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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가입란엔 기혼, 미혼 뿐... 미완성품 취급에 부들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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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계, 살림 무게 혼자 감당해도
“혼자 쓰니 좋겠네” 가볍게 봐
명절마다 기혼자 근무 떠맡기도
#2
정부 정책에선 투명인간 신세
청약통장 10년 가입해도 후순위
“비혼자 무시하고 정책 설계 땐
새 형태의 사회적 차별될 수도”
그들의 뇌리에 비혼은 없었다
연애 중이지만 결혼은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회사원 이준석(30ㆍ가명)씨는 “세상에 널린 광고, 포스터, 전광판에 ‘아빠 힘내세요’라는 문구가 왜 이리도 많은지, 볼 때마다 솔직히 불편하다”고 했다. 재취업을 응원할 때부터 고속도로에서 안전운전을 독려할 때까지. 부성과 모성에 기댄 슬로건은 쓰임새도 여러 가지다. “불경기로 온갖 전망이 불투명하고, 집값은 널뛰는데, 서로 짐이 될 이유가 있나 싶어 비혼을 고려 중이거든요. 그런데 고생스러운 삶의 짐을 진 누군가는 당연히 아빠, 엄마일 것이라고 전제하는 광고를 볼 때마다 ‘저런 건 언제 변하나’ 싶어 화도 나요. 명절에 고속도로 운전은 아빠만 하나요?”
엄마, 아빠라고 다 ‘비혼 차별’에서 비껴가는 것도 아니다. 이혼, 사별을 한 싱글이나 처음부터 결혼 없이 아이를 키우는 이들도 각종 설문조사나 기입란을 적어내려 갈 때마다 ‘비혼 자리는 없다’는 배제를 절감한다. 싱글대디인 이병철(51) 차별없는가정을위한시민연합 대표는 “은행, 카드사에서 상담하거나 어딘가 개인정보를 기입할 때마다 기혼을 택하면 ‘사모님 성함’과 결혼기념일을 써내야 하고, 그게 곤란해 미혼을 택하면 자녀정보를 넣을 수 없는 딜레마에 처한다”고 했다. ‘비혼’란을 별도로 둬 필요한 정보는 정교하게 묻거나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닐 경우 아예 따져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방송인 이다도시 역시 지난해 12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비슷한 경험을 털어놨다. 인터넷 쇼핑몰 회원가입 신청을 하던 중 ‘미혼’에 체크하는 순간 자녀 정보 기입란이 자동으로 사라져 버렸던 경험을 돌이키며 “이 나라에서는 아이가 있으면 미혼일 수 없다는 뜻 아니냐,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정책ㆍ상규도 ‘표준결혼’ 우선
비혼을 ‘저출산의 원흉’으로 지목하거나, 결혼만을 독려하는 각종 정책 방향도 자괴감을 안기는 한 요소다. 빈곤 탓에 결혼을 사실상 포기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이에 대한 고려 없이 정책표준과 목표를 혼인장려에만 두고 있다는 것. 한 30대 비혼 회사원은 “주택청약통장 가입이 10년이 넘었는데 청약에 성공해 본 적이 없고 행복주택에 기대를 걸었지만 물량도 적더라”며 “부양가족에 가점을 줄 수밖에 없다면, 1인 가구를 위한 주거정책이라도 보완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저출산 대책으로 혼외출산을 환대하거나 일과 가정의 양립 방안을 더 적극 고민할 수 있는데도, 손쉽게 비혼만 비난할 땐 억울하다”고 비판했다.
사회정책의 표준은 오랫동안 혼인한 2인 이상 가구였다.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은 “만혼, 비혼, 이혼, 별거 등으로 혼인형태가 다양화하고, 1인가구가 표준 형태가 된 상황에서도 정책표준이 혼인 상태의 2인 이상 가구에만 맞춰져 있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경제적 요인 탓에 1인 가구로 지내고 있는 사람을 주택공급에서조차 탈락시키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임금 수준으로 끌어올려 탈빈곤을 유도하고, 주택 순위를 놓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도록 공급량을 확대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제언이다.
표준 가족을 대전제로 보는 것은 병원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술동의서의 경우 배우자나 혈족만 서명할 수 있도록 한 의료기관이 적잖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혼자 살거나, 친구랑 사는 등 다양한 형태의 삶이 느는데도, 전통적 방식의 가정이 없으면 같이 사는 사람이 암 수술을 받아도 동의서를 쓸 수 없고, 갑자기 한 쪽이 죽어도 재산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비혼과 새로운 가족 구성원을 인정하고, 가족의 개념을 바꿔야 할 때”라는 것이다.
홍보회사 임원 강지윤(43ㆍ가명)씨도 싱글임을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순간으로 “몸이 아파 한 밤 중 혼자 찾은 응급실에서 계속 ‘보호자는 어디 계시냐’고 재촉했을 때”를 꼽았다. “싱글이기 때문에 오히려 모든 일에 대신해 줄 사람이 없거든요. 야근과 집안일이 밀려도 혼자 해내고, 몸이 아파도 혼자 꿋꿋이 병원에 가죠.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삶을 꾸리는데, 정작 세상에서는 모자란 존재로 규정되는 것 같아 속상해요.”
