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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세월호의 꽃들은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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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러했겠지만 나 역시 초조한 마음으로 탄핵선고를 지켜보았다. 오징어를 볶아 늦은 아침 식탁을 차린 채였지만 갓 지은 밥은 잘 넘어가지 않았다. 박근혜는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고 나는 몇 술 뜨지 않은 밥상을 그대로 둔 채 작업방으로 돌아왔다. 커피 한 잔을 내리는데, 왜 서러운가 생각했다. 나는 탄핵을 찬성하는 77% 국민 중의 하나인데 등 깊숙이 타고 내리는 서러움의 정체가 무엇인가 싶었다. 급기야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헌법재판소의 선고문은 하나도 틀린 말이 없다. 대통령은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가 있지만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라는 말도 맞다. 세월호의 꽃들은 쓸쓸해서 어쩌나. 여전히 뒤에 선 채 말을 잃고 선 부모들은 외로워서 어쩌나. 국가가, 동네가, 어르신들이 모두 나서 내 아이를 함께 키워주는 삶을 나는 꿈꾸어 왔나. 나는 그토록 대책 없는 로맨티스트였나. 이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는 어린 아기를 나는 어쩌나. 내 새끼는 결국 내가 알아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그토록 서러워진 모양이었다. 세월호 구조가 한창이던 때, 나는 택시를 탔다. 기사님은 자꾸 길을 잘못 들었고 나에게 사과를 했다. “조카가 세월호에 탔어요. 아직 못 찾았어요”라고 말했다. 팽목항에서 막 돌아와 운전대를 잡은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내미는 일 정도였다. “꼭 돌아올 거예요.” 겨우 한 마디 건넸을 때 기사님이 아주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못 돌아올 겁니다. 아이들은... 아무도요.” 그의 눈에 서렸던 불신이 서글퍼 나는 더 아무 말하지 못했다. 그 소년의 이름을 아직 기억한다. 그 소년의 부모도 오늘 탄핵선고문을 다 들었겠지. 알아서 지켜주지 못해 서러웠겠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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