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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ㆍ구르미ㆍ도깨비... 그 안에 김병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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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인생의 전환점된 ‘도깨비’
검은 혀는 식용 색소 발라 만들어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져
도깨비 이후 드라마 2편 찍는 중
*15년 무명 시절이 만든 명연기
2001년 데뷔한 후 조ㆍ단역 거쳐
작은 역할도 캐릭터 개성에 집중
“관객과 소통 잘하는 배우 돼야죠”
역대급이라 할 만한 충격적인 등장이었다. 몸짓마다 녹슨 기계처럼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뱀 같은 검은 혀로 아랫입술을 훔치는 모습에 소름이 돋다 못해 머리털이 쭈뼛 섰다. 그 순간 tvN 드라마 ‘도깨비’는 판타지에서 호러로 장르를 바꿨다. 고려시대 간신 박중헌(김병철)이 악귀가 돼 나타나면서 도깨비 김신(공유)과 지은탁(김고은), 저승사자(이동욱)와 써니(유인나)의 운명은 비극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배우 김병철(43)은 “환생하기엔 전쟁에서 너무 큰 악을 저지르지 않았냐”고 웃으며 “박중헌이 현생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궁금했는데 악귀가 될 거라는 얘기를 듣고는 정말 감탄했다”고 말했다.
박중헌은 김신의 검에 베여 소멸한다. 가슴에 꽂힌 검을 뽑은 김신도 사라졌다. 그 장면에서 박중헌은 명대사를 남긴다. “보아라. 결국 파국이다.” 얼마나 강렬했으면 네티즌들은 드라마 장면과 대파로 끓인 국 ‘파국’ 사진을 합성한 일명 ‘파국짤’까지 만들어 공유했다.
‘도깨비’에서 보여준 명연기로 안방극장을 뒤흔들기 전, 김병철은 코믹한 역할로 친숙했다. KBS2 ‘태양의 후예’에서는 유시진(송중기)과 티격태격하면서 허당 매력으로 웃음을 자아내던 태백부대 대대장 박병수를 연기했고, KBS2 ‘구르미 그린 달빛’에선 자유분방한 왕세자 이영(박보검)을 가르치느라 진땀깨나 흘린 스승이었다. MBC ‘쇼핑왕 루이’(2016)의 골드라인 기획팀 만년 과장 이경국도 그의 코미디 연기가 빛났던 역할이다.
‘태양의 후예’에 이어서 ‘도깨비’에도 김병철을 부른 김은숙 작가와 이응복 PD처럼 눈 밝은 드라마 제작자들이 많았던지, ‘도깨비’를 마치자마자 그 이전에 출연을 약속해 놓은 MBC ‘군주’와 OCN ‘터널’을 동시에 찍고 있다. ‘도깨비’ 촬영 때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김병철이 어렵게 짬을 내 최근 한국일보를 찾았다.
-인기를 실감하나.
“설에 큰집에 갔는데 큰어머니가 ‘축하한다’고 하시더라. 이전엔 ‘열심히 해라’ ‘요새 뭐 하니’ 같은 얘기만 들었다(웃음).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고 더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박중헌의 혀 색깔을 어떻게 냈는지 궁금했다.
“‘죠스바 아이스크림을 900년 동안 먹었을 것’이라는 시청자 반응을 듣고 엄청 웃었다. 매니저한테도 문의 전화가 폭주했다고 하더라. 식용 색소를 바른 것인데 착색이 잘 되지 않아서 애먹었다. 침을 수시로 뱉고 다시 색소를 덧발라야 했다. 침 색이 녹색, 파란색, 빨간색으로 시시각각 변하는데, 내가 외계인이 된 것 같았다.”
-김신처럼 박중헌도 900년간 살았는데 그 시간을 상상해 봤나.
“전생에서 했던 행태를 쳇바퀴 돌 듯 반복하고 있었을 거라 본다. 도깨비가 자신에게 주어진 생이 벌인지 상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던 것처럼 박중헌도 비슷했을 거다. 복수심과 증오심에 구천을 떠돌았지만 지옥에서 사는 것 같지 않았을까.”
