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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9도에서 얼어 죽을 뻔… 봄 찾아 떠난 두 남자의 무모한 여행

입력
2017.02.27 09:39

비경과 유적으로 가득한 경기도 연천의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

같은 듯 다른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와 지프 체로키

얼어 죽을 뻔했던 임진강에서의 오토캠핑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 사무실은 신입사원 면접을 보러 온 이들로 북적거리고, 쇼핑몰엔 신학기를 맞이할 가방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남쪽에선 성격 급한 꽃들이 벌써 몽우리를 터뜨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물론 어서 따뜻한 봄이 오길 바란다. 하지만 겨울을 이대로 보내기엔 너무 아쉽다. 유독 이번 겨울 주말에는 바쁜 날이 계속됐다. 그래서 이 겨울의 끝을 잡고 1박 2일 동안 경기도 연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대도시와 동떨어진 휴전선 인근의 분위기는 겨울과 봄의 모호한 경계와 닮았다.

한국일보 모클팀의 김훈기 기자가 동행했고,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와 지프 체로키가 믿음직한 발이 돼주었다. 여행을 떠난 지난 23일, 북쪽에서 내려온 차가운 대륙고기압의 영향으로 서울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내려가는 등 이번 겨울 최고의 한파가 찾아왔다. 마치 겨울이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처럼.

경기도 연천 재인폭포 진입로의 이국적인 풍경. 사진 김훈기 기자
경기도 연천 재인폭포 진입로의 이국적인 풍경. 사진 김훈기 기자

비경과 유적으로 가득한 연천 드라이브 코스

연천의 도로는 느리다. 이곳 주민은 좀처럼 서두르지 않는다. 과속방지턱도 꽤 많다. 대부분 1차로여서 군부대 차나 시내버스, 유치원 통학용 차 등이 앞에 있으면 속도는 더 더뎌진다. 그래도 누구 하나 클랙슨을 울리지 않는다. 그렇게 조용히 줄을 서서 여유롭게 달리다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경기도 연천은 이름 모를 산들이 굽이굽이 펼쳐져 있다
경기도 연천은 이름 모를 산들이 굽이굽이 펼쳐져 있다

연천에는 광주산맥의 지맥과 마식령산맥이 지나고 있어 수많은 크고 작은 산이 얼굴을 맞대고 있다. 이 산들은 넓은 구릉 지대에 길게 뻗은 길과 어울려 이국적인 풍경을 만든다. 산과 이어진 곳곳의 이름 없는 흙길은 오프로드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도 좋다. 발길 닿는 곳마다 흥미로운 역사 유적과 비경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재인폭포로 가는 길은 이번 여행에서 만난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한참을 가다 보면 마침내 산이 고이 품고 있던 거대한 보석 하나를 만나게 된다.

꽝꽝 얼어붙은 재인폭포. 곧 얼음이 녹아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낼 것이다
꽝꽝 얼어붙은 재인폭포. 곧 얼음이 녹아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낼 것이다

재인폭포는 제주도의 천지연폭포와 비견될 정도로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지장봉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18m 높이의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으로 쏟아지며 장관을 이룬다. 폭포 아래는 다양한 암석들과 더불어 하식 동굴, 용암 가스 튜브 등이 관찰됐다. 천연기념물인 어름치와 멸종위기종인 분홍장구채 등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이곳엔 이름과 관련해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재인(才人)이란 조선 시대의 광대를 말한다. 옛날 이곳 인근 마을에 어느 부부가 살았다. 남편은 재인이었고 아내는 미모가 빼어났다. 재인의 아내에게 흑심을 품은 마을 수령은 못된 계략을 세웠다. 재인에게 폭포에서 줄을 타라고 명한 것이다. 재인이 줄을 타자 수령은 줄을 끊어버렸고, 재인은 폭포로 추락해 숨을 거두었다. 수령의 수청을 들게 된 재인의 아내는 수령의 코를 깨물고 자결했다. 이후 그 폭포를 재인폭포라 부르게 됐고 마을 이름은 ‘코문리’, 지금의 고문리로 바뀌었다.

