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글로벌 Biz 리더] 손님보다 직원 먼저 배려했더니… 줄 서서 먹는 ‘쉑쉑버거’ 탄생

입력
2017.03.17 16:34
구독

식도락 여행 즐기던 부모 밑에서

어린시절부터 음식에 큰 관심

억대 연봉 직장 과감하게 사표

고급스러운 동네 식당 차려

여름 한 철 햄버거 인기에

쉐이크쉑 간판으로 정식 매장

직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 만들어

대니 마이어 USHG 회장. SPC그룹 제공
대니 마이어 USHG 회장. SPC그룹 제공

어느 찌는 듯한 여름 날, 미국 외식 기업 ‘유니언스퀘어호스피탈리티그룹(USHG)’의 대니 마이어 회장이 운영하는 한 식당에서 갑자기 에어컨이 고장 났다. 하필이면 가장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 직전이었다. 수리하기도 어려웠다. 점심 식사를 예약한 손님만 100여명. 실내온도는 30도에 달하고,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찜통 더위는 기승을 부렸다.

사장이나 종업원 모두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망연자실 할 법도 한 그때 한 직원(매니저)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그는 우선 밖으로 나가 선풍기 2개를 샀다. 비좁은 사무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전화 예약을 받는 직원 2명에게 이를 틀어줬다. 예약 담당 직원들이 친절하게 전화를 받을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음엔 근처 다른 가게에 가서 전지로 작동하는 미니 선풍기를 몽땅 사왔다. 그는 에어컨 고장으로 찜통이 된 식당에 있던 손님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미니 선풍기를 선물로 줬다. 손님들은 짜증을 내기 보단 오히려 선물을 받아 즐거워했다.

27세에 첫 식당 ‘유니온스퀘어카페’를 열어 현재는 10여개 외식업체 브랜드를 경영하는 뉴욕 외식업계의‘거물’ 대니 마이어 회장이 자신의 성공담을 담아 펴낸 책 <세팅 더 테이블>에 소개된 이 일화는 그의 경영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개는 손님에게 먼저 선풍기를 제공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직원은 다른 동료 직원을 우선적으로 배려했다. 마이어 회장이 평소 “손님 보다 직원을 먼저 배려하면, 직원들도 손님을 배려한다”고 누누이 강조한 것을 실천으로 옮긴 것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그는 미국식 햄버거와 핫도그를 판매하는 USHG의 대표 외식 브랜드 업체 ‘쉐이크쉑(Shakeshack)’의 한국 파트너사인 SPC그룹이 마련한 간담회에서도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따뜻한 배려는 USHG와 쉐이크쉑의 핵심 철학”이라며 “직원에 대한 배려가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손님에 대한 환대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학창시절 식도락이 취미인 소년

대니 마이어 회장은 1958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프린스턴대)와 외할아버지(예일대)가 모두 손꼽히는 명문대를 나온 유복한 엘리트 집안이었다. 프린스턴대를 나와 여행사와 호텔을 운영한 아버지는 여행을 자주 다녔다. 그의 아버지는 매년 적어도 두 차례 어머니와 단둘이 휴가를 즐겼고, 마이어 회장을 비롯한 세 자녀를 데리고도 매년 세 차례 가족 여행을 하며 지역의 맛집들을 섭렵했다.

식도락 여행을 즐기는 부모는 그에게 큰 영향을 줬다. 어머니는 여행 중에 억지로라도 그에게 일기를 쓰게 했는데, 일기에 쓴 내용은 유명한 박물관이나 유서 깊은 성당에 대한 이야기 보단 주로 음식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는 성장기 사교생활에서도 음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고교 1학년 때 자신을 포함해 남학생이 2명뿐인 가정시간 요리실습에 참여하면서 요리에 재미를 붙여갔다. 친구들과 축구ㆍ테니스ㆍ하키를 즐기면서도, 연인과 데이트를 할 때도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점을 찾아 다녔다. 아버지 역시 그를 고급 음식점에 데려가 직접 포도주의 맛을 가르쳐줬고 그는 이를 홀짝홀짝 마시며 와인 애호가로 성장했다.