-900년의 시간차를 두고 연기에 어떤 변화를 줬나.
“사극 부분에선 왕여에 대한 집착과 애정과 배신감과 증오가 뒤섞인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 고심했다. 실제로 어린 배우(김민재)와 연기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이 친구의 인생을 주무르고 망치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어 왠지 미안하기도 했다. 악귀가 된 이후엔 도깨비도 쉽게 없앨 수 없는 강한 존재이니 900년 내공만큼 여유를 담아내려 했다. 언제든 누구든 손아귀에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
-간언으로 권력을 농단한 박중헌을 보면서 최근 시국에 거론되는 얼굴들이 연상되더라.
“박중헌의 악행에서 사회적 질타를 받는 기득권의 행태가 겹쳐지긴 했다. 나쁜 짓을 해서 감옥에 가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반성할 줄도 모르지 않나. 나쁜 의미에서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 서로 비슷하다.”
-도전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캐릭터라 연기할 때 즐거웠을 것 같다.
“‘도깨비’에서 탐나는 역할을 묻는다면, 그리고 만약 내가 다른 역할이었다면, 나는 단연코 박중헌을 꼽았을 거다. 그런데 그런 박중헌을 내가 연기했더라(웃음).”
-박중헌이 없었더라면 도깨비 커플의 로맨스가 조금 심심할 뻔했다.
“한 발짝 더 나아가면, 도깨비의 검을 뽑아야 사랑이 이뤄지기 때문에 박중헌이 ‘큐피트’ 아니었나 싶다(웃음).”
김병철은 중앙대 연극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안톤 체홉의 연극 ‘세 자매’로 데뷔했다. “진짜 배우가 되려면 연극을 해야 한다”는 조언에 무대로 갔지만, 영상 작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영화 ‘황산벌’(2003)에서 신라 첩자 역을 맡아 처음 스크린에 나왔다. ‘알 포인트’(2004)에서는 귀신에 빙의돼 사살된 군인을 연기했다. 이후 ‘황진이’(2007) ‘그림자 살인’(2009) ‘퀵’(2011) ‘미쓰고’(2012) ‘미쓰 와이프’(2015) 등 수많은 상업영화의 조·단역과 단편영화 주연을 두루 거쳤다. 뿌리를 잊지 않은 그는 지난해 연극 ‘날 보러와요’ 20주년 공연에도 섰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극단에 소속되지는 않았나.
“영상 작업을 하려면 시간 확보가 필요했다. 연극은 작업 기간이 길기 때문에 선택을 해야 했다.”
-15년간의 무명 시절이 힘들지 않았나.
“물론 공백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즐겁게 지냈다. 어려웠다고 할 만한 경험도 없다. 영화 단역 출연으로 돈도 벌었으니까. 평소 씀씀이가 크지 않은 편이라 형편대로 살았다. 부모님 댁에 얹혀 산 것도 도움이 됐다(웃음).”
-작은 역할이라 연기에 대한 갈증을 느꼈을 것 같은데.
“별로 그렇지 않았다. 어떤 역이든 내가 연기하는 이유를 찾으려 했고, 내 연기를 통해 드러나는 캐릭터의 개성에 집중했다. 주어진 여건과 환경 안에서 다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편이 낫다. 물론 역할이 크면 표현의 여지가 넓어지니 좋기는 하다.”
-연기 인생 전환점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도깨비’가 아닐까. 실제로 전환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간 내가 연기한 인물과는 많이 달랐다. 역할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
-김병철이란 배우의 연기관이 궁금하다.
“관객과 소통을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어떤 캐릭터를 만나면 내 자신이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그 캐릭터도 나로 인해 개성과 존재감을 갖게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가 관객에게 또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래서 관객들도 변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무언가를 주고 받는 것. 그런 게 소통인 것 같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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