다른 하나는 어느 재인이 사람들과 내기를 하다 죽은 사연이다. 이 역시 재인 한 명이 폭포 절벽에 외줄을 묶어 지나가다 폭포로 떨어졌다. 내기에 질 것 같은 사람들이 줄을 잘라 버렸다. 두 이야기 모두 정확한 사건의 진상은 알 수 없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재인폭포의 이름은 어떤 재인이 외줄을 타다 떨어져 죽은 데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발아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전망대에 올라 밑을 내려다보니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사진을 찍던 김훈기 기자도 고소공포증을 이유로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호로고루로 향했다.

멀리서 바라본 호로고루의 풍경. 언덕 너머엔 임진강이 흐르고 있다
멀리서 바라본 호로고루의 풍경. 언덕 너머엔 임진강이 흐르고 있다

호로고루(瓠蘆古壘)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고구려 유적 중 하나다. 고루는 ‘오래된 보루’라는 뜻으로 옛날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구축물을 말한다. 옛날 이 지역은 고구려와 신라, 당나라가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왜냐하면, 이곳은 배를 타지 않고 임진강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개성 지역에서 남쪽으로 갈 수 있는 최단 루트이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호로탄이라 하여 한양과 개성을 드나드는 주요 길목이었다. 한국전쟁 때 북한 전차부대는 개성을 지나 이곳을 통해 남하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다양한 유물이 발굴됐다.

호로고루에서 만난 고라니. 얼음 바닥을 조심스럽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호로고루에서 만난 고라니. 얼음 바닥을 조심스럽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호로고루로 향하는 길은 매우 한적했다. 드문드문 보이는 저수지는 아직 단단히 얼어 있었고, 가로수는 앙상한 알몸으로 늘어서 있었다. 호로고루의 언덕에 오르니 구불구불한 임진강의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순간 오랜 세월에 걸쳐 이곳을 지났던 사람들이 상상 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탁 트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휘몰아치는 바람은 아직 매서웠다. 오랜만에 날 것 그대로의 공기를 들이켰다. 하늘은 청명했고 구름은 새하얬다. 아직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든든한 네 바퀴, 디스커버리 스포츠 그리고 체로키

두 차는 언뜻 보기에 비슷하다. 둘 다 9단 자동 변속기를 달았고, SUV로 유명한 집안의 둘째 자식이다. 디스커버리 스포츠 위엔 디스커버리가, 체로키 위엔 그랜드 체로키가 있다. 출력도 비슷하다. 시승차인 디스커버리 스포츠 HSE 럭셔리엔 최고출력 180마력을 내는 2.0ℓ 터보 디젤 엔진이, 지프 체로키 리미티드엔 최고출력 200마력짜리 2.2ℓ 터보 디젤 엔진이 장착됐다. 지형에 따라 최적화되는 전자식 주행 모드를 갖추고 있으며 500㎜ 깊이의 강물은 거뜬히 건넌다.

같은 듯 다른 지프 체로키(위)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아래)
같은 듯 다른 지프 체로키(위)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아래)

하지만 두 차의 캐릭터는 명확히 다르다. 어느 차가 더 훌륭하다고 선을 그을 순 없다. 이런 상황에선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저런 상황에선 체로키가 빛났다.

변속기는 둘 다 9단 자동이다. 그런데 단수만 같을 뿐 태생과 질감은 확연히 다르다. 체로키의 변속기는 FCA가 ZF에서 라이선스를 받아 직접 만들었고, 디스커버리 스포츠엔 ZF에서 직접 만든 변속기를 달았다. 체로키의 변속기는 저단에서 자주 머뭇거렸다. 특히 정차하다 출발할 때 울컥거림이 잦았다. 하지만 단수가 올라갈수록 안정을 찾았다.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변속기는 모든 구간에서 유연하고 자연스러웠다. 고속도로에서도, 진흙과 자갈길에서도 상황에 맞게 알아서 “턱턱” 기어를 맞춰주었다.