학창 시절을 신나게 보낸 대신 우수했던 학업 성적은 뚝뚝 떨어졌다. 대학 입시에서도 그가 지원했던 명문 프린스턴대와 브라운대에는 낙방했고, 대기자 명단에 올랐던 코네티컷주 트리니티 칼리지(정치학 전공)에 간신히 합격할 수 있었다.

하마터면 대학에 못 갈 뻔했던 그는 1976년 고교 졸업 후 집을 떠나 살게 되면서 정신을 차렸다. 첫 학기에 거의 전 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을 정도였다. 훗날 그는 “대학 입시가 내 안에 잠들었던 경쟁심을 흔들어 깨웠다”고 회고했다.

억대 연봉 내던지고 식당 창업

1980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이듬해 1월 외할아버지가 투자자로 참여한 중소기업 ‘체크포인트’에 입사했다. 도둑 침입 방지를 위한 전자 태그와 압력 감지 라벨을 제조ㆍ판매하는 이 회사에서 그는 연봉 1만6,500달러를 받으며 판매팀을 보조하는 특별사업부장으로 일했다. 1년 만에 뉴욕 지구 전체를 담당하는 영업직을 맡은 그는 뉴욕의 약국, 식품점, 옷가게 사장과 그 일가 친척을 알게 될 정도로 구석구석 누비고 다니면서 체크포인트의 ‘최고 영업사원’이 됐다. 그는 시간표를 짜서 부지런히 뛰어다닌 덕분에 정해진 목표를 초과 달성, 3년 간 체크포인트의 최고 영업사원 자리를 수성했다. 연봉도 본봉과 성과급을 합쳐 최고 12만5,000달러(1억3,000만원)를 받았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꿀 억대 연봉의 신화를 20대 젊은 영업사원이 만든 것이다.

1983년 하반기 그는 영국 런던에 지점을 여는 새로운 임무를 맡았을 때 고민에 빠졌다. 해외 근무는 매력적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그의 꿈은 도둑을 잡는 일이 아니었다. 사업을 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보고 자란 그는 스스로 계획하고 일하는 즐거움을 찾고 싶었고 자신의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그는 “평생 할 수 있는 뭔가 다른 일을 할 때가 됐다”며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체크포인트를 그만둔 그는 전공을 살려 로스쿨 지원을 준비하기 위해 사설학원인‘스탠리 카플란’에 등록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의 가슴을 뛰게 하지는 못했다. 로스쿨 입학시험(LSAT)을 치르기 전날 친척들과 식사를 하던 그는 “법률가가 될 마음도 없는 내가 왜 LSAT를 치르는 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듯 혼잣말을 할 정도였다. 그 때 외삼촌의 조언이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이제 네가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하지 않겠니. 너는 어릴 때부터 입만 열면 온통 음식과 레스토랑 이야기뿐이었잖아. 레스토랑을 개업하는 것은 어떠니?” 정곡을 찌른 외삼촌의 제안에 그는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배려’ 전략으로 뉴욕 외식업계 황제 등극

마이어는 뉴욕의 한 식당에서 8개월간 부지배인 겸 주방 보조로 일하고, 100일간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유럽 맛집을 순례한 이후 1985년 첫 식당 ‘유니언 스퀘어 카페’를 차렸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배려와 고급 음식을 앞세운 ‘고급스러운 동네 식당’을 표방했다.