비혼의 삶도 투쟁이자 현실이다
무조건 삶이 한가하고 느슨할 것이라고 여기거나, 양보를 강권하는 태도 역시 비혼을 곤혹스럽게 한다. 회사원 박현준(39ㆍ가명)씨는 최근 수년 째 비혼이라는 이유만으로 명절 당직근무를 도맡았다. “네가 기혼자들을 배려해줘야 하지 않냐는 분위기에 떠밀렸어요. 그런 결론이 나는 데 하도 익숙해 지다 보니 이제는 명절이 돌아오면 으레 내가 하겠거니 싶기까지 해요. 결혼과 출산이라는 사회적 의무를 다하지 않은 벌을 받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설사 한가하다 할지라도 그 좋다는 결혼을, 양육의 행복과 기쁨씩이나 유예하면서 확보한 시간이다. 그런 시간을 당직 서는 데 쓰라는 요구가 달가울 리 없다. 그도 애 낳아서 키우면 행복할 거라는 건 사무치게 알고 있다. 매일 격무에 시달리고, 틈틈이 “이 사람 아니면 안되겠다” 싶은 연인과 연애 중인 데다, 어머니를 부양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그런데도 공휴일은 양보해야 하고 “(버는 걸) 혼자 써서 좋겠다”, “육아 걱정 없으니 편하겠다”는, 말 그대로 한가한 소리를 들어야 할 때마다 그 역시 속으로만 외친다 “비혼이라고 다 명절엔 바닥 긁고, 버는걸 다 지 입으로만 넣는 건 아닙니다!”
홀로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는 비혼 김정연(38ㆍ가명)씨는 “혼자 참석하기 때문에 추가비용을 내야 하는 ‘싱글 차지(single charge)’가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고 울적해했다. “혼자 신청하면 돈을 더 내야 하는 패키지 여행부터 2인분은 1만6,000원인데 1인분은 만원인 식당 메뉴까지 솔로로 사는 것 자체가 페널티 비용을 요구 받는다”는 것이다. “혼밥이 유행이라지만 1인분은 주문도 못하는 메뉴가 많고, 거기에 가격까지 더 비싸니 혼자 식당에 갈 때마다 타박 받는 기분이에요. 다들 속 편한 줄 아는데 싱글들은 곳곳에서 금전적 차별까지 받고 있다고요.”
문제 있는 건 아니냐고?
비혼을 미완의 상태로 보고 결혼이라는 매듭을 지어야 할 풀린 실타래 취급하는 것은 가장 고전적 푸대접이다. 대기업 연구원인 강진현(42ㆍ가명)씨는 “무슨 하자 있는 건 아니지?”, “능력 없이 눈만 높아서 그렇다”, “그러다 외롭게 늙는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는 데 지쳤다. 회사원 박현준(39)씨는 “몸이 안 좋거나, 자기밖에 모르는 사회적 미성숙아라는 모욕적 시선을 매일 대하는 데 지쳐 ‘이혼했다’고 거짓말을 할까 하는 생각까지 한다”고 토로한다.
싱글맘인 자유기고가 한현정(48ㆍ가명)씨는 “비혼 상태인 게 무슨 결함인 양 걸핏하면 주변의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나 상처한 사람을 언급하며 ‘둘이 만나보라’는 말들을 쉽게 한다”고 꼬집었다. “집에 혼자 있으면 밤 늦게 술 마시다 뭐 하냐며 나오라는 전화를 몇 번씩이나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싱글이라는 이유로 이런 무례를 당해야 하나요?”
영미권에서는 이런 차별을 싱글리즘(singlism), 결혼지상주의(matrimania)라고 규정한다. 결혼 그 자체가 훌륭하다는 도덕적 잣대를 동원해 비혼을 차별하는 태도를 말한다. 사회심리학자이자 싱글리즘 연구자인 벨라 드 파울로는 “교황이나 그의 추종자가 된 게 아니라면, 싱글이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일은 절대 없다. 그들에게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으면 결혼상태여야 한다”며 “이런 근거 없는 차별은 인종주의, 성차별만큼이나 폭력적”이라고 지적한다.
이병철 차별없는가정을위한시민연합 대표는 “전체 가구의 3분의 1이 비혼을 향해 가는데도 온 사회가 ‘뭔가 문제가 있으니 혼자겠지, 결혼을 못했겠지, 이혼했겠지, 헤어졌겠지’라는 편견으로 이들을 예외취급 한다면 그거야말로 비정상사회 아니겠냐”며 “사소하다고 논외로 밀어뒀던 차별적 인식, 상규, 정책 등을 나부터라도 하나씩 돌이켜보고 점검해 봐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보편적 삶의 하나가 되고 있는 비혼자를 무시하고 정책설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차별이 될 수 있다”며 “결혼 자체를 사치처럼 느끼는 비혼 등이 배제되지 않는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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