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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구 커플’ 달달하긴 한데… 나영석 징크스?

입력
2017.02.27 14:00
매주 궁극의 달달함을 선보이고 있는 구혜선(왼쪽)-안재현 커플. 사진=tvN '신혼일기' 홈페이지
매주 궁극의 달달함을 선보이고 있는 구혜선(왼쪽)-안재현 커플. 사진=tvN '신혼일기' 홈페이지

참 이상한 일이다.

참신하고 재미있었던 ‘꽃보다 할배’ 시리즈가 그 컨셉 그대로 주인공만 여배우들로 바꾼 ‘꽃보다 누나’가 된 순간 재미가 사라졌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그런 일이 한 번 또 일어난 것 같은 데자뷰가 느껴진다. ‘삼시세끼’의 컨셉을 그대로, 주인공만 신혼부부로 바꿔 만들어진 듯한 ‘신혼일기(tvN)’가 나왔는데, 이 역시 재미가 한참 떨어진다.

스타 PD인 나영석 PD의 새 시리즈인 ‘신혼일기’는 실제 신혼부부인 배우 안재현-구혜선 커플이 강원도 인제의 외딴집에서 반려견, 반려묘들을 데리고 알콩달콩 생활해 가는 이야기다.

‘신혼일기’ 속의 안구 커플은 신혼부부 답게 24시간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럴 수 있다. 신혼에, 아직 애도 안 낳았고, 직업이 배우라서 그런지 꾸미지 않은 일상 모습도 둘 다 화보처럼 참 예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인가. 신혼도 아니고, 애 키우느라 정신 없고, 일상은 화보의 정반대편 어딘가 전쟁통에 가까운 나로서는 TV 속 이들의 이야기가 딱히 절절히 공감이 되진 않는다. 중간중간 ‘결혼이란 이런 것’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라는 투로 뭔가 가르쳐 주려는 톤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때면 오글거리는 손발을 달래야 할 때도 있다.

‘신혼일기’의 도드라지는 장점은 하나 있다. 시각적으로 보는 내내 호강한다는 것이다. 구혜선과 안재현이 나누는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눈 내린 인제의 풍경과 이 부부가 머무는 집의 구석구석 꾸밈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특히 나른한 겨울 오후를 보내는 고양이들이나 눈 내린 마당을 뛰어다니는 일곱 살 개 ‘감자’를 보는 게 이 프로그램을 보는 가장 큰 재미다. ‘신혼일기’의 주인공은 안구 커플이 아니라 반려동물들과 인제의 산골 그 자체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영석 PD는 과거 윤석호 PD가 드라마로 ‘사계’ 시리즈를 만들었듯이 예능으로 사계절 시리즈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것도 도시가 아닌 한반도의 아름다운 농촌-어촌-산촌의 사계절을 담아내는 작업을. 마치 그 작업의 클라이막스처럼 온 산이 흰 눈에 덮여 있는 강원도 산촌을 아름답게 담아낸 게 ‘신혼일기’다. 여기에 예쁜 배우 신혼부부와 반려동물까지 나오니 말 그대로 움직이는 화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엔 ‘반전’이 없다. 과거 ‘삼시세끼’가 재미있었던 이유는 ‘의외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도남 같던 차승원이 비닐장갑 끼고 뚝딱뚝딱 능숙하게 요리를 하고, 영화 속에서 깨방정 역할을 주로 했던 유해진이 진국 같은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재미있었다. 역시 차도남에 다소 얌체 같아 보였던 이서진이 매번 나영석 PD한테 속고, 당하고, 살림엔 젬병이라 하루 종일 투덜대면서도 결국 할 건 다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하지만 ‘꽃누나’에서도 그랬고, ‘신혼일기’의 구혜선도 그렇고 여배우들에겐 딱히 반전이 없다. 남자들이 밥 하느라 우왕좌왕 하는 모습은 재미로 이어지는 반면, 특급 여배우들과 새댁 구혜선은 딱히 바보처럼 헤매는 일이 별로 없다. ‘나 혼자 산다(MBC)’를 봐도, TV 속 여자 연예인들은 야무지게 자기 밥 잘 챙겨 먹고 운동도 부지런히 하면서 일도 잘 한다.

결정적으로 ‘신혼일기’에는 의외성 대신 배신감 같은 게 느껴진다. 신혼부부의 리얼 일상이라는 컨셉 자체는 ‘엿보기’의 엉큼한 호기심이 생기는데, 막상 실제 프로그램 내용을 보면 풍경과 반려동물이 주인공이고 신혼부부의 알콩달콩한 일상은 배경 혹은 예쁜 애니메이션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으로 나오니 오히려 실망감이 드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나영석 PD의 히트작들은 모두 남자들이 주인공이다. ‘1박2일’도 그렇고, ‘삼시세끼’와 ‘꽃할배’ ‘꽃청춘’ ‘신서유기’ 시리즈에는 주로 남자들만 나온다.

대부분 남자들끼리 여행을 떠나고, 남자들끼리 초딩 같은 놀이를 하면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다. 그 안에 가끔 등장하는 여자들은 ‘여신’ 컨셉의 여배우들로, 뭔가 좀 모자란 듯한 주인공 남자들이 우러러보는 대상일 때가 많다.

나영석이라는 스타 PD의 흥행문법, 더 나아가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문법이란 게 ‘남자들의 문법’으로 탄탄하게 다져져 있기 때문에 여자가 주인공이 되면 재미가 없어지는 현상이 생기는게 아닐까.

여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예능이 ‘대박’을 치지 못한 이유도 결국은 끼가 넘치는 개그우먼들이 남자들의 문법에 맞춰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뭐, 그렇다고 여자들이 그들에게 딱 맞는 또 다른 문법을 왜 못 찾느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을 것 같지만.

그리고 이 와중에 ‘나영석 예능에서 여자가 주인공이 되면 재미가 없는’ 또 한 가지 이유도 떠올랐다.

무슨 이유인지 나영석 PD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때 끼가 넘치는 여자 예능인들이 아니라 여배우들만 썼다. 개그우먼들이 나와도 성공이 어려운 판에, 가식(?)과 신비주의가 버무려진 여배우들이 예능 주인공으로 나오니 재미있을 리가 있나.

차승원, 유해진, 이서진 같은 남자 배우들이 예능에서도 해냈던 걸 여배우들도 해내길 바라는 것일까. 혹은 베테랑 나영석 PD의 ‘감’으로는 예능에 캐스팅이 어려운 김희애나 이미연, 구혜선 같은 배우들을 섭외하는 것만으로도 성공이 보장된다고 느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혹시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프로듀서인 나영석 PD조차도 자신의 프로그램에 나오는 여자들은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예쁜 배경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건 아닐까 문득 궁금해 진다.

마더티렉스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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