마이어의 전략은 적중해 9년 뒤에는 고급스런 프랑스 음식점을 냈고, 이후 재즈바 레스토랑 ‘재즈 스탠다드’, 바비큐 음식점 ‘블루 스모크’ 등 새 음식점을 잇따라 선보였다. 특히 2001년 뉴욕 메디슨스퀘어 공원 앞에 문을 연 1960년대 미 중서부에서 유행했던 햄버거와 시카고식 핫도그 매점은 큰 인기를 끌었다. 매년 여름마다 한시적으로 열었던 이 매점이 성황을 이루자 그는 2004년 ‘쉐이크쉑’이라는 간판을 걸고 정식 매장을 세웠다. 쉐이크쉑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13개국에 120여개 매장이 있을 정도로 크게 성공했다. 2015년엔 뉴욕 증시에도 상장돼 현재 시가총액이 약 13억 달러(약 1조4,700억원)에 이른다. 개점하는 음식점 마다 대 히트를 치면서‘뉴욕 외식업계의 황제’로 불린 그는 2015년 미국 타임지가 발표한‘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다.

그는 그룹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손님에 대한 배려’(Hospitality)를 중요시 한다. 배려는 서비스와 다르다고 그는 강조한다. “서비스는 어떤 상품을 기술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면, 배려는 그 상품을 전달받는 사람의 느낌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서비스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그 기준을 정하는 반면, 배려는 손님의 입장에서 모든 감각을 동원해 귀 기울이고 계속해서 생각하며 호의적으로 적절한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비스와 배려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성공의 기본 조건이다.”

그가 경영하던 음식점에 온 손님이 택시에 휴대전화와 지갑을 내린 것을 알고 어쩔 줄 몰라 할 때 그가 대처했던 방법이 대표적인 예다. 직원이 “돈은 나중에 내도 되니까 걱정 하지 말고 식사부터 하시라”고 손님을 안심시킨 뒤 마이어와 직원은 예약받을 때 받아둔 손님 휴대폰 번호로 계속 전화를 걸었다. 택시 운전사와 연결되자 직원이 직접 택시를 타고가 휴대전화와 지갑을 받아 손님에게 전달했다. 그는 “왕복 택시비 31달러를 썼지만, 그 손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한 칭찬은 우리가 했던 수고의 백 배가 넘게 가치가 있다”고 했다.

손님 보다 직원 배려가 먼저

외식업은 우리나라에서도 감정노동이나 업주의 노동착취가 문제될 만큼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드는 대표적인 서비스업종이다. 이처럼 까다로운 서비스 업종에서 직원들이 손님들을 감동시킬 만큼 배려할 수 있는 건 쉽지 않다. 그 원동력 역시 직원들에 대한 배려였다.

마이어 USHG 회장은 고객보다 직원을 먼저 배려하고, 직원들이 서로를 배려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직원을 손님 보다 우선하는 이유는 손님에게서 꾸준히 찬사를 듣고, 단골손님을 확보하려면 먼저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해서다. 직원들이 함께 일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편안함을 느껴야 직원도 배려할 줄 안다.”

그는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실행하기 어려울 수 있는 이 같은 신념을 몸소 실천했다. 우선 USHG 직원들의 임금 수준은 다른 음식점보다 높다. 예컨대 쉐이크쉑의 매장 종업원 최저임금은 시간당 12.50달러로 미국 전체 평균(시간당 9.50달러)은 물론 다른 체인점 평균(시간당 12달러)에 비해 높다.

USHG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표 브랜드 기업인 쉐이크쉑이 2015년 1월 뉴욕 증시에 상장(IPO)될 당시 회사는 정규직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눠주고, 비정규직 직원들에게도 특가에 주식을 살 수 있도록 했다. 또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이용시간을 고려해 매장마다 직원들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영업 마감시간을 정했다. 이런 배려로 직원들의 이직률이 경쟁업체에 비해 낮고, 최상의 서비스가 가능했다.

그는 “레스토랑업계 이직률이 매우 높은데도 헌신적인 직원들을 확보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직장에서 가장 원하는 것이 바로 존중 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라며 “직원들과 주기적으로 회의를 하며 사업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받고, 건의된 문제의 개선점을 찾는 등 직원들에게 배려를 실천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찾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