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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인 칼럼] 멕시코 1910, 대한민국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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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체제 공고화가 혁신 가로막아
경제권력 유지로 불완전 혁명 불러
‘촛불’이 정치권력 교체로 끝나서야
1910년 대통령 선거 부정으로 촉발된 멕시코 혁명은, 35년간 멕시코를 통치했던 디아스(Díaz)의 독재에 저항한 멕시코의 엘리트와 중산층, 대지주의 토지(hacienda lands) 소유로 몰락한 농민들, 산업화 초기에 억압받던 노동자들이 합심해 전국적으로 일으킨 혁명이었다. 멕시코 혁명은 평화롭게 진행된 명예혁명은 아니었다. 무력 충돌과 유혈을 동반한 혁명이었다. 1911년에 디아스가 축출되고, 대지주 출신인 마데로(Madero)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마데로는 보수층과 혁명세력 모두로부터 지지를 잃기 시작했고, 1913년에는 반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멕시코는 1915년까지 내전에 빠지고 제헌주의자(Constitutionalist)이자 대지주였던 카란사(Carranza)가 정권을 잡게 된다.
마침내 1917년에 멕시코 헌법이 제정되었는데, 이 헌법은 멕시코 혁명에서 요구된 개혁조치들을 포괄했다. 특히 헌법 제27조는 정부가 대지주 소유의 토지를 몰수해 농민들에게 나눠주고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을 국유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또한 제123조에서는 하루 8시간 노동, 파업권, 여성에 대한 보수 차별 금지, 아동노동 금지와 같은 노동 개혁을 명문화했다. 이런 진보적ㆍ개혁적 헌법 제정과 더불어 1929년에는 제도혁명당(Institutional Revolutionary Party)이 창당돼 여러 혁명세력 간의 갈등과 대통령 승계 문제를 해소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제도혁명당은 이후 2000년까지 집권했다.
멕시코 혁명이 멕시코의 정치ㆍ사회ㆍ문화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음은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일정 부분 진행되었던 토지 개혁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의 대지주들은 건재했으며, 사회적 양극화는 지속되었다. 더욱이 멕시코 재벌체제는 1930년대 이후 더욱 강화되었다. 멕시코 정부는 1934년에 증여세를 지방정부가 징수하도록 하고 1961년에는 아예 폐지했다. 또한 1934년에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했다. 특히 외국인들이나 외국기업들은 의결권은 없고 배당만 받을 수 있는 CPO(Certificados de Participation Ordinario)만을 구매할 수 있게 되어, 멕시코의 재벌 기업은 외국투자자에 의해 인수나 합병될 위협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재벌체제의 공고화로 인해, 산업구조의 고도화나 고부가가치화에 따른 혁신과 변화도 멈추었다. 그 결과, 1960년에 멕시코의 1인당 GDP는 한국의 약 3배였으나, 50년이 지난 2010년에는 한국의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근본적인 경제 구조와 경제 권력은 손대지 못한 멕시코 혁명은 결국 정치권력의 교체라는 코스프레였던 것이다.
박근혜ㆍ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촛불시민혁명 역시 지난 50년간 지속되어온 박정희 개발체제의 종식과 새로운 대한민국의 염원을 담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 결과와 무관하게 국민 대다수의 이런 여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국민의 이런 여망은 결국 정권 교체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촛불시민혁명이 단지 정치권력의 교체로 끝난다면, 촛불시민혁명 역시 미완의 혁명이 될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지속되고 있는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와 경제력 집중을 이용한 재벌 총수 일가의 경제 권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만 저성장의 덫과 사회 양극화의 심화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약 이런 국민적 염원을 차기 대통령이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안주한다면, 야당이 열겠다는 새로운 대한민국은 제2의 중남미가 될 수 있다.
많은 대통령 후보자간 재벌개혁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개혁에 대한 의지도 구체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후보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나 있는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구상과 재벌 개혁의 구체성에 대해 국민이 묻고 후보자들이 답해야만 한다.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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