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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에 미안해서... 문재인은 우리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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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제외한 7명 모두 당원
SNS에 동영상ㆍ어록 올리며 활동
친노 대표로 대선 나섰다 낙선
文에 부채의식ㆍ보호의무 느껴
“지나친 ‘빠’는 ‘까’를 만들어
열성팬이 오히려 장애될 수도”
정치인에게 팬덤은 든든한 무기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열성 지지자들은 그를 신뢰하고 공감하며 가치를 공유한다. “문 전 대표와 함께 살 만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벅찬 꿈을 함께 꾼다. 그러나 사랑이 지나쳐 경쟁자는 모두 제거하겠다는 외고집으로 돌변하는 순간 팬덤은 다른 무기가 된다. 모든 정치인이 다 거느리지는 못한다는 ‘빠’가 문 전 대표에게 유독 강하게 형성된 것은 왜일까.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감정이 공격성으로 이어지는 ‘문빠’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4일 한국일보가 8명의 열성 지지자들과 3시간 동안 집단 인터뷰를 가진 결과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문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에서 탄생해, 탄핵정국에서 정권교체 열망이 고조되면서 함께 확대된 것으로 해석됐다. 인터뷰를 가진 8명은 10~50대로 3~9년 동안 문 전 대표를 열렬히 지지한 이들이다. 팬클럽 가입, 문 전 대표 일정 참여,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동영상ㆍ어록 올리기 등 다양한 지지 활동을 자발적으로 벌이고 있다. 고교생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민주당 당원인데, 대부분 문 전 대표가 대표였던 2015년을 전후해 당원 가입을 했다.
“노무현 사망의 상처 반복할 순 없다”
팬클럽 ‘문재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문사모)’ 카페지기인 중견기업 연구원 백승엽(36)씨는 열렬한 문재인 지지자가 된 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 “(2009년 5월 29일) 노 전 대통령 영결식 때 이명박(MB) 대통령에게 죄송하다고 고개 숙인 장면에 꽂혔죠. 그 때부터였어요.” 당시 백원우 민주당 의원 등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검찰 수사가 정치보복이라며 MB에게 비난의 외침을 쏟아내자, 상주 격이었던 문 전 대표가 오히려 사과하며 예를 갖추는 모습에 감동한 것이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역시 ‘문 전 대표에 반한 장면’으로 이 때를 꼽았으며, 백씨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느꼈다”고 말한다. ‘노무현의 동반자, 문재인’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독립적 정치인으로 태어난 것이다. 2년 전 문 전 대표의 책 ‘문재인의 운명’을 읽고 그를 지지하게 됐다는 고교생 양준하(17)군도 그 출발은 노 전 대통령이다. 유튜브에서 노 전 대통령의 영상을 본 것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시작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명박 정권의 정치보복’으로 인식하는 이들은 ‘친노 진영’을 대표해 대선에 나섰다가 48%의 표를 받고도 낙선한 문 전 대표에게 강한 부채의식을 느낀다. 2012년 대선 때부터 문 전 대표를 지지했다는 회사원 양승한(44)씨는 “(정치에 뜻이 없었던) ‘인간 문재인’을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정치판으로 나오게 한 지지자로서, 여기저기서 못 잡아 먹어 안달일 정도로 문 전 대표를 공격하는 상황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같은 뼈저린 실수를 두 번 할 수 없죠. 그래서 2015년에 당원 가입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20대 중반까지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는 김민아(34)씨는 ‘확장된 노무현’ 즉 민주화운동 세력 전반에 대한 부채의식이 컸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나가면서 참가자들이 연행되고 경찰에 맞는 것도 봤어요. 부당하다는 생각을 했고, 한편으로 예전에 먹고 살기 바쁠 때 대의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지금 이만큼 살 수 있구나 생각했죠. 과거 민주화운동 하신 분들에게 부채의식이 강하게 들었어요. 2008~2009년쯤 문사모 오프라인 모임에 나갔는데 민주화운동을 했던 분들의 에피소드 등 다른 데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었어요. 문 전 대표도 좋았지만 그런 살아있는 이야기들이 좋아서 열심히 활동했죠.”
문재인 팬카페가 노사모에 뿌리를 둔 것은 놀랍지 않다. 2004월 12월 출범한 문사모에는 부산, 경남 지역 노사모 회원들과 변호사 문재인을 지지하는 이들이 모였다. 젠틀재인(2010년 7월 출범)도 사람 좋은 문재인에 끌려 모인 이들이다. 문풍지대(2012년 4월), 노란우체통(2013년 1월)은 문 전 대표가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백씨는 “문사모 회원 중에는 변호사 문재인으로 남길 바라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 같이 돕고 있다”며 “문풍지대는 오프라인 활동에 젠틀재인은 문 전 대표 사진을 올리는 데 적극적이고, 노란우체통은 자체 팟캐스트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4개 팬카페는 지난해 1월 공식 팬클럽 문팬(회원 약 1만4,000명)으로 통합됐지만, 문팬이 단일 조직으로 정리되지 않은 채 기존 팬카페들이 각자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페이스북, 네이버 밴드 등에서 크고 작은 모임도 크게 늘었다.
