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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잡는과학] “현장감식은 과학수사의 시작일 뿐 마술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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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일 강원 과학수사대 1팀장
현장 한번 가면 10시간 머무르기도
뭉개진 지문ㆍ혈흔에 빈손 적잖아
답 정하고 보는 외부시신은 부담
사건 신고가 들어오면 2인1조의 과학수사요원들이 현장감식에 나선다. 감식가방세트와 카메라, 조명세트 등을 챙겨간다. 강력범죄 가능성이 높은 실종 사건은 인원이 추가 투입된다. 부상자 구호가 최우선이지만 보통 첫 번째 단계는 현장 통제다. 증거물 훼손이 제일 큰 위험이라는 말은 당연하지만, 최근 현장 주변으로 모여드는 군중을 통제하는 것도 과학수사요원들에게 큰 숙제다. 이미정(44) 강원경찰청 광역과학수사대 검시관은 “할머니 변사 사건이 발생해 출동했는데 이미 현장을 본 고등학생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사진을 올린 적이 있다”며 “순식간에 ‘눈이 없다’ ‘장기가 없다’는 등의 괴담이 퍼지면서 온 동네가 불안에 휩싸였다” 고 전했다.
현장이 통제되면 곧바로 감식 계획이 세워진다. 증거물별 감식 우선 순위를 정하고 각자 업무와 현장, 실험실에서 진행할 업무를 구분한다. 현장 상황을 꼼꼼히 분류하는 체크리스트가 작성되면 그제서야 사진과 동영상 촬영이 진행된다. 어디에 어떤 유류물이 어떤 모습으로 있었는지 기록하고 측정하기 위해서다. 본격적인 감식 작업은 각종 유류품 증 증거물을 수거해 실험실로 보낸 후에야 시작된다. 실험실에 있는 각종 장비를 동원해 지문 및 혈흔 감식 등을 하게 된다.
과학수사요원들은 입을 모아 “과학수사는 과학일 뿐 마술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뭉개진 지문이나 변질된 혈흔도 허다해 빈손으로 돌아올 때가 적지 않다. 권영일(51) 강원경찰청 광역과학수사대 1팀장은 “폐쇄회로(CC)TV에서 범인이 뭔가를 만졌다. 그러면 대부분 사람들은 지문이 나올 테니 이제 잡았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직접 감식하는 요원은 안 나올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걸 알기 때문에 부담감이 엄청나다”고 말했다.
현장감식은 과학수사의 시작일뿐 끝은 아니다. 한 부분에 불과하다. ‘춘천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을 담당했던 김성민(44) 강원경찰청 과학수사계 경사는 혈흔분석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김 경사는 “한번 갈 때마다 서너 시간 이상씩 길게는 10시간이 넘게 현장에 머무른다”며 “실험실로 돌아와 사진과 유류품, 혈흔의 모양, 낙하 방향 등을 계산해 보고 의문이 나면 다시 현장으로 가는 일을 반복한다”고 했다.
권 팀장은 “과학수사요원들은 트라우마가 있다. 작은 오판으로도 수사를 그르칠 수도 있다는 건데, 이미 답을 정하고 보는 외부 시선도 엄청난 중압감으로 다가온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수사 형사들은 범인의 자백을 받을 때 그간의 모든 피로를 잊고 보람을 느끼지만, 그 자백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아 낼 때 보람을 느끼는 게 과학수사요원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춘천=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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