두 차의 캐릭터는 달릴 때 가장 뚜렷이 드러났다
두 차의 캐릭터는 달릴 때 가장 뚜렷이 드러났다

가장 큰 차이는 달릴 때 드러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포장도로에선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비포장도로에선 체로키가 나았다. 그렇다고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오프로드에 취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체로키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진흙과 돌이 가득한 오프로드를 달리는 체로키(위)와 디스커버리 스포츠(아래)
진흙과 돌이 가득한 오프로드를 달리는 체로키(위)와 디스커버리 스포츠(아래)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포장도로든 비포장도로든, 어디서든 훌륭한 스포츠 성능을 보여주었다. 차에 앉자마자 스티어링휠에 달린 패들시프트가 눈에 띄었다. 문득 1년 10개월 전 경북 경주의 시승행사에서 만났던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생각났다. 그때 보문관광단지 인근 고속화도로에서 갓 출시된 디스커버리 스포츠를 스포츠카처럼 재미있게 몰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역시!’ 운전의 재미는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몸놀림은 SUV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예리하고 경쾌했다. 코너를 돌아나갈 때 흐트러짐 없는 자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고속 구간에서도 승차감은 편안했다. 다만 엔진회전수가 낮을 땐 어느 정도의 터보 래그를 감수해야 한다.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실내는 고급스럽다. 그래서 체로키보다 1,000만원 이상 비싸다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실내는 고급스럽다. 그래서 체로키보다 1,000만원 이상 비싸다

체로키엔 ‘스포츠’ 주행 모드가 별도로 있다. 활성화하면 전자 자세 제어 장치가 꺼진다. 구동력은 앞뒤 4:6으로 나눠 뒷바퀴굴림 위주의 네바퀴굴림으로 바뀐다. 가속페달 응답성은 더 민감해지고 변속 시점도 엔진회전수를 좀 더 높게 가져가 스포티한 주행을 즐길 수 있다. 플랫폼을 알파로메오 줄리에타와 공유해 SUV치고 운전석 높이도 낮은 편이다. 하지만 고속 주행 시 몸놀림은 영락없는 덩치 큰 SUV다. 운전이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다만 디스커버리 스포츠에 비해 굼뜨다. 스포티한 주행을 할 수 있는 기능은 갖췄지만, 지프 특유의 터프한 체취가 느껴진다.

체로키의 진가는 아스팔트를 벗어났을 때 나왔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차체가 예상보다 높이 출렁여서 거슬렸는데, 진흙과 자갈 바닥에선 신기하게도 물 만난 물고기처럼 편안하게 흐르는 느낌이었다. 비포장도로에서 흙먼지를 휘날리며 속도를 높여도 전혀 불안감이 없었다. 체로키의 백미는 ‘로 기어’에 있다. 오프로드는 ‘느림의 미학’이다. 로 기어 덕에 형제인 랭글러처럼 높은 토크를 유지하며 느릿느릿 기어갈 수 있어 수박만 한 바위로 덮여 있는 산길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

체로키의 실내는 투박하지만 실용적이고 직관적이다
체로키의 실내는 투박하지만 실용적이고 직관적이다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오프로드 주행도 나쁘지 않았다. 랜드로버의 특허 기술인 터레인 리스폰스(Terrain Response)가 적용돼 일반, 풀/자갈/눈, 진흙, 모래 네 가지의 주행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각각의 주행 모드는 상황에 맞게 스티어링과 변속, 스로틀과 트랙션이 최적화돼 간편하다. 다만 온로드에서 기대했던 주행 질감과 체로키의 오프로드 성능보단 감흥이 덜했다. 낮은 엔진회전수에서 출력이 급히 떨어져 가속페달을 깊게 밟다 보니 트랙션 컨트롤도 까다롭게 다가왔다.

5,000만~6,000만원대의 전천후 SUV를 고려 중이라면 이만한 차가 없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꽤 고민이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실내가 고급스럽고 온로드와 오프로드 양쪽에 적당히 편안한 주행 품질을 갖췄다. 그런데 6.980만원이라는 가격(HSE 럭셔리 기준)에 망설여진다. 5,580만원의 지프 체로키 리미티드는 디스커버리 스포츠보다 경제적이지만 상대적으로 투박한 디자인과 온로드 주행 품질에서 멈칫거리게 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두 차 모두 자연과 어우러지는 오토캠핑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다.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캠핑을 하다

해가 서쪽에서 눈높이와 마주쳤을 때, 우리는 모험을 중단하고 야영지를 찾았다. 우리가 찾은 곳은 임진강 주상절리였다. 연천엔 임진강과 한탄강이 흐르는데, 수십만 년 전 용암이 강을 따라 흘러 형성된 현무암 주상절리와 폭포가 곳곳에 있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지표면에서 식다가 생긴 기둥이다. 일반적으로 제주도처럼 화산섬의 바닷가에서 많이 생성되는데, 이렇게 강가에서 만들어지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다.

