 앞선 2013년 개편에선 고졸 인력을 활용하자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응시 과목에 사회 과학 수학을 도입했다. 시행 첫 해에 고졸 지원자는 전년도(2,174명)보다 2.2배나 늘어 4,749명에 달했다. 고졸 합격자는 전년도의 8명보다 3.6배 늘어난 29명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합격한 공무원들이 해당 분야에 대한 최소한의 전문성조차 갖추지 못한다는 문제가 계속 지적됐다. 실제로 2015년 9급 국가공무원 세무직 최종 합격자의 75%가 세법이나 회계학을 보지 않았다. 게다가 고졸 이하의 합격률이 2013년 2%에서 2014년 1.5%, 2015년 1.4%로 줄었다. 수능과 동일한 과목을 보게 함으로써 공무원 시험 문턱이 지나치게 낮아져 오히려 고졸 응시자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말도 나왔다.

응시 자격을 제한해 공시생을 줄여 보자는 목소리도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취업빙하기’ 시절부터 1급 일반직 공무원(한국의 9급 공무원) 응시 자격을 고졸은 졸업 후 2년 이내, 대졸은 30세 미만, 일반인은 40세 미만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정부는 부정적이다. 수 년의 논란을 거쳐 2009년 9급 공무원 시험부터 연령 제한(18~32세)을 없앴는데, 다시 자격을 제한하면 반발이 거세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과거 나이 제한은 국가인권위원회에 민원이 제기되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많았다.

그럼에도 공무원 시험에 과도하게 쏠린 사회적 자원을 적절히 분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7급 공무원 시험의 영어는 공인영어시험 점수로 대체했다. 일반 기업 입사시험과 공무원 시험 과목의 교집합을 늘려, 공시족들이 한 우물만 파는 상황에서 벗어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인사처 관계자는 “첫 직장을 얻는 나이가 갈수록 높아지고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도 커지고 있다”며 “공공 영역과 민간 영역이 함께 인력 채용, 국가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장기적으로는 획일적인 지필고사 대신 미국의 실적 위주로 채용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정부 채용 사이트(USAJOBS.GOV)에 채용 공고를 내면 응시자가 자신의 이력서를 제출하고, 해당 기관은 서류 심사와 면접을 통해 뽑는다. 채용 이후 직급과 관계없이 누구나 1년 동안 시보로 일하며 검증을 받고, 성과가 좋지 않으면 3개월 재교육 후 해고가 가능하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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