“정권교체 이번엔 문재인으로 꼭 해내야죠”
최근 ‘문빠’가 더 이슈가 된 것은 문 전 대표가 대세로 떠올라 지지자들의 활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팬 관계자는 “팬카페 게시판을 보면 (논란이 됐던) 18원 후원금이나 문자메시지 폭탄 등을 제안한 사람은 단 4명뿐”이라며 극소수의 개별 행동이라고 일축했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이번에야말로 10년 보수 정권을 교체할 절호의 기회’라는 간절함이 무르익을 대로 익은 것은 사실이다.
주부 류경(54)씨는 “지금 (나라 사정은) 간절함을 넘어 위기감이 든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세대는 그래도 열심히 하면 손에 쥐는 게 있었는데, 지금 젊은 세대를 보면 슬프고 미안하다. 나라가 너무 힘드니까. 청년들은 결혼도 못하고, 일탈조차 못한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임원인 갈성욱(59)씨는 “세상이 어려운 만큼 문 전 대표를 통해 정권이 꼭 바뀌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다”고 말했다. 김민아씨는 “정치를 희화화하는 친구들에게 박원순 시장의 반값등록금처럼 정치가 네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며 변화의 희망을 문 전 대표에게 걸었다.
한의사 나원경(43)씨는 “MB(의 당선)가 내 삶을 바꿨다”고 말했다. “(2007년 12월) 대선 후 언론이 호들갑을 떨며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고, 광우병 촛불집회가 일어나고,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걸 보면서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는 “비리가 상상을 뛰어넘는 이런 세월을 살아야 된다는 게 굴욕적이고 분노가 미친다”며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실망과 분노도 드러냈다. 민주당이 2012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지 못하고, 대선 역시 실패하자 “패배감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어 문 전 대표를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나씨는 “문 전 대표가 당 대표가 된 후 반대 세력의 흔들기를 버텨내고 2016년 총선 승리 약속을 지키는 걸 보면서 신뢰가 갔다. 저 분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 저 분이 대통령인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서연(26)씨의 말은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상처와 대권이 눈앞에 있다는 조마조마함이 어떻게 공격적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문재인 지지자가 과격하게 보이는 이유요? 절박함이 있는 거죠. 정치적 타살을 막고자 하는 간절함이요.” 양승한씨는 18원 후원금이란 “지켜보고 있다는 경고 같은 것”이라고 했다. 정치평론가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지지자들은 문 전 대표를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으로 보고 있어 그에 대한 공격을 못 참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지그룹 밖에서 본 ‘문빠’
문빠 비판에 대해 문재인 지지자들은 “보수 진영이나 다른 후보 측 공격이 더 문제”라고 항변한다. 김서연씨는 “문재인 지지자만큼 자기 검열이 심한 사람들도 없다. 다른 대선 주자에게도 극성 팬이 있는데 왜 문재인 팬에게만 완벽을 요구하는가”라고 반박했다. 류씨는 “문재인 지지자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고, 그 중 극소수가 온라인, SNS에서 자유롭게 말하는 것인데 이를 침소봉대한다”며 “그걸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당 지지율이 올라갔을 리 없다”고 단언했다.
1위 주자에게 공격이 집중되는 것은 사실이라 이런 항변이 일리가 있지만, 지지층 내부에서도 무조건적 지지가 문제라고 보는 이들이 있다. 나씨는 “문재인의 모든 걸 무조건 찬성하는 모습은 중도나 온건 성향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빠’(지지자)가 ‘까’(비판자)를 만들 수 있다”며 경계했다. 양군은 “문 전 대표 지자자가 수가 많으니까 밖에서 봤을 땐 배타적, 패권이다 이런 얘기 나오는데. 배타적이라는 거에 대해선 우리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단순히 지지자가 많다고 패권이 있다고 공격한다면 그 분들 스스로 먼저 자신들의 정치적 행보가 적절한 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정상호 서원대 정치학과 교수는 “충성도 높은 내부 집단의 활동이 활발할수록 다른 집단에 대한 배타성이 강해지는 것은 숙명이다. 문제는 대중 정치인으로서 지지 기반을 넓히기 위해서는 외부 집단과 소통도 활발해야 하는데 열성 팬이 이를 가로 막을 수 있다”며 문 전 대표에게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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