모닥불 하나론 강가에 내려앉은 강추위를 이길 수 없었다
모닥불 하나론 강가에 내려앉은 강추위를 이길 수 없었다

높이 25m, 길이 2㎞에 달하는 연천 동이리의 주상절리는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미국 TV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거대한 얼음 장벽이 생각났다.

두 남자의 1시간 동안 텐트 치는 모습을 1분짜리 타입랩스 영상으로 담았다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텐트부터 쳤다. 겨우내 웅크리다 오랜만에 치는지라 유튜브에서 가이드를 찾아 꼼꼼하게 살폈다. 지지대를 힘겹게 구부려 고정할 땐 두 사람이 함께 기합을 내질렀다. 시간이 흐르자 몸이 더워지면서 이마에 구슬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텐트가 제 모습을 찾기까진 약 1시간이 걸렸고, 해는 이미 작별을 고한 뒤였다.

맑은 밤하늘의 별은 천혜의 조명이다
맑은 밤하늘의 별은 천혜의 조명이다

해가 자취를 감추자 달과 별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 한 점 없이 새까만 도화지에 누군가 은빛 소금을 흘려 놓은 것 같았다. 기온은 1시간에 1도씩 떨어졌다. 동장군을 달래기 위해 모닥불을 지폈지만, 추위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장작불 위에 그릴을 얹고 고기를 올려 구웠다. 담배 연기와 같은 입김을 내뿜으며 뜨거운 고깃덩어리를 위장 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고기와 함께 집, 결혼, 육아, 직장, 노후 등 30대 중후반 남자의 흔한 고민거리들도 같이 씹었다. 그러던 중 김훈기 기자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데 우리 오늘 밤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체로키의 220V 지원이 없었다면 우린 땅바닥에서 올라온 한기 때문에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체로키의 220V 지원이 없었다면 우린 땅바닥에서 올라온 한기 때문에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모닥불이 조용히 숨을 죽였다. 우리는 주변을 정리하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 고단한 몸을 뉘었다. 찬 기운이 들어올까 봐 침낭을 꽉 부여잡았다. 숨을 쉴 때마다 더운 입김이 옷깃과 침낭에서 응결돼 알알이 물방울로 맺혔다. 그렇게 이 겨울의 마지막 품 안에서 잠을 청했다.

길 건넛마을의 개도 잠이 들었는지 더는 짖지 않았다. 수풀에서 가끔 들려오던 정체 모를 바스락거림도 멈췄다. 바로 옆에서 흐르고 있는 강물도 호수처럼 기척을 없앴다. 공기도 얼어붙었는지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하늘엔 달과 별이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우릴 지켜보고 있었다. 차가운 우주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기분이었다.

밤새 차 위에 내려앉은 서리. 자연이 만든 얼음결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밤새 차 위에 내려앉은 서리. 자연이 만든 얼음결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온 세상이 얼어붙어 있었다. 차와 텐트 위엔 새하얀 서리가 소복하게 내려앉았다. 강물 위엔 어슴푸레한 물안개가 유령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기온은 영하 9도. 밤새 몸에 스며든 한기를 떨쳐내기 위해 자갈밭 위에서 뛰었다.

이 겨울의 마지막 순간. 이때까지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이 겨울의 마지막 순간. 이때까지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연천 임진강 위를 떠다니는 아침 물안개

연천 주상절리 위를 날아다니는 기러기 떼

“빠가각!” 임진강의 얼음 깨지는 소리

체로키(위)에 짐을 모두 싣고 디스커버리 스포츠(아래)에서 이제 막 찾아온 봄을 만끽하며 커피를 즐겼다
체로키(위)에 짐을 모두 싣고 디스커버리 스포츠(아래)에서 이제 막 찾아온 봄을 만끽하며 커피를 즐겼다

해가 뜨자 기온은 거짓말처럼 1시간에 1도씩 오르기 시작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꽝꽝 얼어 있던 강물 곳곳에선 “빠가각” 소리가 들렸다. 자연이 들려주는 얼음 깨지는 소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경이로웠다. 하늘 위에선 기러기 편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념 비행을 했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었다.

연천=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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